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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pr 26. 2023

1975년 5월, Plein 50 leil.

 

   애청하는 영화 팟 캐스트에서 <내 인생의 첫 영화>라는 꼭지를 들었다. 여러 사연이 소개되었다. 작품 대부분이 나를 세대 차이의 벽 앞에 데려가 얌전히 세워 놓았다. "살인의 추억", "괴물", "다이 하드", "가을의 전설" 등이 소개될 때 '이 걸?' 하다가는 곧 '아!' 했다. 강에는 늘 새 물이 흐르고 아이들은 늘 태어나는 법이다. 

   놀라운 사실은 심형래 감독의 "디 워(2007년)"와 "용가리(1997년)"등 여러 작품(이라고 부르기엔 솔직히 망설여지지만)을 첫 영화로 꼽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 땅의 씨네필들에게 이토록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위대한 감독이었을 줄이야. 존경의 념으로 옷깃을 살짝 여몄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영화는 무엇이었나. 어렸을 때 TV의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을 통하여 꽤나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색 바랬지만 나의 의지로 극장에서 처음 봤던 영화의 기억은 또렷하다. 스토리와 영상이 강렬했고, 무엇보다도 나의 심장 뛰는 소리가 마치 다듬이질 소리처럼 들릴 만큼의 절체절명의 위기감 속에 범죄와 연루되었으므로.      


   중학교에 들어가니 1년에 두어 차례 꼴로 단체 영화 관람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마친 날이었다. 간혹 학교 행사로 뭔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뭔가 마땅히 할만한 것이 없어서인가 싶은 때도 있기는 했다. 가장 많이 접한 장르는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와 김희갑, 황정순 배우 주연의 "팔도강산" 시리즈였던 것 같다. 

    

   "다음 주 토요일에 중간고사 끝나면 학교에서 단체 영화 관람 간다."

   "와!"

   "뭐 보러 가요?"

   "성웅 이순신."

   "에이..."

   "단체 관람은 수업의 연장이니까 한 사람도 빠지면 안돼 이 놈들아. 명수대극장으로 갈 거고 입장료는 50원이니까 반장한테 다음 주까지 내라. 단체 관람이라서 할인받은 거라고 집에는 말씀드리고. 이상. 반장!"

   "차렷! 선생님께 경례!"     


   명수대극장은 학교 정문에서 5분 거리인 흑석시장에 있었다. (3, 4차 개봉관 쯤 되는 극장이었는데 규모가 꽤 컸다. 300석 남짓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극장이 있을만한 동네는 아닌데 아마도 대학교가 있기에 들어선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 장사는 잘 안되었을 것이다. 기록을 보니 1957년 개관해서 1980년 무렵 장기 휴관 끝에 폐관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가 보았는데 상영작 간판에 "성웅 이순신"이 아닌 다른 영화가 걸려 있었고, 상영예정작 간판에 "태양은 가득히"가 걸려 있었다. "성웅 이순신"은 아마도 우리가 단체로 가는 날에만 특별 상영하는가 보았다. 

   상영예정작 간판 중앙에는 알랭 들롱이 웃통을 벗고 요트의 키를 잡은 모습이 크게 자리 잡았다. 멋있었다. 갈색 머리의 예쁜 여배우와 알랭 들롱이 함께 누워있는 모습이 오른쪽 아래편에 그려져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웠다. "聖스러운 젊은 野獸 아랑 드롱"이라는 문구가 극장 간판 특유의 고딕체 느낌 글씨체로 써있었다. 성스러운 젊은 야수가 무슨 뜻인지 아리송했지만 어쩐지 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나의 교학사 콘사이스로는 'Plein 50 leil'을 해석할 수 없었다.


   드디어 대망의 토요일이 밝았다. 인생의 첫 번째 단체 영화 관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오오! 낭만의 중학생이여!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도시락을 까먹고 우리는 선생님의 인솔 아래 극장으로 갔다. 극장 안은 와글거리고 짓까부는 까까머리 검은 교복 것들로 가득 찼다. 선생님들이 긴 대나무를 좌우로 흔들며 조용하라, 앉아라 외쳐도 대나무가 머리 위를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영화가 시작했지만 선생님들이 주문하신 ‘수업의 연장에 참석한 의젓하고 차분한 중학생 관객’들은 없었다. 떠들고, 웃고, 몇은 이미 보았는지 다음 줄거리를 스포일링 해댔다. 그러다가도 중요한 장면에서는 한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를테면 왜군이 살금살금 뒤에서 공격을 감행할 때 '위험해! 뒤!' 라고 외친다든가 김진규 배우가 '두둥!' 하며 등장해 칼을 뽑아 들고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 호령할 때는 '와!'하며 박수를 쳤다.     

