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주의자들

순애,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

by 봉북이


-무인도의 린-




평범한 삶이였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괜찮은 직장에, 돈도 부족하지 않았다. 가끔 비싼걸 몇개 사도, 생활비를 엄청 아껴야할 정도는 아니였다. 아직 내 집 마련은 못했지만, 부모님의 집에서 지내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때 누나가 신난 걸음으로 내 방에 들어와 말했다.


“야야! 나 비행기표 얻었다?”


누나는 이벤트에서 우연히 미국행 비행기표를 두장이나 얻었다면서 남자친구와 단둘이 알콩달콩하게 갈거라고 자랑했다. 나는 침대에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누나의 말에 크게 한숨을 쉬며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어~ 그러시던지~”


누나는 그런 내 반응에도 폭력적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주 반응을 왜 그따구로 하냐면서 발차기에 퍽퍽 때리기까지, 정말 인성에 문제가 있는건지 의심이 될때가 있었는데,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오히려 신나게 내 방을 나갔다. 나는 그런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서 며칠 후, 나는 저번과 같이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쪽에서 쾅 소리와 함께 누나가 마치 고릴라처럼 뛰어와 펑펑 울었다. 나는 당황함을 금치 못해, 게임이 여전히 진행중인데도 놀라고 당황스러운 눈으로 누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게임 화면에서는 이미 [DEFEAT T-T]라는 글자가 화면 중앙에 떠있었다. 누나는 마치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내 책상 위에 있는 휴지를 몇장 꺼내들어 코도 풀고 눈물을 벅벅 닦았다.


“흐어어어어엉!!! 남친이랑 헤어졌어!!! 나쁜 새끼!!!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허어어어엉!!”


누나가 입을 열자마자 거의 100데시벨 같은 소리가 내 귀에 창을 꽂듯이 찔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귀를 막으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알겠어 알겠어!! 근데 이번에도 미련 남아서 인스타 부계정으로 딴 사람인척 전남친 인스타 염탐은 안할거지?”


아차, 나도 모르게 누나의 흑역사를 건들여버렸다. 심지어 저렇게 분노게이지가 맥스인 상태에. 누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침대로 뛰어들어 배게로 날 엄청나게 팼다. 나는 배게에 맞아 아프기도 했지만, 저러다가 또 배게가 터지면 다시 사야한다는 생각에 더 슬펐다. 누나는 그렇게 날 거의 죽으로 만들고서야 방을 다시 펑펑 울며 나갔다. 나는 마치 종이 인형처럼 침대에 누워있다가, 몸을 겨우 일으켜 배게를 정리하고 누나가 쓴 휴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정리하려고 휴지들을 줍고 있었다.


“어?”


그러다가 내 방문 쪽에서 비행기표 두장을 주웠다. 이건 누나가 전에 남자친구랑 가겠다며 신나게 자랑하던 그 이탈리아행 비행기표였다. 심지어 두장이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장은 내가 가지기로 했다. 어차피 누나는 남자친구랑 헤어졌으니 갈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이 아까운 비행기표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으니, 차라리 나라도 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나머지 한장은.. 갖고 싶은 사람한테 아무나 주기로 했다. 비행기 날짜는 일주일 후였다. 나는 미리 짐을 싸기로 결정하고 옷장을 열었다. 옷장을 열자마자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처참했다. 너무 멋진 옷들로만 정리되어서 나오는 감탄사가 아닌, 정말 이런 것들 밖에 없나 해서 나오는 감탄사. 나는 외출준비를 빠르게 마치고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그리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이탈리아에 어울릴만한 옷들과 평소에도 좀 입을 옷들을 사놓았다. 청바지, 니트옷, 몇개를 좀 산 후에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짐을 다 싸고 나서 마음이 들떴다. 누나가 헤어진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 대신 내가 여행을 간다니, 그건 좀 좋지 않은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이탈리아~ 피자도 먹고~”


그렇게 순식간에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얼른 옷을 입고 캐리어를 끌어 공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보는 여행이라 오래된 인형처럼 삐걱삐걱 움직이며 입국 심사를 마쳤다. 면세점에서는 음식들을 몇개 사서 배고픈 몸 속에 포만감을 불러일으켰다. 비행기에 타자 기대감과 긴장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이탈리아.. 기대되네..”


그렇게 눈을 감고 눈을 떴을 때는 도착해 있기를 바라면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는 도착이 아닌, 위기였다. 요란한 소리에 눈을 뜨자, 비행기는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치 정글에 있는 동물들처럼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누구는 울고, 누구는 체념한 듯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무 상황도 모르던 나는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이 내게 말해주었다.


“그.. 비행기가 추락 위기에..”


