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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Mar 23. 2023

한라산. 당신의 유효기간은 연장되었습니다.

   딱히 한라산을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미세먼지가 서걱거리던 봄밤에 맥주를 마시다가 사내는 친구에게 아무 곳으로든 여행을 가겠다고 선언처럼 말했다. 적당한 홀가분함과 적당한 아쉬움이 섞인 바람이었다. 말하고 나니 애초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고 싶어졌다. 사내는 영암의 월출산을 떠올렸다. 오래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 속의 월출산은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고속버스로 4시간 40분, 4만5천원. 오케이. 차편은 하루에 두 번뿐이고 잠을 잘 만한 찜질방은 없었다. 사내에게 영암행1박 2일의 여정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가만, 월요일에 갈 계획이잖아. 그렇다면?

   사내는 제주행 항공편을 찾아보았다. 그가 원하는 늦은 오후의 항공권이 3만 천원. 시간이 한결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몇 년 전에 그가 갔던 찜질방은 여전히 성업 중이니 그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으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한라산 등정이 가능하겠다는 셈이 섰다. 

    

   월요일 오전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일을 마치고 배낭을 꾸렸다. 티셔츠 두 장, 속옷 한 장, 양말 한 켤레, 약봉지, 몇 년 만에 쥐어본 등산용 스틱, 모자. 

   3월 6일 저녁 6시 30분, 제주. 미세먼지로 탁한 먼 하늘에 해가 뿌옇게 떨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진하게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반주를 곁들여 늦은 저녁을 마친 후 찜질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내일 새벽의 산행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등반 안내에 따르면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왕복 19킬로미터가 넘었다. 예전 같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금의 그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읽었던 “스스로를 과신하지 말고, 꼭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심을 버리라”는 한라산 등반 안내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동경해 온 한라산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백록담은 등반객에게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인색하다는데 날씨 예보는 좋았다. 나이를 감안할 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살짝 전기가 통하듯 저릿한 느낌이 사내의 몸을 훑었다. 

   한라산의 몇 시간 앞에 왔다. 잠을 자야 했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통창을 통해 스며든 헤드라이트 불빛이 찜질방 천장에 어른거렸다. 사람들이 얕게 코 고는 소리, 두런대는 소리와 잠결에 뒤척이는 소리들이 천장에서 한데 어른거렸다. 사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산은 강말랐다. 성판악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산길은 산길이라기보다 둘레길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야자 매트가 덮인 길 끝에 나무 계단이 잇대어졌고 다시 야자 매트길이 산으로 향했다. 완만했고 지루했다. 말라 헝클어진 나뭇가지와 거칠고 딱딱한 나무둥치들의 회갈색으로 사방은 삭막했다. 간간이 보이는 굴거리나무의 가죽 같은 잎과 키 작은 얼룩조릿대나무의 뾰족한 잎만이 초록색이었다.     

   호젓한 산길의 오밀조밀한 봄기운을 기대했던 사내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조금 더 가면 인터넷에서 봤던 본격적인 한라산이 펼쳐지겠지. 사내는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이어폰에서 들리는 뉴스는 엉망진창이었다. 답답하고 화가 치미는 뉴스를 들으며 걷자니 산길은 덩달아 답답했다. 특별히 눈여겨볼 경치도 마뜩잖았다. 사내는 이어폰을 끄고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했다. 

   유일한 위안은 파란 하늘이었다. 어제의 미세먼지는 거짓이었다는 듯 잡티 하나 없는 하늘이 높았다. 마치 컴퓨터 모니터 속의 윈도우 화면과도 같은 한없는 파란 하늘. 중간중간 쉬며 하늘을 올려볼 때마다 사내는 두 눈이 투명한 파란색으로 물드는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조릿대나무밭에 해발 1,000미터의 표지석이 나타났다. 그때까지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50미터 높이를 올라온 셈이었다. 경사가 다소 심해진 길을 조금 더 걸어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나무 데크로 쉼터가 마련된 공간에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김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오늘 홀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사내 혼자인 것 같았다. 재미없는 산길이 동료가 있었으면 조금 달랐을까? 

   사내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한 햇볕과 파란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12시 30분이 지나면 진달래대피소에서 백록담에 오르는 진입로가 닫힌다고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가, 피로감이 있었다. 체력을 가늠하기 어려우니 조금 서둘러야겠다 생각하며 사내는 출발했다. 

   굽은 고갯길을 지나니 눈이 쌓여 있었다. 꽤 두껍게 쌓인 눈은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에 녹고 등산객들의 발걸음에 다져져 미끄러웠다. 아뿔싸. 사내는 아이젠을 챙겨오지 않았다. 눈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연히 괜찮겠지 한 것이었다. 사람들 이야기로는 정상까지 이르는 길마다 눈이 쌓여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해발 800미터 쯤을 더 올라야 했다. 아이젠 없이 완등할 수 있을까? 재미도 없는데 대충 눈 핑계 대고 내려가서 소주나 한잔 할까? 사내는 잠깐 망설이다 배낭에서 등산 스틱을 꺼내 들고 등산화 끈을 다시 묶었다.  

