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부모님께 상처를 주다

저는 또 부모님을 탓하는 불효자입니다

by 국지호

나는 서른 살 무경력 백수다.


어릴 때부터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걸 유난히 싫어했다.
사고 한 번 치지 않고, 말썽 부리지 않고,
그저 ‘괜찮은 사람’으로 살려고 애썼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복싱 프로 선수로 활동했고,

해병대 대위로 전역했으며,
수제 디저트 가게까지 직접 운영했다.

부지런히 살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직도 내 밥벌이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서른 살 무경력 백수다.


새로운 도전을 하려면
여전히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한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린다.
고맙고,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초라하다.


그런데 그런 나임에도
나는 최근까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나는 2023년 대위로 전역하며
약 5천만 원 정도를 모아 나왔다.
그리고 2025년 3월 17일,
수제 디저트 가게를 창업했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는 편이다.
미리 말하면 걱정을 끼칠 게 분명했고,
잘되지도 않았는데 걱정부터 드리는 게 싫었다.


능력은 없지만
‘잘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창업도
장소를 임대하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때
부모님께 이실직고했다.


아빠는 고지식한 분이다.
대화를 하면 늘 답이 정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내 말이 맞는데, 그래도 네가 이 선택을 하겠다고?”
라는 뉘앙스가 항상 깔려 있었다.

아빠는 창업을 강하게 반대했다.


사업은 순수익 천만 원 이상 남길 자신 없으면 하지 마라.
내 주변에 사업하던 사람 다섯 명 있었는데
셋은 자살했고, 나머지도 다 후회한다.
수제 디저트로 월 천만 원 벌 수 있냐.
가족도 설득 못 하는 아이템으로 무슨 창업이냐.


그 말들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나에게
큰 상처가 됐다.

에너지가 꺼졌고,
오히려 무력해졌다.

플리마켓에 나가
준비한 상품을 모두 팔았던 날에도,


그 고생해서 그 정도 벌 바엔 나라면 안 한다.
월 매출 천은 찍혔냐.
디저트로 성공한 사람 누가 있냐.

이런 말들이 돌아왔다.


나는 안다.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평생 사업을 해왔고,
이제는 일을 그만두고
수입 없이 지출만 남은 삶.
연금을 받는 또래들을 보며 느낄 상실감.


아빠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막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그 말들은 독이었다.


나는 그렇게 9개월을 버텼고,
결국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아빠는 또 쉽게 말했다.


차라리 3년 공부해서 공무원 해라.
공기업 가라.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미 알고 있는 나에게
그 말은 또 다른 좌절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아빠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내 인생 신경 쓰지 마라.
나도 서른이고, 내 앞길 내가 개척하고 싶다.
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때
오히려 결과가 더 좋다.

옆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마라.
그런 말 들으면 반항심부터 든다.

솔직히 디저트 가게도 아빠 원망한다.
그때 그런 말만 안 했어도
나는 더 해봤을 것 같다.

하루 8만 원 팔던 날에서
20만 원 팔았을 때의 성취감을
‘그래서 천만 원 벌겠냐’는 말로
무너뜨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도전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결과를 남 탓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내가 결정하고
내 탓을 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싶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망한 것도 내 탓 안 하고
아빠 탓을 하고 있다.
그게 너무 싫다.”


그 말을 했을 때
당황하던 아빠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빨리 자리 잡고 싶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번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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