불이 켜지고 성웅 이순신 장군의 위용에 젖어 감동에 벅차오른 중학생 까까머리들이 우르르 극장을 빠져나가는데 어른들 몇 명이 극장에 들어와 앉는 모습이 보였다. '어른들도 이순신 보나?' 갸웃하며 화장실을 갔다 나오니 이미 모두 해산했는지 극장 안에 검은색 옷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비에 걸린 상영 시간표를 보니 이번 타임 영화는 "태양은 가득히"였다. 


   오 마이 갓! 나는 이미 극장 건물 안에 들어와 있고 내가 서 있는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聖스러운 젊은 野獸" '아랑 드롱'이 웃통을 벗었고 갈색 머리의 예쁜 여배우가 누워있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영화가 곧 상영될 판이니 순진하고 착하며 교복 상의의 목 후크를 단정하게 채우고 다닐 정도의 모범생으로서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총애와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대한민국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은 이 현장에 있으면 당연히 안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영화를 통하여 배운 성웅 이순신의 감동과 교훈을 가슴에 간직한 채 뜨거운 마음으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조국과 민족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도록 학생 본연의 소임인 학업에 정진코자 분연히, 마땅히, 황급히 극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 정도를 걷는 일이며 지금, 이곳에 홀로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결코 비난과 꾸지람을 피할 수 없는 교칙 위반이고 불효 불충한 행동이었다. 

   설령 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부적절한 행동이 집과 학교와 국가로부터 과분한 용서를 받는다 치자. 내가 어떤 초자연적인 힘 또는 부득이한 사정에 의하여서라도 지금 이곳에서 청소년에게 정신적인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농후한 "태양을 가득히"를 본다면 단체 관람 할인 요금 50원을 달랑 내고 두 편의 영화를 아니 한 편의 영화를 몰래 도둑 관람하는 절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었다. 가자!   

 

   나는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 비어있는 칸에 몸을 숨겼다.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교복의 웃옷을 벗어 뒤집어 개키고 그 안에 교모를 찔러넣었다. 걸리게 되면 교복을 던져버리고 학생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을 것이었다. 시간은 더뎠다. 온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덜컹 화장실 문이 열리고 아저씨들 목소리가 들리면 숨을 참았다. 아저씨들의 마지막 한 방울의 오줌이 똑, 변기에 떨어지고 바지 지퍼를 올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발소리가 사라지면 숨을 뱉었다. 남자 중학생 소머즈였다.  

   

   살금살금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 2층 맨 구석 자리에서 최대한 몸을 구겼다. 관객은 많지 않았다. 1층에 앉은 어른 중 몇 사람이 담배를 피웠다. 섬세한 담배 연기가 영사기 빛에 부서지며 어지럽게 스크린 앞 허공을 타고 올랐다. 스크린에서는 웃통을 벗은 '아랑 드롱'이 뿜은 담배 연기가 파란 하늘 위로 흩어졌다. 이탈리아와 지중해의 풍경이 밝고 강렬한 총천연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고 신화 속 상상의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 알랭 들롱은 찬란했다. 숨을 쉬는 것도 잊은 듯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요트 스크류에 감긴 시체가 드러나고 완전 범죄를 자신하는 알랭 들롱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엔딩에서야 비로소 몸의 긴장을 풀었다. 

     

   오케이. 알랭 들롱은 실패했지만 나는 해냈어! 성인식을 마친 어느 부족의 소년이 느꼈음 직한 내밀하고 고양된 뿌듯함 같은 것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어쩐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월요일에 학교에 가서 자랑하면 친구들 표정이 어떨까. 별거 아니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야지. 집에는 비밀이다. 나는 효자이므로.  

   

   "야! 이치혜! 이리 와!"

   참 부지런한 선생님. 토요일에 집에 안 가시고 뭐 하신담. 

   "이 녀석. 공부도 잘하고 착해서 모범생인 줄 알았더만 얌전한 고양이었네."

     

   완전 범죄는 날아갔다. 

   월요일 종례 시간에 반 친구들 앞에서 담임의 정신봉으로 엉덩이를 정신 번쩍 들게 함과 동시에 절절한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으로 나의 범죄 행각에 대한 징계가 마무리된 데는 그동안 가꾼 모범적인 우등생 이미지에다 순박한 크고 맑은 눈망울의 깜빡임이 크게 작용하였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얼치기 씨네필 한 녀석이 태어났다.


   Plein 50 leil 은 명수대극장의 간판 화가 아저씨가 띄어쓰기를 잘못한 것이었다.

   “Plein Soleil”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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