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을 감추고

by 김화연


고양이는 어디에

분홍을 감추고 있을까요

어디서 저런 분홍을 틈만 나면 꺼내어

저리도 정성스럽게 핥고 있을까요

사실, 누구나 숨겨 놓은 분홍이 있죠

씨앗 속에 색색이 숨겨 놓고 있는

후숙의 기간들처럼

두근거림처럼

분홍은 슬픔도 꽉 닫아버릴 수 있는

만능 뚜껑 같은 것들이죠

고양이는 저의 분홍으로

사뿐사뿐 가벼움을 실천하고 있죠

오늘 유난히 사뿐거리는 말투를 들었다면

분홍이 가득 묻어 있을 겁니다

담장이 얕아 누구든 넘어올 수 있는 분홍

어떤 고약한 색깔을 만나도

슬쩍 섞을 수 있는 분홍

무한 평온을 줄 수 있는 부드럽고 온화한 색

모자라는 색에도 조금 넣으면

갸릉갸릉 하는 색깔로 변하는 분홍

그런 분홍들이 자신들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설마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요?

자, 손등을 내밀어보세요

고양이는 주저 없이

저의 분홍을 내어줄 것입니다


김화연 시집 입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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