대통령 선거

by 고영주


사월의 훈풍


그해 사월, 전주의 하늘은 유난히도 높고 푸르렀다. 전날 치른 중간고사에서 백 점을 맞았다는 벅찬 성취감은, 홍역을 치러내고 기력을 회복해 가던 여덟 살 소년의 몸 안에서 새로운 생동감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선거날이라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골목길 놀이터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선일이기보다, 뜻밖에 찾아온 축제일에 가까웠다.

​나는 투표소로 향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집을 나섰다. 담벼락마다 촘촘히 늘어선 벽보들은 마침 불어온 봄바람에 파닥거렸다. 마치 전장(戰場)으로 향하는 전사들의 비장한 다짐처럼 보였다.

​교문 앞에는 '제 O 투표소'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교정은, 그날은 약간의 설렘과 엄숙함이 깔려 있었다. 운동장 가에 크게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숨을 죽인 채 투표를 위해 길게 늘어선 대기행렬과 이미 투표를 마치고 삼삼오오 걸어 나오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들의 실종을 경험했던 어머니는 내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투표소 안으로 사라졌다. 살짝 들어다 본 투표소의 풍경은 정갈하게 풀을 먹인 흰 무명 한복 차림의 노인부터, 밤샘 작업을 마친 듯 초췌한 안색의 청년들과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손에는 저마다 빳빳한 투표용지를 쥔 채 줄지어 서 있었다.

​한쪽에는 팔뚝에 완장을 찬 선거 관리원들의 시선이 매의 눈으로 군중을 훑고 있었고 사람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어둑한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투표용지 위에 찍히는 붉은 도장,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안정'이라는 이름의 신념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변혁'을 갈구하는 무언의 언어였다.

유서 깊은 전주의 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이들의 꼿꼿한 자존심이었다. 특히 동학의 함성이 낡은 봉건의 벽을 허물며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선포했던 그 장렬한 역사는 전주 사람들에게 있어 타협할 수 없는 정신적 보루였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에 얽매인 고집이 아니라, 천 년을 이어온 호남의 종가(宗家)로서 그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혁의 물결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고뇌였다. 당시의 전주는 유서 깊은 고도의 자존심이 시대의 격랑과 마주하며 빚어내는 뜨거운 열망이 일렁이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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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우리들의 유년은 그리 넉넉지 못했으나 골목이라는 무대만큼은 언제나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실리아와 헬레나 누나는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를 잘했다. 시간만 나면 동네 친구들과 골목길로 모여들었고 그녀들의 손에는 검정 고무줄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양쪽의 두 사람에 의해 팽팽하게 당겨지는 순간부터 그곳은 금남(​禁男)의 성역으로 변 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하는 동요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고무줄을 넘나들던 누나들의 발놀림은 가히 예술적인 경지였다. 발목에서 무릎으로, 다시 허리에서 어깨 위로 속절없이 높아지는 고무줄의 고도를 따라 그녀들의 몸짓은 나비처럼 가볍게 통통거리며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누나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발끝이 지면을 차는 속도가 빨라질 무렵이면, 한쪽의 아이들은 '두껍아 두껍아'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렀다. 누나들의 그 견고한 연대 속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나는 담벼락 그늘에 쪼그려 앉아, 그 찬란한 유희를 시샘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집도 새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화로운 광경을 시기하는 것을 넘어 방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디선가 ‘우르르’ 소리를 내며 나타난 동네 개구쟁이들은 유희의 흐름을 단숨에 끊어놓곤 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기회를 엿보던 녀석 하나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팽팽한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면, 골목은 이내 누나들의 날 선 비명과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그 난장판 곁에서 또 다른 무리는 땅바닥에 선을 긋고 목자놀이에 열중이었다. 매끄러운 돌멩이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것이 금에 닿을세라 조심스레 발로 밀어내던 그 비장한 표정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흙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실핀이라고 부르던 검은 머리핀들이 땅바닥에 내던져지고, 그것을 쟁취하려는 여자 아이들의 떨리는 손끝과 탐욕의 눈빛이 골목을 기묘한 긴장감으로 물들이곤 했다.

기린봉의 능선을 따라 노을이 붉은색으로 물들면, 골목을 가득 메웠던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팽팽하게 당겨졌던 검정 고무줄의 긴장도 함께 사라져 갔다. '집에 들어와서 밥 먹어라'는 어머니들의 외침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하루가 저무는 풍경이라기보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유년을 위로하는 따스한 포옹이었고 가난하되 결코 초라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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