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주 생활 이야기]
6-3. 신구간 이야기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라 불리는 특별한 시기가 있습니다. 음력 절기상 ‘대한’ 이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정확히 일주일간 이어지는 이 기간은 하늘의 신들이 지상을 떠나는 시기라 하여,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사나 집수리 같은 큰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여겨집니다. 지금도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시기를 맞춰 움직이는 풍속이 남아 있습니다.
1998년 1월, 바로 이 신구간을 앞뒤로 하여 제주시 화북동의 한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새해와 함께 새집에 들어가는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습니다. 각 세대로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가스 정압실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난방이 되지 않았고, 한겨울 추위 속에 입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현장 직원들은 퇴근도 미루고 각 세대를 돌며 보일러를 점검하고, 전기장판을 나눠주는 등 온 힘을 다해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고 부모님을 뵙고 왔겠지만, 그해 설에는 모두가 제주에 남아 입주민들과 함께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불편함을 감내하며 현장에 머물렀던 그 며칠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그 무렵, 동절기에는 ‘동절기 공사 중단 기간’이 있어 전국에 있는 모든 감독원들이 교대로 속초 연수원에 모여 동절기 감독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법 개정 사항, 설계 변경 사항, 현장 사고 사례 및 주요 하자 사례 등을 전파하는 실무 교육이 이어졌고, 건설처장님의 강의시간에는, 제주 화북 가스 공급 오류 사례가 단골 메뉴로 등장했습니다.
화북 현장 직원들은 며칠 밤을 지새우며 가스 공급 안정화를 위해 진심을 다해 고생했습니다.
한편, 전기 공급은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전기는 한국전력공사에서 공급받는데, 공급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땅 위에 전주를 세우고 전선을 설치하는 가공선로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땅속에 배관을 묻고 그 안에 전선을 설치하는 지중선로 방식입니다. 지중선로는 도시미관에 유리하나 공사비가 비싸고 암반이 많은 제주에서는 시공이 더 어렵습니다.
화북 아파트의 경우, 당초 지중화를 검토했지만 암반 지형과 공사 기간, 비용 등을 고려한 끝에 가공선로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전기 공사는 입주 전에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전기 관련 민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육지에서는 IMF 외환위기로 모두가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제주에 머무는 동안에는 크게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바쁘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1998년 6월, 저는 서울본부로 발령을 받아 제주를 떠났습니다.
그해 겨울,
제주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장소였고,
나에게는 또 하나의 소중한 현장 경험이 새겨진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