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현 작가 인터뷰
“바오밥 나무는 성당만큼이나 커서 아마 코끼리 한 무리도 그 나무를 당해 낼 수 없을꺼야”
- 어린왕자 中
바오밥 나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린왕자> 생각이 난다. 우주에서나 볼 법하게 생긴 이 나무는 “소혹성 B612를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무서운 식물”로 우리의 어린 기억 속에 남아있다. 우주 여행을 가듯, 저 먼 마다가스카르로 넘어가서 바오밥 나무를 내 눈으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바오밥 나무가 자라나는 마다가스카라는 마냥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닐 수 있다. 아름다움 이면에는 불편한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기 마련이고, 이를 목격한 자가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사람들에겐 '셍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통해서 알려진 바오밥나무는 전세계에 8종이 있으며 그중에,6종류의 바오밥나무가 마다가스카르에만 자생하고 있습니다. 셍떽쥐베리는 마다가스카르 항로 개척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가 상공에서 바오밥나무를 보았다고 알려져 있죠.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은 고온 건조한 사막화된 기후 조건에서 자랍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곳은 마다가스카르 서부의 'Morondava'라는 도시의 'Baobaba avenue'인데, 사실 마다가스카르에서 바오밥나무는 동부의 산간지방과 온대 기후를 가지고 있는 중부 지방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볼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바오밥나무를 보고 싶다면 육로로 차로 이동하며 다니신다면 마음껏 보실수 있을거에요. 다만 제약이 하나 있다면 바오밥나무가 있는 지역들이 대부분 미개발 지역이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답니다. 그러니까 육로로 2-3일씩의 거리를 이동하며 다니는 길과 길 사이에서 바오밥나무를 구경하실수 있을거에요. 바오밥나무는 우리들에게는 동화속에 나올법한 거대한 모습으로 인식되지만 모든 바오밥나무가 커다란것은 아닙니다. 수령에 따라 작은 크기의 바오밥도 있고 모양도 달라요. 그리고 마다 역사적으로 바오밥나무가 있는 해안선 지역의 '사카라바족'과 중부지방의 '메리나'족은 오랜 기간의 반복과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리나족이 사카라바족을 지배한 역사가 있는데 프랑스 식민지 이후에 프랑스식민정부가 메리나족에게만 권력을 주었기에,지역갈등이 더 심화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바오밥나무가 있는 지역들 대부분이 개발이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가난하고 학교나 병원이 없는 지역이 대부분 입니다. 그래서 바오밥 나무는 아릅답지만,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바오밥 나무는 아릅답지만,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오밥 나무는 그대로이지만, 그 사이 싸이클론에의해 쓰러진 바오밥나무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들앞에서 슬픈건 여전히 마다가스카르는 그대로라는 것이죠.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바오밥나무가 있는 지역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물이 내리지 않는 건조기후속에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예전에 바오밥나무는 내게는 동화속의 환상같은 존재였지만 제게는 아픔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만큼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고민도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입니다. 프랑스가 식민 지배를 한 22개의 불어권 아프리카 나라중 하나이며, 지정학적으로는 인도양 도서지역의 6개의 아프리카 섬나라중 하나입니다.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는데,가장 큰 문제는 사카라바족이라 불리우는 해안선 사람들과 중부지방의 다수를 차지하는 메리나족과의 반목과 갈등입니다. 메리나족은 마다가스카르의 부족 전체를 통합하고 왕국을 세웠었는데, 프랑스가 메리나족의 마지막 여왕인 '라나발로나3세'여왕을 내쫓고 식민지배를 하면서, 지배층의 권력을 메리나족에게 주면서 그 갈등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1960년에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여전히 프랑스의 이익에 의한 내정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까지도 프랑스는 자신들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불어권 나라들에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여전히 정치적,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다가스카르를 처음 찾게된것은 그곳의 현지 대학생들을 위한 교육봉사 때문이었습니다. 한데 그때 만난 친구가 맹장염으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은뒤로, 마다가스카르를 알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작업중에 있습니다. 작업할때 중심에 두었던것은 알려지지 않았던 마다가스카르 프랑스에 의한 마다가스카르 식민지 역사입니다. 현재의 문제는 과거에 있다는 질문이 있었시 때문입니다.그래서 처음 프랑스가 17세가 식민지 개척을 시도했던 Fort Dauphin도시부터 프랑스 식민정부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전멸한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 작업했습니다. 대부분이 육로로 그곳 local bus만으로 이동하며 작업했구요.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마다가스카르의 자연과 현실과 문제점들에 질문하며 작업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Distance : 10years of Madagascar입니다. 10년이 넘게 마다가스카르를 오가며 고민하며 작업했기 때문에 붙인 타이틀인데요. Nature(자연), History(역사), People(사람)에 대한 주제로 나뉘어서 전시됩니다.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 너머의 속살은 그와 다른 모습이 있죠. 가령 아름다운 바오밥 너머의 문제는 그 지역에 병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환상의 섬 나라라는 이미지 건너편엔 의료상황이 푀악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있죠. 또한 물이 없는 지역의 문제부터 불안한 정치로 인한 부패와 그로인해 발생횐 경제문제, 청년 실업자 문제등이 있습니다.
가장 큰것은 식민지의 역사의 아픔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공식적으로도 마다가스카르에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한적이 없어요. 또한 불안한 정치상황에 경제상황, 그리고 각 정부 부처의 부정부패에 실업문제까지 복합적인 문제와 상처가 있습니다. 또한 맹장염으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일은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거 같지만 그것이 현실이죠. 의료상황이 최악입니다. 수도에 있는 병원의 외과과장이 한달에 400불 정도 버는데, 그것이 마다가스카르의 현실이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아서 택시기사하는 친구도 만난적이 있어요.
이번에 전시하는 바오밥나무 사진이 있습니다. 의료팀과 함께 수술실에서 함께 돕다가 수술이 끝나고나서 촬영한 사진인데, 방금전의 눈앞의 현실과 다르게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동네 마을의 목동이 양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이었는데, 마다가스카르의 현실과 간극이 한꺼번에 느껴져서 아무말도 못한 순간이었죠.
기준이라고 할만한것은 마다가스카르의 기본적인 인문학 자료였습니다. 그 자료 리서치를 바탕으로 과거에서 현재까지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게 나에겐 기준이 되었던것 같아요. 나는 이방인이어서 객관화 시키기에도 주관적으로 말하는것도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적어도 말라가시 사람들 입장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업하면서 말라가시 친구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었죠. 마다에 대해 내가 고민하고 생각하는게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입장에서 고민하려고 작업하면서 이동을 해도 늘 Local Bus만 타고 다녔어요.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줘도 현실적으로 말라가시 친구들을 도울수 있는건 사진을 팔아 낸 수익으로 할수 있는게 실질적으로 말라가시 친구들에게 많지 않다는 한계점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말하는것보다 실질적으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을 위해서 할수 있는 행동이 뭐가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어요. 작업을 하면서 기뻤던건 함께 리서치작업할때 나와 함께해준 말라가시 친구들을 통해서 많이 위로받고 격려받았었는데,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친구들과 그들의 나라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보낸 시간이 나에겐 가장 소중합니다.
마다가스카르 작업은 평생 계속하고 멈추지 않을것 같아요.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결정지을수 없는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그래서 마다에 살면서 말라가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앞으로 또 다른 작업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멈추지 않고 마다가스카르에 대해 사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구요, 지금의 사진들보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재현 작가님의 작품은 '강남 카페 꽃을피우고'에서 3월 20일 일요일부터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