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쌓임_정은주 작가

Artist Interview

by 넷플연가
5_정은주_봄날그리움_mixed media on paper_65x40_2013_프레임있음.jpg 봄날 그리움_mixed media on paper_65x40_2013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다가 돌아오지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사람이 있다.

[봄길] – 정호승中


당신에게도 봄날 같은 사람이 있나요?


작업의 큰 주제를 ‘쌓는 것’이라 했다.

모호하지만 평범한 것들을 겹쳐간다. 그렇게 레이어를 쌓아가는 행위는 기억의 겹침, 역사의 쌓임, 추억위에 추억을 덮는 것, 사랑 위에 또 다른 사랑을 쌓는 것, 시간에 따라 기억의 흔적의 판을 쌓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드로잉과 사진을 포토샵으로 조정하고 다시 프린팅 한 후 페인팅과 바니시 작업을 쌓아 올라가는 것도 오류투성이인 작업을 좀 더 쉽게 풀 수 있는 최선을 행하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레이어와 쌓아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런 일상의 오류들을 조정해 나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과정을 작업에 투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아래 세대들은 더 하지만 포토샵으로 일을 오래했고 사고자체가 레이어를 겹쳐나간다는 알고리즘화가 되어 있는것도 크다. 나 말고도 요즘 그래서 더더욱 레이어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은 듯 하다.


4_정은주_Fall_pigment print on German Etching Paper,_71X40_2013_프레임있음.jpg Fall_pigment print on German Etching Paper,_71X40_2013


작품을 보면 참 은은하고도 강렬한 동양화, 또는 페인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얼핏 평범한 동양화나 페인팅 같은 그림이지만 들여다보면 디지털로 유닛화 된 펜, 붓 터치와 이미지 데이터들의 엇나간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시의 텍스쳐 위에 종이에 생길 번짐과 펜 선이 올려 있고 그림 같아 보이는 일부는 사진이거나 스티커이기도 하다. 이 어색한 조합이 데이터로 저장되고 이미지로 산술 되어 평범하고 흔한 페인팅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모호하고 경계 없는 것, 혼재되어 있는 다차원적인 이런 아이러니한 것들에 대해 거부감 없이 익숙해져서 살고 있는 현재가 나를 둘러싼 세상이라 생각한다. 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표현방식이다.


9_정은주_Lifesound_pigmentprintOnPaper_Gouache_manicure_acrylic_pencil_60X40_2015_프레임있음.jpg
정은주 작업과정.jpg

Lifesound_pigmentprintOnPaper_Gouache_manicure_acrylic_pencil_60X40_2015, 작업과정


이러한 작업과정을 택하는 이유가 있는가?

기술이 생기면서 '예전 회화가 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이기도 하고 '작가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던져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하하. 나은 미래를 소망한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것들을 겹치고 하나의 평면 안에 어울리게 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든 많든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하고 소통하는 세계에 대해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의 공존이기도 하고 여전히 바둑판 전쟁을 하고 있는 흑백으로 나뉘어져 존재하는 많은 것들의 화해와 협의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결국 오류 투성이의 기억과 현실의 판들을 쌓아 올라가면서 기록하고 스스로부터 화해하지 못한 것들과 화해하려는 노력이 나의 현재의 작업이다.


15_정은주_나무에페인팅_33x33_2011_액자포함크기.jpg 달 비 내리는 숲_나무에 페인팅_33x33_2011_액자 포함 크기


꽃잎 나뭇가지, 메니큐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나무, 삼베 등 다양한 곳에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의 세대가 카세트 테이프, LP, CD, 그리고 MP3까지, 또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해 본 격동의 세대이다. 그 이야기를 표현해 보고 싶은 것에서 시작했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향수, 세월을 품고있는 나무 판,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매니큐어 같은 것들로 지금 주변의 이야기, 내가 살아온 기록되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모든 재료를 사용한다. 모나미 검정펜, 비싼 수채 파스텔, 색연필, 그리고 담배 포장지, 엽서 등 재료와 소재에 대한 한정을 두려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도 버려지지 않고 다시 쓰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온 족적들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숲, 시즌, 풍경, moi 등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나의 이야기이다. 사랑하고 갈등하고 주저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하고 버스를 타거나 사진을 촬영하러 가거나 여행을 가서 본 풍경들, 숲, 전신주들, 기중기들, 내가 살고 있는 집, 관심사 모든 것에서 얻는데 가장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느 부분에선 잔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도 보이고, 애증하기도 하지만 애닯고 위대하고 길을 찾고 있는 '나' 혹은 타인들의 삶의 과정 안에서 '나'의 작업도 생각도 윤곽을 잡아 나가는 듯하다.


푸른숲.jpg 푸른 숲(Blue Forest)


다양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는가?

Blue Forest(푸른 숲)이라는 작업이 있는데 처음에는 60호 정도로 작업했다. 그 작업을 처음 선보이는 전시에서 메인 작업이 되었지만 사실 나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은 적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보신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 이걸 더 크게 작업해보라고 해서 300호짜리를 만들어 보았다. 그 후, Blue Forest(푸른 숲)은 5회 개인전 메인작업이 되었다. 나를 대표하게 되는 작업이 되었는데 다른 작업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좋은 작품이고 감사한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넘어야만 하는 산이 되었다. 산에 먹히느냐 산을 넘어서서 다시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느냐 하는 중요한 작업이 되어 버렸다.


11_정은주_꽃과나비2_pigment  print on German Etching Paper,_38X42_2013_프레임있음.jpg 꽃과 나비 2_pigment print on German Etching Paper,_38X42_2013


현재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미술만큼 내 인생을 관통하는 게 음악인데 음악은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매일 듣는다. 지금까지의 전시에서도 계속 음악과 연결된 전시들이 이어져 왔었고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 아닌가 한다. 근데 사실 춤을 추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너무 멋지다. 그래서 음악, 무용, 시각적인 작업이 합쳐진 멋진 것을 만들어 보는 것이 작가로서의 소망이다. 그리고 아직 솔로라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 하하. 그리고 그 동반자와 잘 조율하고 조정해 나가면서 잘 살아가는 것이 개인적이 목표이다.


6_정은주_grass2_pigmentprintonPaper_Pencils_Crayon_acrylic_68x40_2016_프레임있음.jpg grass 2_pigment print on Paper_Pencils_Crayon_acrylic_68x40_2016


앞으로 어떤 작품활동을 하고 싶은가?

많지는 않지만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은데, 그건 내가 풀어가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난 완전히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고, 실제로도 그림을 통해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일단 푸른 숲을 넘어서야 하고, 하하. 아직은 푸른 숲 속에서 헤메이고 있는듯하다. 푸른 숲 속이 좋다면 그 속에서 또 무엇을 찾아 낼지도 모른다. 또는 숲을 넘어설 수도 있겠지만 작가로서 미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또, 탐색하고 고민하고 삶을 이어나가야한다. 그 자체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멸의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좀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혹은 다시 떠올리게 되는 그런 작품들은 있는 것 같다. 그런 작품을 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사실 그냥 좋은 작가, 먹고 살만한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웃음)


2_정은주_Forest10_pigmentprintonPaper_Pencils_Crayon_acrylic_80x40_2015_프레임있음.jpg Forest 10_pigmentprintonPaper_Pencils_Crayon_acrylic_80x40_2015_프레임있음



정은주 작가님의 작품은 '가비터(스트롭와플엔커피)'에서 4월 4일 월요일부터 5월 8일 일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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