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 맨 끝에 아주 가는 붉은 실이 계속 이어진다
발을 헛디뎌 왼쪽 발등 골절로 행동반경이 급격히 줄어든 탓인지 요즘 몸과 마음이 가을 낙엽보다 더 건조해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무작정 달렸다.
남양성지 입구에 주차를 하고 흙먼지나는 오르막 길을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깁스 한 신발이 뒤로 쏠리며 숨이 가팠다.
거칠게 몰아쉰 내 숨소리에 놀라 구멍 숭숭 뚫린 나뭇잎이 발등 위로 뚝 떨어졌다.
의자에 앉아 세월에 뚫린 구멍을 서로 위로하고 있으니 저 멀리 종탑에서 '도. 레. 미. 파. 솔. 라. 시.'가 밀레의 만종처럼 울려 퍼졌다.
대성당 로비에 들어서자 대리석 계단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르신들을 위해 2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자는 신부님 제안에 스위스 거장인 빛의 건축가 <마리아 보타>는 “천국의 계단을 올라야 하느님께로 갈 수 있다”라며 좁은 대리석 계단을 고집했다고 한다.
붉은 벽돌로 구성된 50m의 거대한 두 개의 타워가 성지의 구심점을 형성하고 대성당 내부는 “빛은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 재료이자 건축의 완성”이라는 설계자의 말처럼 지붕 천창(天窓)을 통해 다양한 빛으로 연출된 그 빛에 압도되어 두손을 모았다.
미사를 마치고 성물방에서 산 묵주를 들고 눈물 겹게 아름다운 성지를 천천히 순례했다.
한 알 한 알 구술이 손끝을 넘어갈 때마다 이렇게나마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고 내 눈동자를 뒤흔드는 이곳의 바람과 하늘과 땅 위에 감사의 성호를 그었다.
정수리를 내리쬐는 햇살이 음식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발길을 유도하자 잔치국수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점심을 먹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또래 여성분이 말을 걸었다.
“수원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잘 모르는데~ 그럼 제 차로 함께 가실래요?라고 했더니
제주에서 올라온 친구가 기도 중이라 1시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우린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말 끝에 책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레 요즘 뜨는 소설 제목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서로 글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소월과 오은 한강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랭보에 관해서 뭉크와 에곤쉴레, 그리고 프리다 칼로와 일 포스티노에 나오는 메타포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대화가 잘 통해서 기뻤다.
우린 그 친구분의 기도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주차장으로 갔다,
정해진 시간에 나온 그분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차 안에서 종교와 인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공통분모가 많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했다.
나는 오늘 찍힌 시작점이 내일의 곡선으로 이어지길 희망하며 전철역에서 두 분을 배웅했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 맨 끝에 아주 가는 붉은 실이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