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었다. 해가 뜨기까지는 몇 시간 남은 새벽, 옛날 영화가 보고 싶었다.
춤추고 노래하는 옛날 영화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눈에 띄었다. 클릭을 하고 보기 시작했다.
아... 맞다, 이거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였지...
나는 늘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다. 첫눈에 반하고 바로 결혼하고 사랑 때문에 죽고. 이 모든 것이 며칠 만에 일어난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뉴욕의 가난한 동네, 이민자로 이뤄진 갱단 샤크파와 백인들로 이뤄진 갱단 제트파가 으르렁 거리며 대치하는 곳이다. 샤크파 리더의 여동생 마리아와, 제트파 리더의 절친 토니는 춤추러 갔다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난관에 부딪히고 그들의 사랑은 비극을 맞는다.
이것은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증오, 소외감, 절망감이 있었다. 그것은 몇몇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회가, 시스템이 오래오래 빚어낸 이야기였다. 나는 이번에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보면서 경찰을 유심히 보았다.
샤크파와 제트파. 그 으르렁 거리는 이들은 10대~20대 초반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해 길거리를 배회한다. 제트파는 미국인 이기라도 하지, 샤크 파는 이민자로 미국 사회뿐 아니라 샤크파와 같은 또래에게까지 멸시를 받고 환영받지 못한다. 어찌 보면 같이 미국 사회에서 취약한 아웃사이더인데, 그들은 으르렁 거린다.
경찰관은 순찰을 돌면서 아이들을 협박한다. 어서 여기서 꺼지라고, 그렇지 않으면 감방에 넣을 거라고 협박한다. 있어 마땅한 곳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또 쫓아낸다.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어서 여기서 사라지라고 한다. 아이들은 우르르르 여기서 저기로 쫓겨난다.
마리아와 죽어가는 토니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순간에 토니는 말한다. 여기서 사랑하기는 힘들다고. 여기는 아니라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나는 거기서 눈물이 났다.
마리아와 토니는 어디도 가지 못했고, 토니는 길 위에서 죽었다. 갈 곳 없는 사람이 쏜 총에 어디로든 가려던 사람이 맞았다. 토니는 물론 마리아도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어디도 아닌 그곳에 남게 되었다. 증오와 슬픔을 안고서.
사랑은 약했다. 메마른 길 위에 뿌리를 내리기에는.
재미있는 것은, 사랑에 빠진 마리아와 토니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없다는 거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추는 데에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사랑을 속삭이기에도 설 자리가 없던 마리아와 토니는 발코니에서, 좁게 노래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멘트, 아스팔트 길 위에서, 건물 옥상에서, 차고에서 춤춘다. 각자의 영역을 춤으로 표현하고, 싸움마저도 춤으로 표현한다.
지금의 미국 상황을 보면 40년도 더 전에 만든 이 영화가 지금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비단 미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세계의 상황이 그러하다.
사랑이 드물고 힘든 요즘이다. 이것이 단지 개인의 문제일까. 지금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곳이 혼자 서있기도 힘들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그런 사실이 슬프다.
마리아와 토니가 둘이서 신나게 한곡 춤을 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면 이렇게까지 슬프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했다. 올해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보고 싶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