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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날 May 19. 2022

딸도 아들도 죄인은 없다

[며느리는 백년손님 PART 2] 시부모가 처음인 ‘시린이’를 위한 조언

‘딸 가진 죄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말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딸을 얻고 얼마나 행복했던가요. 얼마나 사랑스러운 자식인가요(물론 사춘기엔 지독하게 밉상이지만). 딸을 가졌다고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처갓집을 단숨에 죄인이 머무는 교도소로 만듭니다. 참 지독한 말입니다. 내 어머니도 할머니의 딸이고, 나의 아내도 처갓집의 딸이고 내 딸은 내 딸인데 딸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부모까지 죄인이 되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시부모에게 눈치 보며 굽신거리느라 생긴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왜 시부모에게 그래야 할까요? 행여 내 딸을 구박할까 싶어서입니다. 며느리의 죄스런 생활을 표현하는 ‘시집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집살이’에는 2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결혼한 여자가 시집에 들어가서 살림살이를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요즘은 분가해서 따로 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집살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남의 밑에서 엄격한 감독과 간섭을 받으며 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분가와 상관없이 며느리는 여전히 후자의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집살이가 힘들어진다는 건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가에서는 시부모가 당신의 딸을 덜 힘들게 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눈치보며 낮은 자세로 사돈의 비위를 맞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지요. 안 그래도 힘든 데 괜히 밉보여서 혹독한 시집살이라고 할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모더니스트 시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남녀 평등시대에 반려자로서 결혼한 커플에게 서로 다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멈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원래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7세기 무렵부터는 오히려 시집살이가 확산되면서 남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자가 ‘처가살이’하면 남자의 지위가 내려가고 여자가 ‘시집살이’하면 여자의 지위가 내려간다는 얘기입니다. 요즈음은 오히려 신혼집이 처갓집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면 다시 사위의 지위가 내려가야 하나요. ‘처가살이’할 때는 ‘아들 가진 죄인’이었다가, 이제는 ‘딸 가진 죄인’이었다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시집살이’, ‘처가살이’처럼 ‘어느살이‘에 따라 죄인 취급하는 대상이 달라지는 짓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시댁에서 며느리의 부모, 즉 사돈을 죄인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시부모의 소중한 아들이 죄인의 딸과 결혼하는 꼴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이 말은 속담이 아니고 남아선호가 있던 80년대 정부의 슬로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현재 남녀 평등에 맞는 적합한 표현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건 ‘비행기는 딸이 태워준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많이 하더라는 겁니다. 실제로 주변을 봐도 아들은 국내 여행, 딸은 해외여행 보내드리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물론 요새는 국내도 비행기를 타고 다니지만 여기서 비행기는 먼 여행, 해외여행을 의미합니다) 어쨌든 더 이상 남의 집 딸을(반대로 남의 집 아들을) 인질로 위세 부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며느리는 사돈에겐 해외여행 보내줄 귀한 자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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