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드러난다

현상학적 사유로 읽어내는 존재의 심연

오랫동안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철학 서적들을 다시 꺼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표지 위로 에드문트 후설과 에디트 슈타인의 이름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생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생활세계는 늘 소란스러웠고 새로운 시대가 몰고 오는 변화의 파도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한때의 나에게는 세상을 향한 선입견을 잠시 멈추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백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삶은 분석하고 관찰하기보다 치열하게 응답하고 전력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전쟁터와 같았다. 그렇게 잊고 지냈던 학문적 갈증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아이들을 위한 사고력 교재와 철학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다시 시작한 현상학 공부는 특히 어린이 철학 동화를 쓰는 과정에서 분명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어른의 관습적인 시선으로 그들의 세계를 미리 재단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현상학에서 강조하는 판단 중지 즉 에포케를 실천한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겹겹의 고정관념을 잠시 밀어 두고 대상의 본질을 마주하게 하는 일종의 정신적 정화 과정이다. 아이들이 던지는 엉뚱한 질문과 기발한 생각 속에 숨겨진 존재의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은 개별적인 현상을 넘어 사물의 본질로 돌아가는 현상학적 환원의 여정과 닮아 있다. 존재의 원형이 사물과 사건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추적하며 이를 이야기로 옮기는 일은 현상학적 사유라는 철학적 토대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생명력을 얻었다.



이러한 시선은 일상의 관계를 대하는 태도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이웃들의 글을 읽을 때도 나는 이제 문장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지향성을 한 번 더 읽어내려 노력한다. 우리의 의식이 항상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다는 이 지향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글이 가리키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과정 자체가 풍요로운 정신 활동이 되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말 너머에 있는 고유한 경험을 존중하고 그가 드러내는 현상의 깊은 본질을 포착하려는 나의 노력은 관계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타인을 미리 정해진 틀에 가두지 않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주체로 마주하는 일은 사람을 이해하는 지평을 끝없이 넓혀주곤 한다.



무엇보다 20년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행동 이면을 포착할 때 현상학은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수많은 아이를 만났지만 그들의 행동은 매번 낯선 현상으로 다가오곤 한다.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돌발적인 상황이나 아이의 거친 행동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기존의 규칙으로만 판단한다면 결코 그 본질에 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행동이 아이의 내면에서 어떤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행위는 편견 없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밀하게 기술하는 현상학적 기술의 수행과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이면을 흐르는 본질적인 욕구와 성장하려는 의지를 발견할 때 교육의 해답은 비로소 선명해진다.



각자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사고와 가치관이 우리의 무의식적인 판단을 지배한다는 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졌다. 이는 우리가 과거에 내린 판단과 경험한 가치들이 사라지지 않고 의식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 현재를 해석하는 배경이 된다는 침전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에드문트 후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에서 이미 수동적 종합이 이루어지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나 역시 지난 세월을 통해 이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과거의 경험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지층이 되어 있었다.



특히 에디트 슈타인은 인격의 핵심 내부에 정신적인 가치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이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말한 인격적 핵심은 외부의 자극이나 환경의 변화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중심이다. 결국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거대한 영역조차도 오랜 시간 쌓인 본질적인 철학적 가치들이 현상학적 지평으로 작용하고 있는 결과물일지 모른다. 현상학적 이론이 그 어떤 철학보다 내게 선명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머리로 얻은 지식이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눈빛과 갈등의 순간들이 철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20년은 수많은 아이의 내면에 숨겨진 인격적 핵심과 대면하며 나만의 인식 지평을 확장해 온 시간이었다. 교육 현장에서 겪은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단편적인 사건으로 휘발되지 않고 의식의 기저에 의미 있는 층위로 쌓였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대상의 본질을 보려 했던 무수한 시도는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을 정제하고 교육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경험의 침전물은 이론으로서의 철학을 삶의 실천으로 전환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어주었다.



시간은 본질을 가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투영하는 거울이다. 아이들의 이면을 읽어내려 애썼던 지난 시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현상학적 수행이었으며 내 무의식 기저에 쌓인 가치들은 이제 정제된 문장이 되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진정한 가치는 서두른다고 드러나지 않으며 오직 시간이라는 숙성을 통과한 뒤에야 본질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현상은 흐르고 변하지만 시간을 견뎌낸 진실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그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정립하여 아이들의 언어로 그리고 나의 문장으로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비로소 드러나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