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취준
4년 만이다
8월. 7월부로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를 결심한 지 1년, 이직할 곳을 찾고 퇴사해야지 결심한 지 반년.
일에 치여 그 어떤 결심도 성취하지 못하고 번아웃이 와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야 번아웃 오기 전에 이직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된다.
쉬는 것에 딱히 익숙하지 않아 첫 한 달은 제대로 쉬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보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약속과 가족들과 휴가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9월. 이제야 늦잠도 자게 되었다. 쉬는 게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게 익숙해지는 게 무섭기도 했는데 중독되어 생산적인 생각을 하기 싫었다.
두려웠던 것 같기도 했다.
마감기한이 다가오는 것 같았으니까
10월. 이제는 진짜 뭔가 시작해야 할 시기다.
이제껏 아직은 쉬는 중이야,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했다는 말로 미뤘던 앞으로 뭐 할 건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막막했다. 아니 막막하다.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 시간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보라고 했다.
나 듣기 좋은 소리로 하는 걸 알고 있다. 마냥 무기한으로 보낼 수는 없으니까.
이 기간에 대한 소중함, 중요함 을 잘 안다. 그만큼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살면서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는 열의가 있던 적 있나 싶다.
자꾸 하고 싶던 거 끌리는 거 해보라는데 그런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길을 잃은 기분의 연속이다.
잘하는 게 좋았다. 남들보다 조금은 잘난 기분이 좋았을까?
그래서 어쩌다 발견한 미약한 잘함에 항상 몰두했던 것 같다.
진취적인 성격에 비해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싫어한다.
처음이라는 단계에서 내가 책정되고 평가받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항상 어쩌다 걸린 작은 공간에서의 큰 입지에 중독되는 것 아닐까
30대가 되고 이제 더 이상 내가 작은 게 당연하지 않게 되니 사회에 내놓기 좀 무섭다.
쓸데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진로를 위탁하게 된다.
뭐 해 먹고살지
친구들, 가족들에게 시작해서 사주도 보고 신점도 봤다.
제가 뭘 하면 잘할까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이직할 수 있을까요?
나를 길게/짧게 아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뭘 해도 잘할 거라 의심이 안 간다고 했다.
잠깐 아는 사람들은 나의 포용성을 크게 봤고, 길게 아는 사람들은 나의 통찰력이나 근성을 크게 봤다.
공감은 했다. 내 장점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신점도 봤다.
퇴사하기 전 유명하다는 신점을 소개받아 8개월을 기다려 봤다.
신점에서도 나는 직무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뭘 해도 잘할 거라고 했다.
마케팅, 무역, 관광, 요리, 공무원, 의료, 연구원 등 뭐든 괜찮다고 했다.
예상했던 답변이라 공감받은 기분이었다.
정말 뭘 해도 상관없었고 뭘 해도 중간이상은 잘할 자신이 있었다.
자만처럼 보이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못한다.
사실 능력이 있어서 자신 있다기 보단,
정말 뭘 해도 상관없는 도화지 같은 상태가 맞는 거 같다.
결국 좁혀지지 않은 고민거리에 허무했다.
헛된 경험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니 뭐든 작은 거라도 많이 뿌리라는 말을 들었다.
다시 돌아왔다.
뭐 해 먹고살지..
퇴사하기 전에 막연하게 한 직무가 관심 가긴 했다.
현재 하는 일에서 발전해서 그쪽 직무를 전문으로 맡고 싶었지만 워낙에 작은 회사라 그거까지 맡아 할 수도 없었고 이끌어줄 책임을 줄 사람도 없었다.
관심 갔던 직무가 나의 전공이나 경력과 완전히 무관한 분야라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무지한 일반인이었다. 누군가 왜 그 직무를 하고 싶냐고 구체적으로 그 직무의 무슨 분야, 어느 업계를 물어보면 답변하지 못한다. 좀 작아졌던 것 같다.
좀 진지하게 알아봐야지 마음먹고 관련 직무를 구하는 공고들을 찾아봤다. 너무 멀게 느껴졌다.
관련 전공지식도 없고, 직무자체가 포괄적이라 그 업무에서 장점으로 보여줄 다룰 줄 아는 도구들도 나에겐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누구든 뽑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지 않았다.
별거 아닌 나의 스펙이 아쉬웠나 보다.
애매하게 나쁘지 않은 학력이,
이미 까먹어 당장 유창하게 영어 쓰지도 못하는 해외경험이,
경력직으로 쓰지도 못하는 사회경험이 아쉬웠다.
이미 20대에 이 숙제들을 지나왔던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다들 참 성실했구나 우직했구나 내가 당시 당찬 선택이 아니라 회피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준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작고 작게 회사의 규격에 맞게 구기는 과정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어줍지 않게 나의 경험이 아닌 주변 경험으로 쌓은 간접경험으로 도전하기 두렵다.
한심하다.
조금은 우울하고 답답한,
주변한테 충분한 위로와 응원을 받지만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한 발만 나가면 되는데 안주하게 되는,
수많은 성공담과 당찬 이야기가 가득한 사회 속에서
나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고 적어가 본다.
앞으로 흔한 도전을 이겨낸 이야기가 될지, 푸념만 하는 우울함이 가득한 이야기가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