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계급의 언어 X

열 번째 이야기 — 여행이다

by 김지향

여행은 자유의 언어다

(Travel is a Language of Liberation)


“나는 떠난다. 왜냐하면 나는 존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앨버트 카뮈(Albert Camus)


여행은 삶의 질을 레버리지하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방법이다. 독서가 상상 속의 항해라면, 여행은 육체와 감각이 동참하는 생생한 출항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며 오감으로 흡수하는 세계의

조각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 삶의 반경을

넓히고, 존재의 깊이를 재정의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이 여행을 예찬해 왔다.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말한다.

“길 위에서는 내가 나를 덜 괴롭히게 된다.

그리고 더 정확한 나를 만나게 된다.”

여행은 고정된 나의 틀을 깨고,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한다.

나를 다시 쓰는 시간이다.


헤르만 헤세의 『여행의 기술』에서는 “진정한 여행자는

떠나는 순간부터 이미 도착한 이들보다도 한 발짝 앞서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떠나는 결심, 그 자체가 이미 변화를 잉태한 행위라는 뜻이다 그러나 모두가 언제고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상상으로, 누군가는 현실로 떠난다.

시간, 돈, 신체적 제약. 그것은 현실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계급’의 장벽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에서 문화적 자본의 차이가 사회적 위계를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임을 밝혔다.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감각과 경험은 곧 문화 자본이다.

더 많이 본 자, 더 넓은 세계를 접한 자가 더 다르게 말하고, 선택하며, 결정하게 된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본 만큼 말하게 된다.

우리가 본 만큼 꿈꾼다. 이것이 여행의 계급적 속성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여행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VR 기기를 통해 로마의 거리를 걷고, 유튜브로 이스탄불의 새벽빛을 마주할 수 있다. 반미 샌드위치를 입에 물며

베트남의 습도를 상상할 수 있고, 터키 케밥을 씹으며

바자르의 소란을 떠올릴 수도 있다.


“나는 지구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여행하는 것이다.”

— 안드레 지드(André Gide)


결국 여행은 물리적 이동을 넘어선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닿고자 하는 태도, 나를 낯선 풍경 속에 던져 넣는 용기,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다.

여행은 경계를 허무는 행위다.

국경도, 언어도, 내 안의 오만도.

그리고 그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삶의 영토는 넓어진다.

넓어진 영토는 곧 더 많은 가능성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면, 내 안의 우주도 바뀐다.”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여행은 단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발견하는 숭고한 언어라고.

당신이 그 언어를 언제, 어떻게 말하게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보길 바란다.

어디든 좋다. 가장 먼 곳이 아니라, 가장 진실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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