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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Dec 10. 2023

歌痕-1. 선택 불가의 흔적

입영(入營)혹은 입영(入囹). 입영전야.

아버지는 생전에 노래를 잘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래뿐 아니라 다른 것도 두루...

  십팔번(일본식의 안 좋은 표현인 것은 아는데, 그 시절 기준에는 '애창곡'보다 훨씬 실감이 난다. 마이 페이버릿~ 도 좀 그렇고)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데 배 호 선생의 "비 내리는 삼각지"와 남인수 선생의 "애수의 소야곡", 박상규 씨의 "조약돌" 등을 부르시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음정, 박자 딱 맞추어 구성지게 부르셨다. 달변에 호주에 예능적 소양이 풍부하여 온갖 친목모임의 명 MC로...  엄마 속을 지지리 썩였다. 

  내가 고1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충남 태안 갯마을의 작은아버님 댁에서 상을 치르는 내내 아버지가 문상객을 맞으며 어찌나 애절하게 곡을 하는지  '아이고오~ 아이고오~' 할 때마다 초상집의 모든 이들이 서럽게 울었다. 중저음으로 장중하게 시작하여 어느새 높은 음조로 단장의 아픔을 흐느끼면 어리보기로 옆에 섰던 나도 절로 눈물을 찍어 훔칠 정도였다. 풍부한 성량과 끊길 듯 이어지는 호흡 처리, 쥐었다 풀었다 박자를 휘어잡고 애처롭게 허공으로 쏟아내는 슬픔의 파편, 아버지의 호곡은 노래였다. 

  할머니 삼우제를 마치고 큰아버님, 아버지, 작은아버님 삼 형제가 작은아버님의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잔잔한 바다 위에 작은 목선을 띄우고 너무나도 오랜만에 형제의 슬픔과 회포를 나누었다. 서해 바다의 노을을 등에 지고 아버지들은 뭍으로 왔다. 아버지들은 손짓하여 아들들을 불렀다. 아들들은 바짓가랑이를 걷고 배로 가 아버지들을 업었다. 9월 석양에 물든 얕은 바닷물은 그리 차지 않았다. 난생 처음 업어본 마흔여섯 살 아버지는 가뿐했다, 놀랍게도. 등에 업힌 아버지들은 "애수의 소야곡"을 합창했다.  몇 해가 지난 후에 "그리스인 조르바" 영화를 보았다. 엔딩에서 앤서니 퀸이 춤추는 장면을 보다가 그날 해질녘의 아버지들을 떠올렸다.




   나의 애창곡은 무엇인가? 


  나야 물론 물오른 가창력과 무대 매너와 마이크 테크닉, 미모 등의 필살기로 모든 노래를 완벽하게 감동적으로 소화하

.

.

고 싶지만 그것은 소원과 자뻑과 상상력의 범주이다. 어쩌다 노래방에 갔을 때면, 어느덧 아득하다, 코로나여, 부르곤 하는 70~90년대의 몇몇 노래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딱히 애창곡이라 할 만하거나 '나'하면 '이 노래'라고 떠오르는 곡은 글쎄다. 

  애창곡과 좋아하는 노래는 다르다. "Stairway to heaven"이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Ian Gillan의 "gethsemane", 혹은 Steeleart "She's gone", 이선희 씨나 박완규 씨, 전인권 형님의 노래를 좋아한다 치자. 그러나 그 노래들을 '애창'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자연히 귀는 높지만 부를 수 있는, 잘 부르는 곡은 귀를 따라갈 수 없다. 더구나 그 곡이 마음에 썩 들기란. 하여튼 눈 높고, 귀 고급지고, 입 우아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곰곰 생각해보았다. 애창곡은 아니지만 노래 자체도 좋고, 일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부른 노래. 바로 떠올랐다. 나의 선배 세대부터 10년 쯤 후배의 세대까지, 남자들이 가장 많이 불렀고 가슴 절절했을 곡은 이 곡일 것이다.

