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안 되는 걸(1)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고 파스타, 칼국수, 쫄면에 라면까지 당기는 대로 다 섞어서 욱여넣으면
부대끼고 토할 것만 같겠지.
지금 딱 내 기분이다.
이제라도 분리해내고 싶은데 이미 다 뒤엉켜버려서
뭐 하나 추출해 낼 수도 없는 상태.
소화제라도 먹고 해결되면 좋으련만
이런 데는 약도 없다지.
메스껍게 엉켜버린 이 감정들 중에 뭐 하나 내 의지로 선택한 건 없다.
이유 없이 어제는 빵이 당겼고 오늘은 밥이 당기는 것처럼 이놈의 감정들도 갑자기 찾아와서
내 생각, 내 행동까지도 컨트롤을 한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거다.
‘ 나는 왜 이런가 ‘ 하며 화살이 내게로 향하는 것.
조절하지 못하고 뱃속에 이것저것 쓸어 담은
왕성한 식욕의본인을 탓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임에도,
이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끌어안고 있느라
가장 지쳤을 나에게 탓을 돌리며
몇 가지 감정을 더해버린다.
아주 부정적이고 고약한 감정의 집합체가 되기
딱 좋게.
이 깊고 진한 우울함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봐야
무의미하다. 사실상 내 문제가 맞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말하지 못할 아픔과 슬픔, 듣기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질 만한 일을 당한 사람이
무수하다.
그들 중엔 극복하고 사는 사람들,
억지로라도 살아내는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많다.
설령 극복하고 사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왜 그런 특별함을 , 생각의 자유를 가질 수 없는지
의문이다.
나는 왜 그들처럼 그냥저냥 살아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힐까?
내 문제가 더 커서?
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일들이라서?
아니,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제를 속에 담아둘 줄만 알지
내보내기를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탓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탓은 부정적이지만 인정은 긍정이다.
물음표와 마침표의 차이도 있다.
일단 한번 ‘너 때문이야’가 시작되면
‘ 왜 그러니? ‘ ‘ 뭐가 문제야?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 ‘ 와 같은 꼬리질문이 쏟아져 나오기 좋다.
반대로 인정의 경우
이미 ‘왜?’가 중요하지 않아 지기 때문에
일에 맺음이 쉽다.
‘ 그런가 보다.‘라고 해버리면
왜 그런지 왈가왈부해봐야
‘ 이유가 없나 보다.‘,
‘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아닌가 보다 ‘라고
돌려 막기식의 결론을 내면 그만이니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봤자 극한의 부정적 생각에 잠식당한 사람들은 ‘ 왜 이유가 없어? ‘,
‘ 그런가 보다라고 하면 그만이야? ‘ ‘ 납득이 안되는데 인정한다는 건 회피하는 것밖에 더 돼?‘
라며 질문을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안 되는 바로 ‘ 그것 ‘이다.
생각으로는 알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한 초등학생 아이가 와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퍼붓는다고 생각해 보자. 끝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내 경우엔 ‘ 이건 원래 이래 ‘ 혹은 ‘ 나중에 다 알게 돼 ‘라고 대답할 것이다.
유아적 질문세례를 퍼부으면서 동시에 당하고 있는
내 머릿속에 이 상황을 적용시켜라.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내 마음에게 ‘ 원래 다 이유가 없어 ‘,‘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라고 해두자.
치유가 필요한 내 마음이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리 없다.
그래도 자꾸만 맺음이 안 나면 일단
불 끄고 잠이나 청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