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길들이기

세월을 견디는 감정의 기술

by 김지향

시간은 흘러가고,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고 보면, 한국어는 참 묘한 언어다.

‘밥을 먹는다’는 말과 ‘나이를 먹는다’는 말에

‘먹는다‘는 같은 동사를 사용한다

무언가를 삼키는 것, 흡수하는 것, 그리하여 내 것이 되는 것.

나이라는 추상도, 밥처럼 입에 넣어 삼켜야 하는 것이었을까.

한국어에서 ‘먹는다’는 동사는 단순한 섭취를 넘어

삶의 수많은 국면과 감정을 포섭한다.

욕을 먹고, 마음을 먹고, 겁을 먹고.

이 복합적 감각이 주는 여운이 마음을 붙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한 신체의 변화가 아니다.

내면의 감도가 서서히 옅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굴의 주름에는 온갖 크림을 바르면서,

마음의 주름에는 아무런 돌봄을 주지 않는다.

그 무심함이 문득, 쓸쓸하다.


학창 시절, 우리는 사소한 것들을 참 귀하게 여겼다.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껍질 하나,

친구가 건넨 꽃다발의 마지막 잎사귀까지,

골목길에서 꺾은 들꽃 한 송이,

책갈피에 숨겨둔 단풍잎 한 장.

그 시절 우리는 모든 것을 모으고, 붙잡고, 기억했다.

작은 것들은 우리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둘 놓아버렸다.

먼지처럼 흩어졌고, 일일이 기억도 못할정도로 사라져갔다.

그렇게 마음은 말라갔고, 정서는 무뎌졌다.

하늘을 보며 소원을 빌던 날도,

바다를 보며 울먹이던 순간도

기억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아이들은 이유 없이 웃는다.

어른들은 이유가 있어야만 겨우 웃는다.

이 차이는 단순히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감각이 줄어들고, 기억이 퇴색되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마음이 닫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말했다.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존재의 감도를 잃을 때

늙어 간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신체의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도

감정의 피부를 어루만질 수는 있지 않을까.

눈에 띄지 않는 것들에 시선을 주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머물게 하고,

기억 저편의 감촉에 다시 손을 뻗어본다면.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감정의 기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무뎌지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가 끝끝내 지켜야 할

가장 거침없는 우아한 반란이다.


그러니 오늘은 잠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침 창가를 스치는 바람,

우체통에 가만히 꽂힌 엽서 한 장,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하나.

그 작고 느린 것들이

우리의 감정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며,

그 느림 속에 숨겨진 무수한 감각을 되찾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감각이야말로

우리를 ‘늙지 않게’ 하는

가장 고요하고 단단한 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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