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1

[1. 나는 왜 전기인이 되었나?]

by 종구라기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선택 중 하나는 바로 대학 전공입니다.

직업의 기초가 되고, 때로는 인생 전체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 중요한 결정을, 지금 돌아보면 참 단순하게 했습니다.

1983년,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립대는 비용 때문에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집 가까운 국립대를 택하며 학과를 고민하던 중,

친한 친구가 전기공학과를 선택하자

그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심정으로 저도 전기공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전기공학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전자기학, 전기회로, 전기기기, 전력공학…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이다 보니,

“전기공학은 철학이다”라는 농담 같은 말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일부 친구들은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고

저 역시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우유부단한 성격 덕분인지 이리저리 하다 졸업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졸업 전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고,

졸업 후에 군 복무를 위해 공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공군 복무를 마친 후,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 연수를 받기 위해 서울 공릉동 연수원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본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위험한 작업 환경이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어둡고 먼지 가득한 근무 환경,

수십 미터 송전철탑 위에서 작업하는 송변전 직원들,

안전모에 의지한 채 철골 구조물 위를 오르는 장면들

그 영상들을 통해 저는 한전 직원들의 노고와 희생을 실감했습니다.


전기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도달합니다.

수력·화력·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

초고압(765kV, 345kV, 154kV) 송전선로로 변전소 송변전

변전소에서 전압을 낮춰 22.9kV 배전선로로 공급

아파트 전기실을 거쳐 380/220V로 바꿔 각 가정에 공급

이처럼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금,

스위치 하나로 불을 켜고, 냉장고와 세탁기를 돌리고,

편리한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기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전압, 주파수, 정전율 등에서 뛰어날 뿐 아니라

요금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 전기 뒤에는 숱한 희생과 땀이 있습니다.

2018년 태안화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 님

송전탑 작업 중 추락 또는 감전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

그분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전기’라는 문명의 편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전기는 보이지 않지만,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이들의 땀과 희생을 딛고 살아갑니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 —

그 이면에 담긴 수고와 생명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끼고 절약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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