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디자인 노동자의 하소연
안되는 일을 되게하기 위해 내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부쳤다. 몇 살이었든 내가 어떤 신분이든, 주위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내 프로필의 한 줄을 보여주기 위해 될 때 까지 노력했던 것 같다. 더 나은 성장을 위해 꿈은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지만 매 단계에서 나는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미래의 키워드는 '성공'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그 어떤 것들이었다.
적성에도 맞고 교수님께도 인정받으며 다녔던 첫번째 대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더 좋은 학교에 가고싶었고 더 유능한 학생들과 공부하고 싶었다. 헛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1년이라는 시간에 야구장 매표 알바를 하며 편입 공부를 했다. 엄마의 권유도 한 몫을 했지만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무슨 깡으로 휴학을 호기롭게 신청했는지 모르겠다. 10시간씩 앉아서 공부해도 힘들다는 편입 공부를 잉여롭게 하면서도 "나 공부하고 있어. 공부하는거 진짜 힘들다?" 생색내며 스트레스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받았다. 암기형이라는 편입 시험의 특성과 운빨의 합으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대학생활의 이력에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수 많은 대외활동을 했다. 정작 전공공부와 취업준비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말이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뭐든 열심히만 하면 되는구나,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내가 노력하면 될 거라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후에는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내 미래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놓고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의 뼈아픔을 모른채.
내가 더이상 노력을 하지 않기로 한 건 두번째 회사에 입사한 후 뭐든 잘 해내려고 했던 내 의지와 노력이 조직 내의 이해관계와 부서 이동으로 무시당한 후 부터이다.
그렇게 원하던 이직을 성공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불타는 의지는 무참히 짓밟혔다. 내가 한 작업물을 두고 갖다붙일 수 있는 온갖 지적을 하며 '기어오르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했던 상사였다. 회사만 가면 가슴이 두근대는 불안장애가 그때부터 시작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벌벌 떨며 오로지 상사에게 혼나지 않기 위한, 한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수동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나의 자아실현과 꿈을 펼치는 곳은 아니라지만 내가 진정 하고싶은 디자인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내 커리어를 쌓아 나갈지 등의 고민은 저리 치워놓고 오직 큰 회사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내 자신을 다 설명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디자인을 할 수 없어, 100% 다 만족할 수 있는 회사는 없겠지 라는 합리화가 무섭게도 그 조직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다. 일에 있어서는 잘하고 완벽하고 싶은 내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3년동안에는 어떤 사소한 작업이라도 혼을 다해 디자인을 했다.
퇴근 후와 주말에 개인 작업으로 내 디자인에 대한 목마름을 채웠고, 다음 스텝을 위해 포트폴리오도 열심히 정리했다. 이렇게 노력을 하는 동안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내 모습을 뿌듯 해 하며.
하지만 그 조직에 수년간 길들여진 내 상사에게 '디자인'이란 컨펌을 목적으로 한 작업, 상황과 때에 맞게 대충 해도 되는 작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내 '헛된'노력은 윗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정치에도, 연봉을 올리는 데에도 티 나지 않는 수고로 비춰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입사한 지 3년 쯤 되던 날, 조직 개편으로 나는 다른 부서에 이동 되면서 더 이상 잘하려는 내 노력을 멈추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은 결과물의 퀄리티 뿐 아니라 그 조직의 문화와 수직 구조에 얼마나 잘 스며들어 중도를 지킬 수 있는지
지금은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조직이라는 어쩌면 잘 살아남기 위한 법을 가르쳐 주는 환경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일개 회사원으로, 언젠간 당당한 탈출을 꿈꾸며 노동 중이다. 열심히 한 계단 한 계단 앞만 보며 달려오던 예전의 나는 잠시 멈추었다.
'더 해야 해' 라며 타블렛 펜을 놓지 못하는 나에게 이 정도 까지만, 이정도면 괜찮아 라는 내려놓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9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