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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Feb 19. 2024

나의 캄보디아 방황 일기

그리고 우울증 치료기.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어제 공식적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나는 왜,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작년 칠월, 7년 간의 호주 이민 생활을 종료하고 캄보디아로 왔다. 30대 중반, 젊지 않은 나이에 캄보디아로 이민. 더 행복하기 위해 밟은 땅,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우월감과 프라이드는 잠깐 뿐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청량감과 호기심도 몇 주만에 아스라이 사라졌다.


같은 해 시월에 '나는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를 시작으로 글을 썼지만 차마 발행하지는 못했다. 캄보디아로 오기 바로 전에 썼던 글들은 캄보디아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벅참으로 가득했다. 꼭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낯설었다. 이게 나였나..? 그래서 우울감을 느낀다는 글을 발행하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이때쯤 나는 주변인들의 잘 지내냐는 물음에 답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저 캐주얼하게 캄보디아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지내냐는 묻는 그 물음들 뒤에 무언가 의도가 있을 거라는 오해를 하고는 했다. '정말 잘 지내는 거 묻는 거 맞나?' '생각보다 힘든지 아닌지 물어보는 건 아닐까?' 이건 피해 의식이 분명하다.


큰맘 먹고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한 적도 있지만 단 한 개의 글을 발행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내 캄보디아 생활을 기대하는 누군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지못해 썼던 글이었으며, 나의 수치심을 숨기기 위한 거짓 감정으로 떡칠된 글이었다. (그 글은 지금은 삭제하였다)  


이번 연도 1월에는 '캄보디아에 와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끝내 마치지는 못했다. 이 때는 이미 무력감이 나를 덮쳐버린 상태였다. 때문에 내가 했던 사색의 단 10 퍼센도 채 적어내지 못했는데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숨이 차고야 말았다. 생각을 도저히 활자로 풀어낼 수가 없었다. 우울에 찌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끊임없고 부정적인 사색일 뿐인데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활개 치던 이 생각이란 것들은 나의 손가락을 거칠수록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양팔은 납주머니를 찬 것 마냥 무겁고, 손가락도 잘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내가 느꼈던 무게는 괴로운 마음의 무게였을까. 무력감의 무게였을까. 아니면 그냥 근손실의 결과였을까. (운동도 그만두었기에)


요즘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한다. 그냥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는 그런 경험.  때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온 힘을 다해도 버겁게 느껴지는 그런 경험. 얼마 전에는 샤워를 해야 하는 데 욕실까지 갈 용기가 없어서, 거기까지 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엄두가 안 나서, 그리고 이렇게 되어버린 내가 너무 지긋지긋하고 끔찍해서 몇 시간을 울었다. 그게 뭐라고.




오늘은 마침내 키보드 앞에 앉았다. 나를 키보드 앞으로 이끈 것은 다름이 아닌 정신과 의사와의 약속 때문이다.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 하루 일과의 루틴을 만들어 오세요. 특히 아침 9시에서 11시 사이,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꼭 무언가를 하는 루틴을 만드셔야 해요. 해야 되는 것 말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으로요."


"전 지금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내가 말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이 선생님은 T가 분명하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캄보디아어. 요가와 같은 명상. 얼마 전 시작한 일. 젠장. 다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기가 싫다. 이런 것들을 잘 해낼 수 있었다면 나는 심리 상담을 받을 필요도, 정신과를 찾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뭐였지 생각해 보았다. 비록 재주는 없다만 그래도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었기에 그럼 글을 다시 써볼까 해서 이렇게 키보드 앞에 앉게 된 것이다. 약 때문인가? 고작 몇 줄이나 쓸 수 있을까 했는데 그래도 스크롤을 내려야 할 만큼 쓴걸 보니 뿌듯하다. 뿌듯.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낯설어져 버린 단어이고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요즘 나는 심리 상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나 자신을 다독이는 연습'을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수리님이 수리님을 많이 다독여 주어야 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써볼까 한다. 나의 방황 일기를.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중간에 또 포기할지도 모른다. 또 거짓 감정으로 가득 찬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마저도 나를 다독이는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나는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다. 한 세계를 부수어 뜨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나온 새.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를 막 파괴한 나는 피로하고 지쳤지만 그렇다고 다시 알 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날 수 있을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과 영양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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