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백년손님 PART 2] 시부모가 처음인 ‘시린이’를 위한 조언
저에겐 작은아버지가 계셨습니다. 5남 2녀 중 여섯째셨죠. 제가 아버지 댁에 머물러 있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드문드문 오셔서 잠시 머물다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은 얘기로는 작은아버지는 젊은 시절 5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셨는데,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작은아버지는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결국 그 여자와 헤어졌다고 했죠.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결혼하시면 안 되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는 그 당시 7남매 중 누구 하나 부모님의 말씀을 고분고분 듣는 형제가 없어서 자신마저 반항하면 부모님이 슬퍼하실 거라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거역을 못 하셨다고 말이지요. 그러고는 나이 어린 분을 중매로 만나 부모의 허락하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딸을 하나 낳고는 얼마 되지 않아서 헤어졌지요. 딸은 엄마가 키우기로 했고 작은아버지는 그 뒤로 재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70~80년대는 연상연하 커플이 매우 드문 시절이어서 일반적인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나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적 통념이 부모님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자연사하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보통은 자녀가 더 오래 삽니다. 부모는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더라도 자식을 끝까지 곁에서 지켜줄 수 없습니다. 어차피 부모가 먼저 떠날 거라면 자식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있도록 허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 여인과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시켰다는 건 그만큼 작은아버지께서 그분을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물론 그 뒤에 만나 결혼하신 부인도 사랑하셔서 결혼하셨겠지만 제가 작은아버지의 가정생활을 보았을 때 반대에 부딪혔던 이전의 연인만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차마 여쭤볼 수는 없었지만, 처가와 아내, 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갈 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한국에 남으신 것만 봐도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남겨두고 먼저 떠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모가 끝까지 자식을 책임진다는 말인가요? 자녀는 부모가 없는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부모는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 뿐입니다. 재산을 지키는 것에 대한 책임은 자녀의 능력에 달려있죠. 한 가정을 이루고 잘 이끌고 지키는 능력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부모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미리 그러한 능력을 키워야 제대로 된 준비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고 해서 한순간에 그런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시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며느리를 통해서 아들을 관리하려 합니다.
“맞벌이하더라도 남편 아침은 꼭 챙겨서 보내라. 네 남편이 아침을 꼭 챙겨 먹는 습관이 있어서 말이다. 알았지, 며늘아.”
순간 며느리 입장에서는 카운터 펀치를 맞은 기분일 겁니다. 며느리는 머리가 지끈 아프고 어지럽고 멍해지는 기분이겠지요. 마치 ‘시어머니의 아들 케어 프로그램’이라는 계주에서 며느리에게 바통을 넘겨주시고 그 바통 안에 돌돌 말려진 두루마리에는 이전에 하고 있던 시어머니의 프로그램이 왠지 줄줄이 나열되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며느리는 이제 그 바통을 받은 다음 주자로서 ‘시어머니의 아들 케어 프로그램’이라는 계주에서 전력 질주해야 하는 운명의 무게를 느낍니다.
며느리는 결혼 후 차츰 드러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멘붕의 경험을 종종 하게 되겠지요. 여기서 ‘며느리는 누구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며느리는 사돈의 딸이며, 본인 이름으로 된 명찰을 달고 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 나가서 직장인, 사회인으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며느리는 자신의 실체가 왠지 시댁과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는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차라리 아들과 며느리에게 스스로 ’생존 프로그램’을 터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들은 며느리를 외조하고 며느리는 남편을 내조하며(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상호 케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역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지금부터 미리 프로그램을 세팅하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미완성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결국 미완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들은 홀로 남거나 함께 살아도 ‘각자도생 프로그램’으로 외로움을 반려자 삼아 평생을 살 것입니다. 부디, 내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생각 대신 시어머니인 본인과 남편 간은 ‘상호 케어 프로그램’을 적용하는지 ‘각자도생 프로그램’을 적용하는지(같이 살아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돌아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남편의 인생을 무책임하게 내팽개쳐두고 있지는 않나요? 안타깝게도 ‘상호 케어 프로그램’이 아직도 미완이라면 이것을 완성하는 것이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최우선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