그 말에 나도 하마터면 소리를 꽥 지를뻔 했다. 비행기가 추락 위기라니.. 나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에 슬프고 우울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런 기분보다는 허탈감이 느껴졌다. 성공한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인생이였는데.. 나는 휴대폰을 켜 문자로 엄마에게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비행기 모드였기 때문에 문자는 보내지지 않고 오류가 떴다. 난 한숨을 쉬며 몸을 의자에 기대 휴대폰을 주머니에 대충 넣었다.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가는게 슬펐지만, 마음 속으로 작별인사를 미리 보내며 눈을 감았다.


“까악! 까악!“


‘… 응?“


머리가 욱신거리는 느낌과 함께,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서 서서히 눈이 떠졌다. 생생하게 보이는 푸른 하늘에 나는 처음에 이 곳이 아름다운 천국인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커다란 갈색 공들이 날아와 내 얼굴을 퍽 쳤다. 너무나 생생한 느낌에 나는 벌떡 일어나 그 갈색 공을 집었다. 그건 코코넛이였다. 당황스러움에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나와 조금 거리가 먼 곳에 풀떼기만 입은 웬 여자가 품 속에 코코넛들을 가득 품은 채 날 보고 마치 유니콘이나 용을 본 듯이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 사람..?”


여자의 조심스러우면서도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에 나도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있다는게 이렇게 낯설줄은 몰랐다. 심지어 눈 앞에 풀떼기로만 몸을 대충 가린 여자가 있었으니 나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아.. 안녕.. 하세요..?”


내가 작게 손인사를 건네자 여자가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바닥에 떨어진 몇개의 코코넛을 줍더니 코코넛들을 내게 마구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딱딱한 코코넛들이 내 몸에 맞자 나는 통증에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비행기에서 추락해 더 아팠다.


“아악! 왜이러세요!”


하지만 여자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코코넛을 게속 던지더니 이내 치타처럼 빠르게 도망쳤다.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좀 걸어다니려고 하는데, 배에서 마치 알림이 울리 듯이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하고 먹을걸 찾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코코넛들을 주웠다. 코코넛을 어떻게 손질해야하는지 몰라 그저 줍기만 했다.


“코코넛을 어떻게 먹지… 그냥 줍기만 할 수도 없고..”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돌로 코코넛을 깨보기로 결정하고 돌을 주우러 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걸어다니다 보니 정보 몇개를 얻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추락해 이 무인도에 온 것이고, 여기엔 아까 그 여자가 살고 있는 듯 했다. 아, 사람이 살고 있으면 무인도가 아닐려나? 어쨌든, 이 무인도는 꽤나 컸다. 울창한 나무들도 있었고, 어릴적에 즐겨읽던 책에 나와있던 열매들도 있었다. 열매들도 주워 먹으며 조금 큰 돌들도 줍고 있었다. 그러다가 풀 숲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나는 멧돼지 같은 동물이 있는 줄 알고 그 자리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때 풀 숲에서 아까 그 여자의 얼굴이 뿅하고 나타났다. 동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해 한숨을 내쉬었다가 그 여자를 바라봤다. 일단 사람인데…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한다.


“저기..”


하지만 이번에도 여자는 내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후다닥 도망쳤다. 여자를 쫓아가려했지만, 내 손에 가득한 열매들과 돌때문에 제대로 뛸 수도 없었고, 여자가 나보다 훨씬 빨랐다. 나는 결국 숨만 헐떡이며 다시 하던거나 했다.

그렇게 대충 많이 모았을 때, 난 다시 해변가로 가서 큰 돌들을 바닥에 깔고 코코넛을 거기에 세게 내려쳤다. 하지만 코코넛은 너무나 단단해서 깨지지 않았다. 나는 코코넛을 위에서 떨어뜨려보기도 하고, 그냥 힘으로 눌러보기도 했지만, 코코넛 워터가 몇방울 흐르는 것 말고는 큰 진전이 없었다. 나는 결국 모래사장에 털썩 누워 푸른 하늘을 구경했다. 이런 내 상황과 반비례하는 하늘에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때 내 시선에 여자의 얼굴이 빼꼼 나타났다.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여자의 이마와 내 이마가 세게 부딪혔다. 너무 세게 부딪혔는지, 혹이라도 난 줄 알아 내 이마를 더듬거렸다. 그때 나랑 부딪힌 여자가 생각나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모래사장에 몸을 뒹굴뒹굴 구르며 이마를 매만졌다.


“아파아아!!”


