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내 작업은 사물,공간과 작별하는 방법이다.
머리로는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지만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언제나 느렸다.
그래서 나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 혹은사라져가는 것들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작품에 담고 나니 그제서야 사라짐을 받아들일수 있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온다.
결국은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작가노트 중
저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어요. 대부분 갑자기 사라지거든요. 흔하고 늘 있을 것 같은 것들도 말이죠.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지하지 않아요. 그러다가도 잠깐 잠깐씩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그때가 주변의 것들이 사라져갈 때인 거 같아요.
저랑 저와 비슷한 나이 때에 사람들은 어린 시절이 골목길을 뛰어 놀던 동네지만, 지금 대부분의 아이들은 커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아마 아파트일거에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사람들마다 시간이 달라요. 저는 제가 살고 기억하는 시간을 작업에 담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이때 살고 있는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그것들은 없어지고 있죠. 저는 한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작년에 그 동네가 모두 빌라 촌으로 바뀌었습니다. 수 십 년을 지켜오던 건물들이 그리고 그 안에 이야기들이 전부 반나절이면 부셔졌어요. 그곳은 내 친구의 집, 집에 놀러 오던 아줌마의 집, 나의 놀이터들 이었답니다. 하나의 시절들이죠. 내 머릿속에는 있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생겨버렸어요. 그때부터 동네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네모난 타일은 ‘픽셀드로잉(pixel drawing)’입니다. Pixel은 영어로 Picture element. 한자로는 화소(그림 화畵/ 본디, 처음소素)에요. 그림의 요소 혹은 그림의 처음이란 뜻이에요. 구상작업 이전에 픽셀드로잉을 이용한 추상작업들을 했습니다. 세포에서 시작한 드로잉인데, 소멸과 생성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모든것들은 작은 부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기에 당시 무엇을 그리든 작은 픽셀들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세포분열처럼요. 그때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생성될 때에도 그리고 소멸 될 때에도 분열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사라짐’이 무엇인가 생각했을 때, 그것은 작은 부분들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무언가가 생겨날 때의 모양과 크게 다르지않습니다.
따라서 제그림에 등장하는 픽셀드로잉은 사라짐을 암시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동시에 새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시든 꽃이 다시 거름이 되는 것처럼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이것을 다 그리면 사라져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픽셀드로잉은 하나는 변화(사라짐, 다시 만들어짐)에 대한 암시이고 동시에 제가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하나하나 픽셀을 그리면서 사물이나 공간에 가진 여러 감정들을 비워가는 동시에 그림 속 공간을 채웁니다.
동네나 사물을 묘사할 때, 그것을 그대로 담기보다 그림처럼 보이길 바랍니다. 분명 그것은 낡았지만 예쁘게 그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심지어 꿈을 꾸면 꿈 속에서도 사물들이 무슨 색이었고 누가 어떤 색과 모양의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이 날 때가많습니다. 주로 색으로 기억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림그릴 때 그러한 저의 성향이 더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사진 작업은 사진이기에 일부러 그 선명함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기억되는 색들이 있죠.
선물로 받은 작은 화분이 있었는데, 시들어 버렸어요. 저는 그것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소중한 것들은 저를 둘러싼 작은 것들이었거든요. 저는 의미붙이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더 시들기 전에 그렸던 것이 ‘시든 화분’이라는 작품입니다. 헌데 얼마 뒤 어머니께서 화분을 버리셨습니다. 슬픈 감정 뒤에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실제는 사라졌지만 내가 그린 그림 안에서 그것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란 믿음이 사라진 것에 대한 미련을 떨치게 해주었어요.
그것이 제가 사라짐에 관한 그림을 그리게된 시작입니다. 그리고 사물들만 사라질 줄 알았는데, 우리 집도 동네도 사라져버렸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라지기 전에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은 시간의 한 순간을 간직하여 그것이 다음에 밀려드는 순간들에 의해 지워지는 것을 막는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라는 존 버거의 책에서 이 문장이 선명하게 다가왔어요. 제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저의 한 순간이 다음에 밀려드는 순간들에 의해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집> 이었어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건물, 나와 우리 가족의 몇 년간의 흔적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 순간을 그대로 담고 싶었습니다. 사진 속에 담긴 장소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우리 집 입니다.
작품의 과정은 사진을 오래 보관하고자 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를 했습니다. 그 위에 먹으로 제 픽셀드로잉을 그렸습니다. 이 때 속으로 말합니다. ‘이것을 다 그리면 이제 이 장소는 사라져도 사라지는 게 아니야.’ 하고. 말했지만 픽셀드로잉은 나의 기도 같은 것이에요. 허나 지금도 이 집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속 강아지는 ‘이쁜이’라는 우리 집 개입니다. 원래 개는 주인을 따라다니잖아요. 제가 사진을 찍으려면 저를 쳐다보거나 저를 쫓아와서 자주 카메라에 찍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심할 뻔 했던사진이 보다 더 따뜻해진 것 같아서 좋았어요.
<우리집> 사진 시리즈는 얇은 스토리 북으로 묶어서 소량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우리 집이 부셔지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곳에 가지 않았어요.
작품 활동 이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저는 저의 재능이 누군가에게 기쁨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아! 재미있다."고 하면 설레고 무척 행복해집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좋은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제 작업을 통해서든 저를 통해서든 말입니다.
처음 작업은 저를 둘러싼 주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는 지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나 작업이 진행 될수록 저의 이야기에서 외부로 점점 나아가고 있습니다. ‘나⇒사물⇒공간⇒사회’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짐’이라는 키워드로 동시대에는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작업으로 기록하고 싶습니다. 현재에는 동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동네들을 그려서 가능한 그 동네에서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왜 동네냐고 묻는다면 동네에는 집집마다 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듬뿍 묻어 있거든요. 저는 그것을 그리는 거에요. 그 안에 사람들을요. 결국 우리도 사라지잖아요. 작품을 통해 저와 전시장을 온 사람들은 그곳을 기억할거에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요, 우리는 사라져도 그림은 남아서 기억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의 이별준비입니다.
작품이미지 보러가기 : www.7pictures.co.kr/jojungeun
조정은 작가님의 작품은 '이태원 해방촌 카페 intogo(인투고)'에서 3월 23일 수요일부터 4월 19일 화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