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Aug 04. 2023

우리 아이가 깜짝 깜짝 자주 놀란다면...

<고함쟁이 엄마>

아이는 아이답게 살게 해주세요. 늦은 밤까지 공부해야 하는 아이가 아닌 소신있고 행복하게 자기표현하면서 살게 해주세요. 누구와 비교되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답게 사는 아이가 바로 내 아이 입니다.


오늘은 엄마의 높은 기대로 지친 아이, 엄마의 큰 소리와 잔소리로 지쳐서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자발적 상담으로 <고함쟁이 엄마>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2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깜짝깜짝 자주 놀란다면

고함쟁이 엄마     


상담실에서 서우를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이고 신청서를 들여다보았다.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이다. 그것도 3학년 아이가 직접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며칠 전 신청할 때 전화상으로 접한 서우는 거칠었다. 자존심이 세고 반항적이라는 느낌이랄까? 나는 본인이 직접 상담 신청한 이유를 기다리느라 매우 설레었다.   

  

서우와는 방과 후 특기적성을 마치고 3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서우는 약속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색을 갖고 있었고, 3학년 이라고 하기엔 큰 키였으며 조금 마른 듯 보였다.     


“선생님, 늦어서 죄송해요. 청소 당번인 줄도 모르고…….”

“그래서 늦었구나. 조금 늦긴 했지만 괜찮아. 찾아오느라 힘들진 않았니?”

“힘들지 않았어요. 그냥 조금 더워서…….”

“덥지? 어제오늘 갑자기 무지 덥네. 지금 에어컨은 가동이 안 되고(5월 말이라 시설에서 에어컨 가동 시기가 아님), 아직 선풍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어쩌지? 시원한 물 좀 마실래?”

“네.”

서우에게 시원한 물을 주기 위해 상담실을 나서면서 문을 열고 1.5리터 물병을 세워 두었다. 외부 공기가 들어오면 조금이라도 덜 더울까 싶어서.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물병이 쓰러지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조용했던 상담실에 정적을 깨는 서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 상담실로 돌아갔다. 서우는 양쪽 귀를 틀어막은 채 랩인지 동요인지를 조그맣게 부르면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서우야. 괜찮니? 괜찮아?”

“네. 조금…….”

“정말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네, 괜찮아요. 큰 소리 때문에…….”

“미안해. 많이 놀랐구나. 잠시라도 시원한 바람이 들어올까 싶어서 문을 열어놓았는데 그만 문이 닫혔네.”  

   

서우는 내가 가지고 온 시원한 물을 마시지도 않았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뭔가 긴장한 듯했고 빨리 일어나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서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오로지 “없어요.”, “모르겠어요.” 였다. 서우는 상담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을 한 회기라고 하는데, 한 회기가 한 시간 정도라고 알려주었다. 서우는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상담 끝날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나 또한 탁상시계가 앞에 있었기에 상담이 끝났음을 알고 있었다. 바로 이어서 다음 예약된 상담이 있어서 마무리 지으려던 참이었다. 보통은 선생님이 마칠 시간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그이 따르는 편인데 서우는 달랐다. 아이가 먼저 상담 시간을 물어보고 자신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후, 일어날 시간임을 말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렇게 솔직한 서우에게 자꾸 호기심이 생겼다.     

서우를 상담한 지 한 달 하고도 1주일이 지났지만 서우는 거의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서우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서우 어머니는 서우가 만 세 살 때 한글을 떼었고, 책 읽기를 좋아해서 놀이 자체가 독서였다고 자랑했다. 영어 유치원을 거쳐 지금은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회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뿐더러 학교에서도 모범적인 아이라 어딜 가나 칭찬받는 아이라고 했다.   

  

예정된 상담이 4회기 정도 남았을 때 가자기 서우가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 선생님도 무서운 게 있어요?”

“무서운 거? 무서운 거 많지.”

“무섭고 놀라는 건요?”

“선생님은 겁이 무척 많아요.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자주 놀라서 중학교 땐가? 선생님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한의원에도 간 적 있었거든. 그리고 무서운 건 엄청 싫어해. 무서운 괴기 영화는 절대로 혼자 못 보고 옆에 있는 사람 끌어안고 난리도 아니야.”

“…….”

“선생님도 서우에게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네.”

“서우는 혹시 무서운 게 있어?”

“네.”

“어떤 건지 말해줄 수 있을까?”

“저는 큰소리를 아주 싫어해요.”

