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훈련소 퇴소를 하다
은경이를 낳고 나서 둘째를 2년 뒤에 갖게 되었다.
둘째는 막달에 좀 힘들긴 했지만 건강하게 태어났다. 약간 몸무게가 미달되어 인큐베이터에 있긴 했지만, 더 위급한 아이들이 많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공간이 부족해서 퇴원을 했다. 돌이 지나 서서 걷는 아들을 보면서 우린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첫째에게서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셋째를 가질 계획은 없었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왔다.
작은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이라 담임목사님께도 약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교회 집사님 중에 한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셋째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에 약간 위안을 얻게 되었다.
교회 사모님도 처음에는 황당해하시다가 교회 집사님도 셋째 가지신 걸 나중에 아시고 괜찮다고 해 주셨다.
막내는 다행히 가장 건강하게 태어났다.
여름에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7월 4일이었다.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있을 때, TV에서 나사가 독립기념일을 기념해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보도가 계속 나오던 것이 생각난다.
그 막내가 오늘 훈련병 퇴소식을 가졌다.
항상 어린아이로 보였는데 6주 훈련을 받고 나니 늠름한 군인이 되어 있다.
다행히 초등학교 친구가 같이 입소해서 바로 옆자리에서 함께 훈련을 받았다.
그 친구는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빠른 것 같았다. 막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단장 훈시를 끝으로 모든 행사를 마치고 아들을 만났다. 충성! 166번 훈련병 OOO!
아들에게 계급장과 태극기를 달아 주었다.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단장님도 아들이 전방에서 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좀 더 인자하게 진행해 주신 것 같다.
군대 가기 전에 막내에게 왜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 않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막내를 보면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혹시 장애가 있는 누나 때문이니?"
"어~....."
짤막하게 흐느끼듯 말꼬리를 흐린다.
내 마음도 아팠다.
장애형제가 있다는 것은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생각은 해 보았지만 나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잘 몰랐다.
막내가 한 그 말을 듣고 이제야 조금 느끼게 된 것 같다.
아이들에게 누나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부모로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상처와 아픔은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어려운 환경에서 잘 자라서 이제 훈련도 잘 받고 당당한 육군으로 거듭난 아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부모 마음으로 좀 덜 고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다행히 요즘 군대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내일 육군군수사령부로 배치를 받고 다시 예하 부대로 최종 배치된다고 한다. 쏟아지는 빗속을 가로질러 부대에 내려주고 돌아왔다.
퇴소식 장소에 걸려있던 플래카드에 적힌 글씨가 기억에 남는다.
"진짜 사나이가 되는 길!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더 늠름한 사나이가 되어 돌아오길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