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댐 물아래 잠긴 고토와 희망의 노래

수몰된 선사시대 유적과 느티나무 화분 이야기

by 고영주



​전북 진안의 산천을 굽이돌던 금강 상류, 그 아늑한 분지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2001년은 단순히 세기(世紀)가 바뀐 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년 이어져 온 삶의 문법이 영구히 소멸하고, 기억의 영토가 수면 아래로 침잠한 거대한 단절의 원년이었다. 국가의 대업이라는 명분 아래, 수천 년간 지켜온 문전옥답과 조상의 묘역이 차가운 수마(水魔)의 품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던 이들의 비애는 그 어떤 문장으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침묵하는 대지와 유산의 기억​

​용담댐 건설이라는 거대한 국책 사업의 이면에는 가혹하리만큼 거대한 희생의 수치가 각인되어 있다. 당시 진안군 1개 읍과 5개 면에 걸친 36.24제곱킬로미터의 광활한 대지가 물길 아래 가라앉았다. 2,864 가구, 12,000여 명의 주민이 정든 땅에서 밀려났으며, 68곳의 마을이 지도 위에서 소거되었다. 투입된 1조 5,889억 원의 사업비 중 보상비로 책정된 자금이 수몰민들의 손에 쥐어졌으나, 대대로 흙을 파먹고 살던 이들에게 현찰 몇 푼은 도리어 낯선 세상으로 던져지는 두려운 부표(浮標)와 같았으리라.

​그러나 물이 차오르기 직전, 대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태중에 품고 있던 장구한 역사의 기록을 토해냈다. 망덕(望德)과 진그늘, 갈머리(渴馬)와 여의곡(如意谷), 그리고 두곡(斗谷)에 이르기까지, 수몰 예정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 선사시대의 유적들은 이곳이 단순히 한 세대의 고향이 아니라 인류의 시원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생명의 터전이었음을 웅변했다. 특히 진그늘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과 망덕의 고인돌 군락은 수만 년 전부터 이곳이 하늘에 제를 올리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말 그대로 '인류사의 성소'였음을 증명했다.

수몰된 기억의 뿌리, 그리고 느티나무 화분​

​망덕 사람이라면 오리목 쪽 앞 내로 나가는 어귀에 마을의 수호신처럼 당당히 서 있던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를 기억할 것이다. 그 거목의 그늘 아래서는 세월도 잠시 쉬어갔고,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한숨도 시원한 바람에 씻겨 내려갔다. 물길이 차오르기 직전, 나는 그 나무 아래에서 기적처럼 싹을 틔운 작은 어린 느티나무를 발견했다. 거목의 씨앗이 떨어져 스스로 발아한 그 가냘픈 작은 느티나무는, 곧 닥쳐올 수몰의 운명을 앞두고 고향이 자식에게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와도 같았다.

​느티나무는 서울 화곡동의 거처로 옮겨졌고 나무의 가지를 치고 수형을 잡는 인내의 시간은, 나를 비롯한 고향 잃은 실향민이 타향에서 겪어야 했던 생존의 몸부림과 닮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영화 <레옹>에서 총성이 빗발치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화분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 절박한 몸짓과도 같았다. 레옹에게 그 화분이 '뿌리내릴 곳 없는 자신'을 투영한 유일한 안식처였듯, 내게 이 느티나무는 타향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생명의 밧줄이었다.

​나무가 좁은 화분 안에서 제 몸을 비틀며 꿋꿋이 수형을 갖추어 가듯, 수몰민 또한 낯선 도시의 냉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정갈하게 가다듬었을 터였다. 사방이 가로막힌 단칸방의 창가에서 푸른 잎을 틔워내던 그 생명력은, 화분을 가슴에 품고 창밖을 넘나들던 마틸다의 간절함과 맞닿아 있다.

​"이 나무는 나랑 비슷해. 보다시피 뿌리가 없거든."

— 영화 레옹(Léon) 중​


​물 위에 띄운 희망​

​우리의 생명력이란 얼마나 지독하고도 숭고한 것인가. 끈질긴 의지로 무장한 수몰민들은 수몰의 비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땅을 잃었으되 그 땅이 가르쳐준 정직한 노동의 가치는 잃지 않았다. 진그늘의 선조가 돌을 쪼개 도구를 만들던 그 결기 어린 손길은, 현대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꿋꿋이 가문을 일구는 후손들의 등뼈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다.

​고향 땅은 말이 없지만, 그 기운을 머금고 자란 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찬란한 결실을 맺었다. 도시로 향한 이들은 사회의 허리가 되었고, 장터로 나선 이들은 꿋꿋하게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성취는 물속에 잠긴 조상들의 보살핌이자, 고향 잃은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었다.

​고향의 기운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꽃을 피워냈다. 도시로 나간 이들은 사회의 중추가 되었고, 장터로 나간 이들은 다시금 기반을 닦았다. 그들이 일궈낸 성취들은 사실 물속에 잠긴 조상들의 가호이자, 고향을 잃은 자들이 증명해내야 했던 존재의 증명이었다.

​용담댐은 이제 슬픔의 거울이라기보다, 그 위에 비치는 수몰민들의 꿋꿋한 삶의 훈장이다. 망덕의 고인돌이 그러했듯, 서울 작은 방 창가에 푸른 잎을 틔우던 그 작은 느티나무가 그러했듯, 고향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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