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는 사람, 비우는 사람

by 헬렌켈러



엄마는
물건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이다.

화장실에 휴지가 두 롤밖에 없으면
금세 하나를 더 사 오고,
주방세제가 아직 남아 있어도
“없으면 어쩌려고” 하며 예비를 둔다.

엄마에게 물건은
안심이다.
눈에 보이는 대비책이다.
비어 있음은
허술함이고,
어쩌면 오래된 결핍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르다.
나는
여백이 없으면 숨을 못 쉰다.
식탁 위에 물건이 겹치기 시작하면
마음이 먼저 답답해진다.
베란다에 박스가 쌓이면
생각이 탁해진다.

엄마는 쌓아야 안심하고
나는 비워야 안심한다.

한 집 안에서
같은 공간을 두고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안을 관리한다.

나는 한때
엄마의 방식을 답답해했다.
왜 저렇게까지 쌓을까.
왜 아직 쓸 수 있는 걸 또 살까.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쌓는 건
물건이 아니라
“없었던 날들”일지도 모른다고.

필요한데 없어서 곤란했던 순간,
모자라서 참아야 했던 기억,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불안.
엄마에게 여분은
낭비가 아니라
재발을 막는 보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조용해졌다.
엄마의 불안 관리 방식을
내가 비난할 수는 없다.
물건 덕분에
엄마가 조금 덜 불안해진다면
그것도 하나의 생존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정했다.
엄마를 바꾸지 않겠다고.
대신
내 할당량의 공간에만
비움을 허용하겠다고.
내 책상,
내 방,
내 서랍.
그 안에서는
나는 숨 쉬듯 비운다.

엄마에게
“왜 이렇게 많아?”라고 말하는 대신
정리를 도와준다.
“이건 버려도 될까?”
물어보고,
허락을 받고,
함께 하나씩 비운다.

그리고
비워진 공간을
잠시 그대로 둔다.

엄마가
그 여백을
직접 체험해 보도록.
강요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고.
빈 공간이
생각보다 불안을 키우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느끼도록.

나는 정리 유튜브를 보다가
한 문장에 멈춘 적이 있다.

“두 개를 사면
두 개를 비워내세요.”

그 말은 단순했지만
나에게는 원칙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집은 결국 창고가 된다고 했다.

나는 그날
샤워타월을 버렸다.
이미 여섯 개가 있었고,
엄마는 또 하나를 사 왔다.

기존 것도 충분히 쓸 만했다.
나눠주기엔 애매했고,
솔직히 말하면
나눠줄 에너지도 없었다.

그래서 버렸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필요 없어서.

내 공간 한 평의 가치는
이천만 원이다.

천 원짜리 물건 하나가
수천만 원짜리 공간을 차지하게 둘 이유는 없다.

그건 낭비가 아니라
선택이다.

엄마는
물건이 있어야 안심하는 사람이고
나는
여백이 있어야 숨 쉬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를 고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덜 불안해지기를 선택한다.

나는 오늘도
두 개를 사면
두 개를 비워낸다.

그리고
엄마의 물건을
억지로 줄이지 않는다.

정리는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공간을 책임지는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집이 창고가 되지 않게 하려면
마음도 창고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되
나를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 공간만큼은
비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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