  "입영전야"(1977. 최백호)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날까지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군악대 풍의 드럼과 트럼펫 소리가 행진곡 리듬의 전주에 실리고 최백호 선생의 탁성에 가사가 얹혔다. 


  술집은 옹색했고 조명은 빈약했으며 담배연기는 우울하게 술상과 천정사이를 채워나갔다. 이별을 앞둔 청춘들이 빈한한 주머니를 모아 모처럼 마련한 투박한 안주. 술잔을 높이 든 젊은이들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후렴은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 그리고 원 샷! 잘 다녀와라, 갔다 올게, 다치지 않는게 제일이다 다치면 개죽음이다, 마침내는 청춘들의 가슴이 먼저 울었다.

  예나 지금이나 입대는 ‘이십 대의 꽃다운 시절에 가족·친구와 헤어져 개고생을 해야 하는 영어의 생활’로 여겨진다. 막막하고 두렵고 왠지 모를 억울함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착잡한 마음을 대변했다. 

  비슷한 나이의 선후배 찬구들이다 보니 송별회와 입대와 휴가모임은 특정 기간에 집중되었다.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구체화되지 않는 대상을 향해, 세상을 향해 비분강개와 성토를 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악수를 하고 건배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나는 한  300번쯤 불렀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학과에서, 농구서클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줄기차게 불렀고 줄기차게 떠나 보냈다. 정작 내가 입대할 때는 주위의 거개가 입대한 뒤였으므로 호젓했다. 몇명의 복학생 형들이 사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렀다. 

  

  가장 최근에 부른 적은 두 조카의 입대 송별회에서 였다. 하마 몇 년 전. 조카는 이 노래가 금시초문이었을 것이었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나지막이, 그러나 열심히 불러주었다. 그리고 후렴에서 부끄럽게 목이 메었다.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날까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필시 친구들이 사준 생맥주의 효모가 마음 속에서 씩씩함으로 발효되었거나 아니면 '내일 모레면 끝장이야' 하는 자포자기 같은 마음이 평소의 조심성을 눌러버렸을 것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거기 이숙씨 집이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입니까.

  차갑고 엄한 어른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숙씨의 친구, 음, 아니.. 아 맞습니다. 친구 경우라고 합니다. 아버님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아, 제가요 이숙씨와 통화를 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전화 걸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술을 마신 것 같은데 이렇게 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 안 하나요? 다음에 다시 연락하세요.

  이버님 죄송합니다. 음, 근데요.. 제가 낼 모레 군대를 가게 돼서요. 그래서 전화를 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 기다려보세요.  얘 이숙아. 전화받아라.


  여보세요? 너 왠일이야?

  미안하다. 나 군대가.

  어.. 정말? 언제가는데?

  모레. 모레 가. 

  그렇구나....

  ...

  근데 왜?


  일학년 첫 미팅에서 만난 사이였다. 2년이 지났지만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만났을 뿐이었다. 친구도 아니고 연인은 더욱 아니고 아는 사람이라 하기도 그렇고 무관한 사람도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사이, 어쩌면 경우 혼자 마음 속에 담아둔 사이인지도 몰랐다. 


  모르겠어. 그냥 너한테는 얘기를 하고 가야할 것 같았어.

  그래? 왜 그랬을까? 난 네가 군대를 가고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해도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거 같은데. 아무튼 잘 다녀와라.

  고마워. 그래도 너한테 얘기하고 싶었어.


