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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Feb 23. 2023

회자정리(會者定離), ‘11년’과 ‘3년’을 떠나보냈다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저녁예배 방송을 마치고 마트에 가서 내일 정기총회 때 사용할 간식거리며 생수며 등등을 샀다. 캐리어 세 개를 가득 채운 물건들을 차에 옮겨 싣고 시동을 걸었다. 대시보드의 전자시계는 엷고 푸르스름한 빛으로 10시 50분을 알렸다. 집까지는 약 40분. 졸지 않고 잘 갈 수 있을까?    

  

    내일이 내 임기의 마지막 총회 날. 이번 회기에는 일이 유독 많아서였는지 총회 준비에 한결 힘이 들었다. A4 100여 페이지의 문서를 작성하고 총 360여 페이지의 보고서 책자 교정과 감수를 해야 했다. 근 열흘 가까이 하루 세 시간 남짓 잠을 잤다. 눕기만 하면 잠에 빠졌으니 ‘고마운 숙면’이라고 인사를 할 판이었다. 일상의 밥벌이를 하면서 총회 준비를 위해 외출이 잦았다. 오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진행 확인을 위한 카톡을 하거나, 잤다. 노트북 화면의 날카로운 빛 앞에 눈은 심하게 무뎌졌다. 보고서 편집 마감인 지난 주말의 이틀은 꼬박 열네 시간씩 모니터를 들여다보아야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노화’라는 단어도 자주 떠올렸다. 조금만 버티자, 조금만 더 하면 끝난다,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늙은 자동차의 RPM 계기판 바늘처럼 시간은 위태롭게 떨며 흘러갔다.

    안전벨트를 매고 전조등을 켰다. 스마트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팟캐스트의 구독 목록을 열었다. 업로드 날짜가 훨씬 지나있던 영화 팟캐스트 타이틀 옆에 업로드를 알리는 붉은 글씨가 찍혀있었다. 씨네타운 19. 반가운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익숙한 진행자와 패널들의 목소리를 확인하며 액셀러레이트를 밟았다.     


    이게 뭐지? 또 장난치나?

    진행자인 두 명의 피디가 오늘 방송이 마지막 방송이라고 말했다. 워낙 개그와 장난기가 많던 그들이기에 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말로 마지막 방송이었다. 집중해서 듣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앞으로도 40분가량 분량이 남아있었다. 마저 다 들어야 했다. 시동을 끄고 불 꺼진 주차장에서 끝까지 들었다. 그들은 끝까지 낄낄거리며, 농담하며 어떠한 신파나 상투적인 코멘트 없이 막방을 했다. 그들다웠다. 한 피디가 말했다. 

    이제까지 제가 이 방송을 창피하다고, 별 것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지난 이십여 년간 만든 프로그램 중 가장 잘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끝.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눈물이 배어 나왔다. 어라.. 이거 뭐지, 젠장. 공연히 심사가 뒤틀려 욕을 기침처럼 내뱉고 그저 운전석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참담한 실패로 나의 40대는 마감되었다. 머릿속과 마음속은 온통 헝클어져 아무 데서도 시작하지 못했고 아무 데서도 끝을 맺지 못했다. 몸이 먼저라는 말은 때때로 틀리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무너지니 몸도 따라 스러졌다. 1년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을 아내가 출근하고 딸애가 학교에 가 혼자된 집에서 누워 지냈다. 온몸의 근섬유가 다 빠져나간 듯한 헛헛한 몸뚱아리를 일으켜 새 일을 시작했다. 기계적으로, 어떠한 창의성도 배제한 채 일을 했다. 2012년 가을이었다. 

    혼자였고 혼자이고 싶었다. 어떤 날은, 아니 대부분의 날을 꼭 필요한 극소수의 단어만을 내뱉는 것 말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들은 철저히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고 나는 선뜻 그 간격 속으로 발을 딛지도, 딛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말을 끊고 관계가 정리되니 역설적으로 빈한한 여유가 생겼다.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 무엇을 그나마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복 청취는 식상했다. 갖고 있는 음원은 한정되었다. FM을 들었다. 음악방송에 공허한 디제이의 멘트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를 사연 나부랭이들이 음악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다.

시사와 뉴스와 정보와 취미를 다루는 온갖 방송을 들었는데 결국 순위와 광고에 목마른 그저 그런 방송의 범람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연을 맺은 영화 팟캐스트가 바로 씨네타운19였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방송국의 라디오 PD 세 명이 시작했다. 온갖 개그와 젊은 시절의 음주가무 이야기와 욕설과 음담패설 등등을 떠들다가 어느 순간 시사의 문제를 건드리다가는 음악과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개그와 음주가무와 욕설과... 그리고는 영화를 소개하고 이야기했다. 그 모든 것이 좋았다. 감히 논평하자면 이른바 우리 사회의 주류라 일컬어질 스펙과 지식과 경력을 갖춘 젊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좋아서 떠들어대는 방송. 지적인 농담과 진지함이 경계를 허물고 소요하는 방송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업로드되는 날을 기다렸고, 업로드된 방송을 빠짐없이 들었다. 

    그렇게 만 11년이 지나갔다.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던 나의 50대가 그와 함께 위로받고 모색하며 허청거리며 일어났다. 내 눈물은 그나마 표할 수 있는 나의 알량한 고마움, 그리고 10년짜리 시간의 묶음에 대한 회상과 회한이 짜낸 것이었다.     

    그 마지막 3년에 내게는 또한 많은 일이 있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장모님을 여의었고, 환갑을 맞았고, 이런저런 상처와 기쁨을 함께 품었고, 전국 조직의 총무를 하였다. 다른 이들이 혀를 내두르거나 건강을 염려해 주거나 어리석다는 충고를 할 만큼 촘촘하고 힘든 3년을 보냈다.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오직, 내가, 내게 맡겨진 일 밭에서, 일을 잘하고, 스스로에게 흡족한 결과를 칭찬하고, 실패한 일로부터 짜릿한 자극을 받으며, 한 굽이를 지날 때마다 나의 소용과 효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허청거리며 겨우 일어선 50대의 내가 아주 보잘 것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방송은 끝났고, 나는 퇴임했다.

    즐겨 듣던 한 방송과 즐겨 일했던 한 직무가 같은 때 끝이 난다는 이 아무렇지도 않은 우연에 혼자 의미를 부여한다. 11년의 시간 묶음과 3년의 시간 묶음이 동시대에 그것도 마지막에 겹쳐졌다는 것은 내게 큰 축복이다. 따로따로 지나가 언젠가는 희미하게 흩어지고 말 기억은, 회한과 추억과 다짐은 고맙게도 같이 묶여 쉽게 돌아서지 않아 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언제인가 어느 곳에서인가 여전히 나의 안간힘을 대견해하고 나의 작은 소용과 효용에 감사할 것이다.      


    여행을 가고, 책을 한 권 읽고, 영화를 한 편 보고, 글을 한 편 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시간의 묶음을 시작할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2023. 2. 22.

異癡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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