   

   숨이 턱밑에 차올랐다. 심장은 쿵쾅쿵쾅, 마치 100미터를 전력으로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해발 1천3백미터, 1천4백미터, 1천5백미터를 가리키는 표지석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경사는 심해졌고 쉬는 횟수와 시간은 늘어났다. 쌓인 눈은 더 깊었고 사람들의 발길과 햇살 탓에 더 미끄러웠다. 진달래대피소를 11시 반경에 통과했다. 백록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기쁨보다는 피로와 후회가 더 절실했다. 스틱을 짚은 오른손은 뻐근했고 두 다리는 차라리 짐이었다. 

   돌아갈까? 아쉽고 부끄러웠다. 간밤의 기대와 이제껏 올라온 길이 아까웠고, 올라왔던 그 길을 되짚어 내려갈 일이 아득했다. 계속 올라갈까? 앞으로의 길이 까마득했다. 진퇴양난이로다. 사내는 초코바를 질겅거리며 뇌까렸다. 

    

   그 사이에 경치는 바뀌었다. 주목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길을 안내했다. 거대한 포유동물의 뼈대를 닮은 구상나무의 잿빛 골격이 사내의 눈길을 끌았다. 강마른 산비탈에 서서 마치 맑은 하늘을 향해 갈구하는 손을 뻗은 것 같은 구상나무의 뾰족한 가지는 어쩐지 애처로웠다. 한라산 재래종이라는 이 나무는 지금의 추세라면 수십 년 내에 멸종될 것이라 했다. 고사목은 영광의 과거를 기억하고 아직 살아있는 것들은 예정된 과거가 되고야 말 운명에 몸을 떨 것이었다. 한계를 짐작한다는 것처럼 사람을 소스라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말라버린 나무에 감정이입하며 사내는 쓸쓸해졌다. 

   눈길과 씨름하며 해발 1천7백미터의 표지석을 지나 숨을 돌리려 멈춰 섰을 때였다.

   아!

   고개를 드니 한라산 정상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했고 눈 덮인 사면에 햇빛이 반짝이며 부서졌다. 찬란. 

   사내의 가슴에 한라산이 비로소 큰 산의 얼굴로 다가왔다. 앞으로 200여 미터의 높이를 더 올라야 했다. 여전히 고되고 아득했지만 사내에게서 이제까지의 불만은 사라졌다. 가자. 정상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시까지였다. 더 힘을 내야 했다. 눈 쌓인 길이 사라지고 계단이 가파르게 이어졌다. 다리에 힘이 빠진 탓인지 간간이 아찔했다. 계단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정상이 성큼 앞에 보였지만 쉬 가까워지지 않았다.


   마침내 약간 경사진 너른 초원이 나타났고 그곳을 가로지른 나무 계단 끝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더 오를 곳이 없었다. 검은 돌에 흰 글씨로 “백록담”이라 쓰인 표지석 앞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 줄 서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포즈를 취했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햇빛을 받으며 반짝거렸다.    

 

   사내는 사진을 찍기에 앞서 표지석 뒤편의 목책 앞에 섰다. 저 아래로 태고의 거대한 흔적이 있었다. 백록담. 마치 크게 팔을 벌려 모든 것을 품어 주겠다는 듯 그곳에 있었다. 사내는 일순 숨이 막혔다. 현기증이라도 일듯 다리가 잠깐 후들거렸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백록담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천천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기운에 몸을 맡긴 채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분화구를 제외한 주위의 풍경은 흐릿해지다가 소멸되었고 그 반대급부로 분화구로 내리닫는 비탈의 굴곡은 또렷해졌다. 눈과 얼음과 마른 풀과 작은 관목과 작은 돌과 바위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몸짓으로 백록담을 한편 웅장하게 한편 푸근하게 하였다. 아름답다,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개를 크게 펴고 백록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활공하였다.   

   사람 사는 일을 산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굽이굽이 좁은 길과 너른 길을 지나고 때론 완만한 구릉을, 때론 숨을 몰아쉬게 만드는 깔딱고개를 지나야 한다. 어느 만큼 오르고 나면 앞으로 나아가기도 뒤로 물러서기도 난감한 지경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눈앞의 고갯길을 축지할 수 없는데 가다 보면 어느새 지나온 것이다. 낮은 봉우리, 높은 봉우리 때로 험한 봉우리를 숨 가쁘거나 우습게 넘어서지만 작은 돌부리에 발을 걸려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정상에서의 만끽. 그것이 성취의 포효이든 해탈의 수고로움이든. 

    

   사내는 천천히 하산했다. 눈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 미끄러웠지만 근육의 피로는 한결 덜했다. 진달래대피소를 지나 속밭대피소를 통과할 때까지 등산 스틱 하나에만 기대었던 사내의 산행은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 한번 없이 칭찬할 만했다. 지루하고 볼품없던 야자 매트와 나무계단의 산길도 비로소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사내는 언뜻 사용 기한이 끝난 헬스클럽 이용권을 1년 연장했을 때 같은 기분을 떠올렸다. 이만큼이나 했네 하는 소소한 뿌듯함과 좀 더 알차게 해야지 하는 소심한 포부가 섞여 왠지 건강할 유효기간을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그런 종류의 기분이었다.  

   

    아이쿠.

   한눈팔던 사내는 반쯤 녹은 채 숨어있던 작은 얼음판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두 손과 오른쪽 종아리에서 무릎까지 흙탕이 묻었다. 뻐근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사내는 누가 본 것은 아닌지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는데 공연히 창피했다.

   맞아. 이게 인생이지. 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https://youtu.be/NrJpc_RlF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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