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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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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Oct 08. 2023

0. 프롤로그

 나는 2020년 12월 코비드가 가장 피크였을 때 S와 결혼을 했다. 그와 사귄 지 6년 7개월 만이다. 그 말은 즉슨 6년 1개월 만의 동거 생활이 드디어 끝이 났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서 치르기로 한 결혼식을 취소한 이후 나는 한동안 무기력했었다. 거기에 장기화된 록다운으로 코로나 블루까지 정통으로 맞아 소파 구석에서 또르륵 눈물을 흘리고 있던 어느 날, S는 해를 넘기기 전에 우리끼리라도 매듭을 짓는 것이 어떠냐며 혼인 서약식을 제안했다.

 S는 한국 결혼식에서 입으려고 맞추어 놓은 수트를 장롱 깊은 곳에서 꺼내었고, 나는 집 근처 쇼핑몰에서 흰색의 드레스를 급하게 준비했다. 우리는 정말 가까운 친구 다섯 명 남짓을 불러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공식적으로 S의 아내가 되었다.


 우리는 만난 지 겨우 6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6년 이상 동거를 했다. 동거를 시작한 지 4년이 되던 해에 프러포즈를 받았다.

 20대에 더블린에서 시작한 동거 생활은 30대에 시드니에서 끝이 났다. 결혼을 전제하지 않은 동거 생활, 결혼을 전제한 동거 생활을 모두 겪었다. 동거 생활의 성공 지표가 결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동거 생활이 결혼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이만하면 동거 마스터, 성공한 동거 생활이 아닌가 싶다.


 서로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삶을 조율하는 것이 쉬웠나? 전혀 아니었다. 처음 동거를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미성숙했다. 섣부른 결정이 아니었나 후회한 적도 있고, 합의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우리의 관계가 내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한 적도 있었다.

 처음 동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이었는데, 6년 1개월의 동거 생활을 마치니 우리는 참 비슷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에게서 그의 습관을 보고, 그에게서 나의 흔적을 본다.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조율하고, 서로에게 융화되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를 하고 있는, 또는 동거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름' 성공한 동거 생활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동거 백서를 쓰기로 하였다. 동거백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그냥 미성숙한 두 인간의 성장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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