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흐르는’ 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담아 정한 제목인데요. 숲에서 자연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제 그림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또한, 그림을 그리면서 제 마음속에 생각들이 흘러가는 것일 수도 있고요. 가끔 그림에 물감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흐르는 숲이냐고 질문하시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사건을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고, 행동도 느린 편이예요.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을 두려움의 존재로 느낄 때가 많아요. 세상을 복잡하며 이해하기 어렵고, 항상 긴장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런 복잡하고,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산책이었어요.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걷히고 마음이 맑아지는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주로 숲을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는데, 숲을 많이 관찰하다 보니 그것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진 거 같아요.
‘점’은 나뭇잎에서 비롯되었어요. 어느 날 산책을 하면서 본 나뭇잎이 둥근 ‘점’으로 보이고, 숲은 ‘점’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보였어요. 거대해 보이는 숲이라는 공간도 작은 요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숲의 모습은 삶의 모습과 닮아있어요. 삶 속에는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일들이 반복되잖아요. 숲에서 무수히 많은 나뭇잎들이 모여 큰 숲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삶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점을 반복하여 찍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제가 점찍는 것을 보고 어떤 선생님이 “너는 도를 닦고 있구나” 라는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는 ‘도’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와서, 그 말이 싫었는데, 날이 갈수록 도를 닦는 심정으로 점을 찍고 선을 긋는 거 같아요. 앞서 제가 굉장히 느린 사람이고,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란 두려운 생각이 들었어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했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삶의 요소요소들을 알아가기위해, 점을 찍고 선을 긋는 단순 행위를 하고 있어요. 이런 수련의 과정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림에서 나무의 잎과 줄기가 보이나요? 물론, 그림 속 형상들의 시작이 숲에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그들을 나무나 잎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워요. 그림 속 이미지들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하나의 풍경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같은 장소에 여러 번 가서, 그 곳의 풍경을관찰하고 경험해요. 그러면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 어떤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렇게 제 마음속에 생겨난 풍경을 저만의 색과 형상으로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리넨 천과 면천을 직접 사서 바탕 칠을 한 후 사용합니다. 이러한천에는 종이처럼 물감이 스며드는 효과가 생겨요. 이를 이용하여 천에 물감을 밀어 넣어 형상들이 재료에 스며들도록 합니다.
또한, 제 작업에선 색과 함께 목탄 드로잉 선을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림을그릴 때 먼저 드로잉을 합니다. 드로잉은 어떤 대상에 대한 인상이 생생하게 나타납니다. 문득, 풍경을 보고 ‘어’ 하고 영감을 얻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때의 감정이 ‘날 것’ 그대로 담겨지는 거죠. 그래서 그림이 완성된 후에도 처음 그었던 드로잉 선이 사라지지 않게 합니다. 그림을 시작했던 순간과 과정 속에서일어난 일들이 흔적처럼 남게 됩니다. 드로잉 하고, 물감으로색을 입히고, 다시 드로잉 하고 색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하여, 그려진 그림 속에서 시간이 쌓여간 흔적을 볼 수 있을거에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작품은 작가에게 자식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래도 하나를 고르자면 ‘점, 점, 점’ 이라는 그림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처녀작은 아니지만, 제게 있어서는 리넨 천을 사용한 후 처음으로‘아, 그래 이런 느낌을 원했어’ 하고 외쳤던 그림이거든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느낌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순간이었어요. 게다가 지금 저의 작업이 있게한 ‘첫’ 작품이었기에 저에겐 특별합니다.
아직 어떤 작품활동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작가가 되어야하나,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는 중입니다. 정해진답이 없기에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네요. 다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즐거움을 느끼고, 과정 그 자체를 즐기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명숙 작가님의 작품은 '꼰띠고 방배점'에서 6월 14일 화요일부터 7월 11일 월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은 직접 보는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