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을 수 없는 그날

범죄 피해자 가족의 눈물

by 이지애 마리아



g6b9cae7fbeab050fcd57a7a2d2ab4873e4d7bbcfb741aa89b6e1350ea7d695f2a6a5aa7ae5b.png?type=w1 © Perlinator, 출처 Pixabay



다른 누군가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날이 있을 것이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국가 폭력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불의의 사고로 애달프게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몇십 년이 흘러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처럼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어떤 날에는 누군가를 한 없이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절대 살아가면서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보듬고 다독여주며 도움의 손길에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떤 개인 혼자서 도움을 주기에는 한계치에 이르기 때문에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엄청난 일을 경험하면 어느 순간에 사람의 심리와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켜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뭐라고 수군거려서도 아니 된다. 그저 평온하고 순탄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은 이러한 비극적인 일을 경험한 사람이 하는 언행이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상대는 진실로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서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참혹했던 경험이 세월이 흘러 기억으로 자리 잡아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이 모두 조용하면 쓸데없이 기억 회로는 35년 전 그날의 현장으로 나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빨간불, 초록불은 번갈아 오작동과 굉음을 내기 일쑤이다. 텔레비전 전원을 켜고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비슷한 장면을 시청해도, 라디오에서 우리 가족이 경험했던 비슷한 사연을 청취해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을 신문기사에서 읽어도 과거 어느 날 현장에 고스란히 서 있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잿빛 구름으로 뒤덮인 오전 시간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공포감이 몸과 마음을 뒤덮일 때도 있고, 공사장 인근을 지나가던 중에 위를 올려다보게 되어 그날의 가슴 아픈 경험이 떠오르고, 어린 아기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어느새 그 아기는 그날의 나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야 해서 현재도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소리 없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곤 한다.


어느 시인의 시 한 편을 감상하노라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격앙되는 감정이 마구 뒤엉켜 도대체 이런 복잡한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어떤 정평이 나 있는 의료인들도 우리 가족 구성원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는 없다.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용의자를 아직도 검거하지 못한 채 공소시효라는 법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더럽고 추악한 법 같으니라고!


어쩌면 우리 가족 구성원 중에는 그러한 힘든 경험이 기억으로 자리 잡아 그토록 어느 000을 유독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1986~1988년 사이 어느 계절, 몇 월 자정을 알리는 벽시계 추가 열두 번 '땡~땡~' 하며 울린 후 몇 분이 흐르고 검은색 복면을 한 같은 색상의 가죽 재킷, 가죽 장갑을 착용한 그리고 체형은 거구의 어둠의 누구들을 닮은 사람처럼 생겼다고 한다. 2명의 건장한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점포 문을 닫으려고 밖으로 나가던 중에 그들은 주변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던 모양이었다. 몇 날 며칠을 탐방하기도 하였던 모양이었다. 주변이 아무도 없고 고요해지기만을 노렸던 모양이었나 보다.


갑자기 들이닥쳐 무장정 끌고 어느 방구석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지를 뒤로 옴짝달싹 못하게 어떤 밧줄로 그 색상도 여전히 기억을 하고 있다. 주황색 밧줄이라고 하였다. 그 밧줄로 칭칭 동여매고 입에는 청색 테이프로 말을 할 수 없도록 붙여놓고, 가진 모두 내놔!라고 하면서 협박을 하고 순식간에....


현장은 붉은색 선홍빛으로 홍수가 되었고 그래서 그중에 한 명은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제가 생명은 건져 드릴게요, 어서 빨리 응급실로 가세요! 하면서 피해자를 결박한 밧줄을 느슨하게 매듭을 풀어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피해자는 붉은 선지로 물든 복부를 움켜쥔 채 집으로 돌아와서 고요히 잠든 우리 가족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 길로 가족은 응급실로 가고 (그 시절은 119 시스템이 전혀 없었음) 나는 목격과 현장 경험담을 고스란히 들었고 현재도 토시 하나 장면 하나 놓침 없이 빼곡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긴급한 응급수술을 몇 시간에 걸쳐 끝마친 의료인은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아마 1~2센티미터 깊었으면 생명을 잃으실 뻔하셨습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그래도 위태로워 중환자실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 시절 강력 사건이 발생해도 수사할 수 있는 방법도 열악했었는지 아니면 봉투를 건네줘야만 그나마도 일을 하는 척했던 것인지, 모래사장에서 자석 없이 바늘 찾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광활한 텅 빈 광야에서 0 서방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이렇다 할 단서를 못 찾았다고 한다. 지문 감식 채취를 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현재처럼 유전자를 분석하고 골목골목 도로 어느 곳이든 CCTV가 설치되지 않았던 언제나 전국 방방곡은 후미진 곳이 다반사였던 아주 오래전 옛날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처참하고 끔찍했던 기억을 갖고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적막하고 고요한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반려동물 친구와 함께 사는 이유도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자그마한 인기척 소리에도 "멍멍" 짖는 소리를 들어야 그제야 놀란 심정을 쓸어내리고 진정할 수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은 몇 개월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었다. 어쩜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나를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한 성향의 사람으로 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유달리 둔감하기도 하고 눈치가 없을 때도 있고 도대체 내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나 자신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래야 방어를 하고 대비를 하면서 살아남아야 할 테니까...


