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선택

by 헬렌켈러



나는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부끄러워했다.
그 대상은 분명했다.
아빠와 엄마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부모잖아.”
“이제는 이해할 나이가 됐지.”
“용서해야 네가 편해져.”
그 말들은 모두 그럴듯했고,
그래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속에
오래 머물렀다.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편해지지 않았고,
붙잡고 있지 않은데도 놓아지지 않았다.

그 감정이 죄책감이라는 사실조차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어딘가 잘못된 사람 같다는
감각만 남아 있었다.

부모를 미워하는 내가
인간으로서 결함이 있는 것 같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애썼다.
이해하려고,
맥락을 찾으려고,
그들도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몸은 납득하지 않았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감정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밤이 되면
나는 여전히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괜찮아진 척한 만큼
더 깊은 곳에서 무너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처음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말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요구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용서는 의무가 아니었다.
회복의 조건도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제야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네가 아직 용서하지 못하는 건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직 아픔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 말을 허락했다고 해서
곧바로 평온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게 되었다.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살아갈 수 있었고,
용서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씩 숨 쉬게 했다.

아픔은
먼저 인정되어야 할 사실이지
극복을 증명해야 할 의무는 아니다.

용서는
그다음의 일이다.

혹은
끝내 오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그 선택권은
처음부터
피해자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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