발성이 얼마나 큰건지,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리가 굉장히 커서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듣긴 들은건지, 계속 모래사장에서 구르다가 벌떡 일어서서 내 코코넛들을 품에 안더니 굉장히 분해 보이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나쁜 사람!“


그리곤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나는 그렇게 믿음..과 코코넛을 모두 빼앗겼다. 배는 그런 나를 알지 못하고 배고프다고 알림을 울려댔다. 난 한 손으로 배를 쓰다듬듯이 만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섬에서 이제 어떻게 지내지.. 구조는 언제될까..”


미래가 아주 캄캄했다. 마치 밤처럼.

너무 배고파 움직일 힘도 없어 그냥 모래사장에 털썩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확실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잔해물을 제외하면 굉장히 이쁘고 깨끗했다. 그런 바다를 보며 배고픔을 달래고 힐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여자가 코코넛들을 갖고 나에게 오고 있었다. 그런데 코코넛들이 모두 맛있게 까져 있었다. 나는 그런 코코넛을 보며 군침이 돌았다. 그래서 여자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저기.. 코코넛 한개만.. 주실 수..”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여자는 내 품에 코코넛 몇개를 쥐어주었다. 그리곤 내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아까 전에 모래사장에서 뒹구던 그 사람이랑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눈빛이였다. 나는 여자의 눈치를 보면서 코코넛 한입을 크게 베어물었다. 그러자 내 입안에서 코코넛이 사르르 녹더니 달달한 맛과 함께 포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허겁지겁 코코넛들을 먹으며 여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내가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 보여 코코넛을 먹으면서 여자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가 도망갈 것 같지 않아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근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예상했던대로 여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게 물었다.


“성함? 성함이 뭐야?”


여자의 순수한 물음에 나는 잠시 그대로 굳었다. 만약 이 여자도 나처럼 사고를 당해서 여기에 온거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을텐데.. 그때 머릿속에서 전에 여자와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나를 보고 도망쳤던 기억, 그리고 코코넛을 던졌던 기억. 나는 다시 한번 조심스레 여자에게 물었다.


“이 섬에.. 어쩌다가 오시게 된거에요..?”


여자는 그 질문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원래부터 여기 있었는데? 엄청 대단하지?”


나는 고민에 빠졌는데, 여자는 마치 자랑스러운 것 마냥 폴짝폴짝 뛰었다. 원래부터 이 섬에 있었다면.. 글은 어떻게.. 하지만 여자의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추측해봤자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몸을 굽혀 여자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름.. 있어요?”


이름을 물어본 내 질문에 여자는 고개를 좌우로 저어보였다. 나는 만약 여자와 같이 이 섬에서 지내게 된다면 앞으로 부를 이름이 필요하니 잠시 고민했다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없으면.. 하나 지어드릴까요?”


내 말에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신난 듯한 말투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부를 이름이니 이쁘게 지어주고 싶었다. 귀여우면서도 이쁜데 입에 착 달라붙는 이름.. 오랜 고민 끝에 나는 한 이름을 생각해냈다.


“린.. 린 어때요?”


여자는 펄쩍펄쩍 뛰면서 자기 이름을 스스로 몇번 불러보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엄청 좋아! 린!”


린의 귀여운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하루를 보냈다. 나보다 섬에 대해 잘 알고 생존방법을 잘 알고 있던 린과 함께 지내니 전에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했던 문제들이 쉽게 술술 풀렸다. 불도 금방 만들어냈고, 린의 안내로 깨끗한 물이 있는 작은 연못도 발견했다. 사냥하는 방법도 린에게 많이 배웠다. 숲에서는 멧돼지나 사슴 같은 동물들을 사냥했는데, 많이 어려웠다.. 사슴은 너무 빨라서 잡기가 어려웠고, 멧돼지는 나에게 돌진해서 겁 때문에 잘 사냥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실수에도 린이 와서 도와줬기 때문에 난 다치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린이 만들어준 나무 창으로 물고기를 사냥하는 방법을 배웠다. 물고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바다에 뿌리고 물고기가 오면 창으로 찔러 사냥하는 방법이였다. 이 방법은 꽤나 쉬웠다. 초반의 몇번은 계속 물고기를 놓쳤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물고기는 더 잘 잡혔다. 비가 와서 추울 때는 우리가 만든 불 앞에서 몸을 녹이고, 린이 만든 멧돼지 가죽 담요로 따듯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린과 굉장히 친해졌다.


“린! 오늘 엄청 큰 물고기 잡았다?”


“우와아! 진짜진짜 잘했어!”


이젠 린과 반말을 쓰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갈 정도로 사이가 깊어졌다. 그렇게 섬 생활을 즐기면서 구조요청을 위해 모래 사장 위에는 크게 SOS를 써놓았다. 매일 SOS를 모래사장에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건 린도 같이 구조될까, 라는 생각이였다. 사실 전에는 만약 구조될때 린과 당연히 같이 구조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날 린이 내게 말해준 것이 있었다.