“그렇구나. 선생님도 큰 소리 무척 싫어하는데.”

“저는 놀라고 또 놀라서 아주 싫어해요. 무서워요.”

“큰 소리에 놀라고 무섭구나. 어떤 큰소리가 무서울까?”

“큰소린 다 그래요. 큰소리 날 땐 무서워서 안 들어요.”

“아, 그래서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 갑자기 문이 닫혀서 무서웠구나. 그때 기억나니? 귀 막고 무슨 노랜가 하던데.”

“네. 무서운 게 싫어요. 특히 엄마가 소리치는 건 더 무서워요.”

“엄마 소리?”

“우리 엄마는요, 마귀할멈이거든요. 엄마가 소리치면 아빠도 무서워서 방으로 들어가 버려요. 고래고래 소리 질러요. 우리 아빠도 엄마가 무섭대요.”     


엄마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서우는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말투도 거칠어졌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데, 초등학교 입할 이후 밤 11시 전에 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찍 자야 키도 크고 건강하다고 엄마한테 이야기해도 엄마는 안 된다고 우겼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11시 이후에 자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11시 전에 자면 성적이 떨어져서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을 거라며 불안했다. 서우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기보다는 중학교 3학년처럼 말했다. 서우는 갑자기 많은 이야기를 뱉어내면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엄마는 서우와 서우 언니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6년 동안 운영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더 잔소리했고 하늘을 찔렀다. 평소에도 잔소리가 심해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 서우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해서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아 문제가 없는데도 엄마는 요즘 부쩍 언니한테 하는 것처럼 큰소리를 내고 신경질을 낸다. 언니는 자신보다도 공부를 더 잘하는데 5학년 때 성적이 조금 떨어지자 엄마는 집안 망신시킨다며 언니를 달달 볶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언니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효녀였고 학원에서도 특목고 준비반에서 공부할 정도로 똑똑한 학생이었다. 한 번도 말대답하지 않던 언니가 6학년이 되면서 엄마에게 반항하고 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마가 입에 거품ㅇㄹ 물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엄마가 서우는 무서웠다.특히 아빠가 오는 시간이 되면 더욱 심해졌는데, 그때마다 엄마를 말리면서 언니를 타일렀다. 요즘은 아빠도 아예 늦게 들어오거나 서재에서 나오지 않는다.   

  

결국엔 그 불똥이 서우에게 왔단다. 언니가 못하는 공부가 이제 서우 몫이라고 하면서 서우에게 학원 셔틀버스도 못 타게 했다. 셔틀버스가 아파트 도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서우가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할 때마다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바로 이동했다. 서우는 그런 모습이 싫었다. 조금이라도 학원에 늦었다 싶으면 엄마는 차 안에서 욕하면서 큰소리를 쳤다. 서우는 엄마의 고함소리가 무서웠다. 예전처럼 11시까지만 공부해도 칭찬해주고 친구들과 놀다가 조금 늦게 학원에 가도 소리치지 않던 엄마가 그리웠다. 화를 안 내고 웃어만 주어도 더 잘할 자신 있는데, 엄마는 매일 신경질 내며 큰소리로 화를 냈다. 서우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너무나 무서운데 엄마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무시하면서 소리를 쳤다. 엄마가 서우에게 화풀이하는 것 같아 서우는 집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서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기 펭귄과 엄마 펭긴이 주인공인 『고함쟁이 엄마』 그림책이 떠올랐다.      

 『고함쟁이 엄마』(유타 바우어 글, 그림. 이현정 옮김. 비룡소).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엄마 펭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어찌나 크고 무섭게 소리를 치는지 아기 펭귄은 그 소리에 온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머리는 우주로 날아갔고, 몸은 바아에, 두 날개는 밀림에, 부리는 산꼭대기에, 꼬리는 거리 한가운데로 뿔뿔이 흩어졌다. 두 발만 그 자리에 남은 채 흩어진 자신을 찾으러 헤맸다. 아기 펭귄에게는 눈이 없어서 자기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부리가 없으니 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훨훨 날아서 빨리 찾고 싶은데 날개도 없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사막 한가운데 지쳐 쓰러져 있는 그때, 엄마 펭귄이 아기 펭귄의 몸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한데 모아서 꿰매기 시작했다. 엄마 펭귄이 아기 펭귄의 몸들을 찾다가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두 발을 찾은 것이었다. 엄마 펭귄이 아기 펭귄의 몸을 모두 꿰맸다. 엄마 펭귄은 “아가야, 미안해.” 라는 말을 하면서 아기 펭귄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여행을 떠났다.     


