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주인공 [카우보이의 노래]

by 이유


나는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많은 시간 동안, 내가 인생의 주도권과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고, 성실히 추구하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일 거라고 믿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그리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플롯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내가 추구하던 삶과 꿈꾸던 목표는 흐릿해지다가 부서지곤 했다.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사막에 가고 싶다고 며칠째 생각 중이다.( 리베카 솔닛의 책 '길 잃기 안내서' 영향이다. ) 이렇게 가고 싶은 곳이 생긴 것이 얼마만인지 싶다. 모르는 곳으로, 특히 사막으로 가서 마냥 걷고 싶다. 음악도 말동무도 없이 한동안 그냥 걷고 싶다. 하지만 사막까진 가지 못하고 황량한 서부 영화를 본다.


종종 이 시대의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놀란다. 무법천지에 툭하면 총질이고 아니면 원주민들과의 분쟁에, 먹고살기가 힘들기로는 말해 뭐하며, 약한 사람은 가차 없이 도태된다. 스펙터클하고 알 수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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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볼 때면 모르는 세계로 제대로 여행을 떠난 것만 같다. 뻔하지 않은 인생처럼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 '카우보이의 노래'는 그야말로 모든 에피소드가 상상불허였다. 그리고 엄청난 유머감각. 코엔 형제에겐 날카로운 통찰력도 있지만, 섬세한 관찰력에서 비롯한 특유의 유머감각이 있다. 여기 '카우보이의 노래'에서도 유감없이 유머감각을 탈탈 털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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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안다고 확신했을 때는 내가 오만하거나 절망했을 때였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나는 늘 두려웠다. 더군다나 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실 나는 종종 무너졌다. 하지만 몇 번 무너지고 엉성하게나마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 결과, 막막하고 모르는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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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더 큰, 다른 무엇이 주인공이 아닐까. 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 이야기의 조합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장소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겹쳐서 만들어졌다. 주인공이 아니면 어떠랴. 나는 삶과 죽음 앞에 무력할지라도, 결말을 선택할 수 없더라도,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을 희망으로 삼고 싶다.


'카우보이의 노래' 속 대사처럼


"소원하건대 좀 더 희망찬 사람이 되기를..."


이렇게 근사하고 잔인하도록 위로가 되는 영화가 한편 우리에게 있으니, 오늘만큼의 희망은 덤으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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