아무도 무너지는 이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다. 나만 아는 고통의 감정일 것이다. 그 어떤 불로초가 있다 한들 그 용의자를 검거할 때까지는 성난 신경과 감정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공개하는 사연은 혹시나 그 작자들이 다시 기웃거리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범죄 피해자 당사자는 35년 세월이 흘러도 늘 언제나 그날 현장에 머물러 살아간다. 지긋지긋하니 잊어버리라고 될 일이 아니다.


어디 놀러 가서 생명이 으스러져도 그 당사자한테는 고스란히 피해를 입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평생의 시간이 다 흐른다고 할지라도 잊을 수가 없을 것이고 밑도 끝도 없을지라도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면서 쓰러져간 생명을 되살리라고 항변이라도 해야 할지 모른다. 동병상련의 아픔은 감히 누구도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화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글을 쓰다 보니 주거환경도 나 자신이 살아보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상대방의 고통을 헤아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어린아이 울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사연을 읽고 들으면 마구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음에 예민한 상대가 조금이라도 볼륨을 낮추든가 함께 살아가려면 조심해 달라고 하는 사정일 텐데....


우리는 순간 "어린아이" 이러한 문장에서 발끈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억의 오류로 나타나곤 한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다행히 층간 소음으로 인한 아직은 항의를 받아본 일도 없었고 누구에게 항의를 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다.


요 며칠 전 대낮에 더덕 한 봉지를 사 와서 더덕장아찌를 만든다고 깨끗이 손질하여 방망이로 그냥 힘을 주어 밀었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시골 촌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쿵쿵 찧었던 소음이 그대로 아래위층, 옆으로 번져나갔던 모양이었다. '띵동 띵동' 하는 벨 소리를 들었다. 젊은 나는 무슨 영문인지를 캐치해 냈는데 어르신들은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전해 이해하지 못하신다. 차분하게 설명을 해도 역정만 한가득 내실뿐이다. 난 이 부분이 굉장히 궁금하다. 왜? 사람이 노화되고 노쇠되면 주위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까? 오로지 나 자신만 바라보라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해질 때가 있다.


노년에 접어들면 마치 서너 살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 된다고들 한다. 먹을 음식을 두고도 서러움과 야속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빈 좌석 하나에도 마음 상해하고 어떤 성향의 사람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고 하니 이 무슨 인체 시스템이 이리도 복잡하단 말인가?


오전에 일찍 용무가 있어 외출을 하다가 오후 4시를 알리는 시곗바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쿵쾅쿵쾅 불안해진다. 그리고 그 자리가 이내 가시방석이 되곤 할 때가 있다.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어둑어둑해지는 어둠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공포가 엄습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어디를 맘대로 다닐 수가 없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도 매우 불안해진다. 그 철천치 원수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검은색 헬멧과 같은 색상의 비옷을 입고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배달 라이더가 한 명 타고 올라가는데 갑작스럽게 호흡하기 버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었다. 매우 불안한 감정이 펄펄 끓는 주전자 뚜껑이 열릴 듯 말 듯 한 그런 기세였다.


지금 어딘가에서 버젓이 살아있다면 그들은 50~60 초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통수권자였다면 옥수숫대에서 낱알 털듯이 털었을 것이고, 이불을 털면서 미세먼지 한 올이라도 샅샅이 낱낱이 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해외로 이민 간 교포들까지 모조리 다 조사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공소시효는 과거 몇십 년 전에 발생한 일이든, 몇 백 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든 상관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법이 그렇게 강경하고 무시무시하게 개정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야 이 땅에 더 이상 무고한 생명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깐 말이다.


그리고 누명 쓰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그러한 법적 제도는 잘 만들어서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피해자가 갑이 되어 범죄자에게 평생 갑질을 하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덧붙이면 원하지 않는 입에 담을 수도 없고 글로 남길 수도 없는 범죄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입증해야 하는 그 썩어빠진 법을 싹 다 피해자 중심에 맞도록 개정했으면 좋겠다. 기초 간호학 모성 간호학 과목 은하 출판사 2020년 개정판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팁 박스 안에 설명이 있다. 낙태에 관련된 내용이다. 별 거지 같은 법이 다 있다. 피해자가 일일이 다니면서 입증할 만한 증거를 수집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대한민국 법은 남자들 위주로 된 그래서 판검사가 거지 같은 판결을 하는 건가 보다. 가부장적인 폐습적이고 악습적인 유교문화 뿌리가 뽑히길 상상 속에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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