예정된 상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이 책을 서우에게 읽어주자 서우는 울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이 말 듣고 싶어. 정말 듣고 싶어요.”
“누구한테서?”
“엄마! 우리 엄마한테 이 말 들으면……. 우리 엄마는 이 말할 줄 모를 거예요.”
“엄마가 어떤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거야?”
“미안하다는 말이요. 엄마가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거 들어본 적 없어요.”
“들어본 적 없구나. 그래서 더 슬픈 거야?”
“네. 슬퍼요. 엄마는 내가 얼마나 무섭고 날라는지 몰라요. 엄마가 소리 지를 때마다 콩닥콩닥 뛰는 내 마음을 엄마는 몰라요. 아파요.”
“엄마가 큰 소리로 혼낼 때마다 서우는 슬프기도 하고 아프구나.”
“나를 혼낼 때 엄마는 내가 아픈 걸 모르는 줄 알았아요. 엄마가 화나는 걸 나한테 화풀이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이 책을 보니까 아기 펭귄이 저 같구, 아기 펭귄도 우리 엄마 같고 그랬어요.”
“아기 펭귄은 서우, 엄마 펭귄은 서우 엄마!”
“네. 무섭다며 숨지 않는 건 다르지만, 엄마의 큰소리에 놀라서 몸뚱이가 없어진 게 저 같았어요.”
“없어진 게…….”
“저도 엄마가 소리 지르고 고함칠 때마다 귀 막고 노래 부르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제가 사라진 것만 같아요. 조금 안 무섭기도 하구요.”
“그렇구나. 엄마가 소리칠 때마다 서우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도 막고 노래도 부르는구나. 그러면 엄마가 더 화내거나 혼재거나 그렇진 않니? 딴짓한다고?”
“엄마 앞에서는 안 그러구요. 얼른 내 방으로 와서…….”
“그랬구나. 좀 전에 서우가 울었는데, 왜 울었는지 다시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음……. ‘나랑 같은 애도 있구나.’ 해서 울었구요, 엄마한테 듣고 싶 은 말이 있어서 울었어요.”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 이 세상에 서우처럼 엄마한테 큰 소리로 혼나는 애가 없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애들도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맞니?”
“네. 덜 아파요.”
“그리고 서우는 엄마가 소리 지르고 고함치는 게 서우가 미워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기도 할까?”
“네. 그리고 엄마한테 미안하고, 또 그 말도 듣고 싶구요.”
“그렇구나. 지금 기분은 어때?”
“기분이요? 헤헤헤. 창피해요.”     


큰 애한테 기대했던 것이 못 미친다고 느끼는 순간, 작은 아이에게 그 기대감을 전이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부모는 더욱 조급해지고 답답해진다. 종종 부모들은 작은 아이가 큰아이만큼 성장하기도 전에 작은 아이의 어깨에 오르는 짐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대가 또 못 미칠까 두려워서 부모는 아이의 고통은 뒤로 보내게 된다. 이때 아이가 겪는 고통은 어떨까?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아이들은 부모 마음이 편하면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안다. 이 때문에 무리한 일도 자신이 감내할 수 있다고 느끼면서 받아들인다. 물론 이는 잠시뿐이다. 아이가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 부모들의 오산이다. 아이는 아직 아이일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감당할 몫이 있다면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감당할 몫은 따로 있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과 영역이 정해져 있듯이, 아이들에게도 그에 맞는 짐을 주어야 마땅하다. 작은 아이에게 큰아이의 몫까지 짊어지게 한다면 작은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까?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하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는 경우도 보았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는 건 무엇일까? 부모의 욕심이 아닌 아이의 욕심으로 자라는 것,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또래 관계를 잘 형성하면서 자라는 것이다. 서우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바라는 건 간단하다. 자신을 남고 빗대지 않았으면, 강요나 무시가 아닌 관심과 사랑으로 대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부모가 평소에 내뱉는 말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아이의 가슴에 비수로 꽂혀 독이 된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한다.          


부모 눈에는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유치원생같이 보일 것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한번 대화해보자. 아이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면 아이에게 고함쟁이 엄마의 모습으로 다가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분들, 상담현장에 계시는 분들께 도움되면 좋겠습니다. 빨







매거진의 이전글 아래층에서 그만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