  그는 숙맥이었다. 이숙은 경우가 태어나 처음으로 미팅에서 말을 나눈 '모르는 여자'였다. 미팅하던 다방에서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이 마구 떨려 커피에 설탕을 넣다가 반도 넘게 흘려버렸을 정도였다. 차분하고 동그란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애프터 신청도 안 했다. 몰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보를 보냈고, 가끔 답장의 학보가 왔다. 어쩌다가는 학보 띠지에 간단한 안부의 글이나 싯구, 좋은 글귀를 적었고, 그녀도 어쩌다가는 그랬다. 용기를 내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마셨다, 커피만. 한참 만에 편지 비슷한 걸 보냈고, 그녀도 그랬다. 편지와 학보는 잦아졌지만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편지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 하다가도 만나면 할 말이 없고 안절부절했다.


  덕분에 고마웠다. 어쩌면 나는 너를 내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군대를 가는 지금 좀 외롭지 않다고 할까, 음, 기댈 곳이 있다고 할까, 뭐 그렇다 야.

  하하. 몰랐네.

  그녀는 웃었다.


  영장 받았으면 바로 연락하지 그랬어. 내가 생맥주 한 잔 사줬을텐데.

  하하. 그러고보니까 우린 맥주도 한 번 마신 적이 없네. 하긴 그런 사이가 아니었으니. 이미 시간이 없고, 다음에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그때 사주라. 근데 그럴 기회가 있으려나. 군발이의 미래란 어찌될 지 몰라서...

  얘는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니.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 오빠도 잘 갔다왔어. 군대도 사람사는 데라더라. 너는 잘 할거고.

  근거도 없는 응원인데 용기는 난다 야. 고마워.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었네.

  경우는 이숙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그랗고 차분한 맑은 얼굴이었다.  갑자기 몹시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마음을 졸여 왔던 것 마냥.


  이숙아. 지금 난.. 음.. 난 갑자기. . 음.. 네 얼굴이 보고싶다. 이상하네.

  내 얼굴을 보고싶은 거야? 나를 보고 싶은 거야?

  경우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

  입대 잘 하고, 훈련 잘 받고 와. 군대가기 전에 술 너무 많이 먹어서 훈련받을 때 고생 한다더라. 오늘까지만 마시고.

  어..응.. 알았어. 근데 나 많이 안 마셨어.

  많이 안 마시긴. 너 나한테 이런 말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어? 혀도 많이 꼬였구만.

  아니야. 진짜 많이 안 마셨다구. 그리고.. 너를.. 보고 싶은 게 맞네. 보고싶다.

  듣기 싫고! 너 술김에 그러는 거야. 남자들이란 다. 가서 훈련 잘 받아. 다치지 말고. 

  아닌데. 알았어.

  힘들 때 내 생각하는 건 눈 딱 감고 허락해줄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면 휴가 나와서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 내가 짜장면이랑 맥주랑 통닭 사줄게. 그렇지 않으면 연락할 꿈도 꾸지 말고. 알겠어?

  정말.. 그래. 이숙아. 나 진짜 잘 갔다올게. 다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휴가 나오면 제일 먼저 너 찾아갈게. 고마워.

  그래. 화이팅.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이만 끊어. 아빠가 소머즈 귀를 하고 도청 중이야. 

  응. 미안.


  경우야. 정말.. 잘.. 다녀...와.

  이숙의 말끝이 흐렸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용기백배해졌다. 친구들은 어디 갔다 왔느냐고 구박했지만 어쨌든 오늘 환송회의 주인공은 경우였고, 상상조차 못 했던 커다란 응원과 분홍빛 상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입대도 하기 전이지만 첫 휴가의 달콤함에 마음이 들떠오를 지경이었다.

  자. 마시자. 건배!

  경우네들은 힘차게 500씨씨 잔을 부딪혔다. 퍼걱 소리와 함께 경우의 손에는 생맥주잔의 손잡이만 남았다. 바닥에 유리잔과 생맥주의 거품이 온통 파편으로 튀었다. 주인 아저씨가 한달음에 달려와 바닥을 수습하며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경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밤은 깊었고 서울의 달은 차올랐고 경우의 마음도 차올랐을 뿐이었다.


https://youtu.be/eT6PoltyS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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