“인간, 우리 처음 만날때, 내가 원래부터 여기 있었다고 했잖아.”


“그치?”


그때 처음으로 린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들었었다. 린은 원래 어머니와 함께 이 섬에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말해준거에 따르면 어머니는 나처럼 사고로 이 섬에 오게 된거고, 린을 임신한 상태여서 여기서 린을 낳았다고 했다. 그래서 린은 이 섬에서 태어났고, 말하는 방법이나 글을 쓰는 방법, 간단한 생존전략은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는 린이 14일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날은 린과 어머니가 같이 사냥을 나간 날이였는데, 사슴을 굉장히 많이 사냥했었단다. 그런데 사슴의 피냄새를 맡은 곰이 나타나 린과 어머니를 덮쳤고, 린은 겨우 곰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린을 구해주고 곰과 대치하다가 결국 곰에게… 린이 그 얘길 꺼낼 때 그동안 본 적 없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만큼, 린에게는 어머니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원래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마음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겠지만, 린에게는 그게 더 큰 것 같았다. 린은 그 사건 이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꺼번에 사냥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또 한꺼번에 많이 사냥했다가 곰이나 맹수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였다. 린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인간, 인간은 날 떠나지 마.. 인간이 지금 엄마 다음으로 큰 존재야..”


그 말을 들은 나는 린과 같이 구조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린의 평소 행동을 보면 이 섬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우리 둘이 같이 지내는 집 말고도 섬 곳곳에는 린이 작게 지어둔 아지트들이 몇군데 있었고, 숲 속 깊이 들어가면 린이 어릴때 키웠던 늑대도 있었다. 그 늑대는 아직까지도 린을 좋아했다. 물론 린이 자연에 풀어줬다했지만 린과 늑대 모두 서로를 좋아하는게 느껴졌다. 그래서 린에게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있잖아, 만약에 누군가 우리를 구조하러 오면, 넌 이 섬에 남을거야?”


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새로운 곳으로 가서 적응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이 섬에는 추억이 많단 말야.”


단호해보이지 않지만 단호했던 린의 말에 내 고민은 다시 깊어졌다. 린은 이 섬에 남고 싶어하지만, 사실 난 누군가 구조하러 오면 망설임 없이 탈 생각이였다. 가족들도 내 걱정을 하고 있을거고, 거기엔 내 집, 친구들, 반려동물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린은 이 섬에 그 모든게 있었다. 린의 집, 반려동물들.. 그래서 난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구조팀이 온다면.. 난 무슨 선택을 해야할까. 지금이라도 미리 린을 설득시켜서 같이 갈.. 근데 왜 나는 린과 이렇게 붙고 싶어할까.. 우리 사이가 깊어지기 전에는 린이 이 섬에 남겠다고 하고 나 혼자 구조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각자 행복하면, 그게 가장 좋은거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린과 사이가 깊어지자 린을 혼자 두고 떠날 자신이 없었다. 왜? 그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냥..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머릿속에 린 생각이 나 린을 찾게 됐다. 그리고 오늘, 나는 린을 설득시킬 생각이다. 같이 구조되자고. 같이 도시로 가서 살자고.


“저기.. 린.. 나 할 말 있어..”


린은 사냥준비를 하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뭔데 인간?”


평소라면 술술 말했을 말이 지금 긴장이 돼서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구조팀이 몇달 뒤, 몇년 뒤에 올 수도 있는거지만, 내일 당장이라도 올 수 있는거니까.


“…. 만약 구조팀이 오면.. 같이 도시로 가자.”


내 말에 린이 멈칫했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한 말이 정말 별로였다는걸 안다. 너무 명령조 같았고.. 부탁이 아닌 강요 같았다.


“.. 인간, 전에 한번 말했었잖아. 난 이 섬에 남을거야.”


린의 대답에 난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몸의 현상인데도 내 머릿속에서는 왜 눈물이 날 것 같냐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도 모르니까, 내가 왜 지금 눈물이 날 것만 같은지,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뭔지.


“그래도.. 도시에 가면.. 너도 더 잘 살고.. 같이 행복하게..”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이였다. 애초에 내 계획에 변명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감정이 욱해져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냥 같이 가면 안돼? 이런 섬 같은데 보단 도시가 훨씬 나아!”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린은 내 말을 듣고 인상을 팍 썼고, 나도 내가 미친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린을 붙잡고 싶었다. 같이 있고 싶었다. 계속. 애원해서 린이 도시에 같이 가준다면 무릎을 꿇고 애원도 할 수 있었다.


“… 인간.“


무슨 생각이였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이제 사과를 빨리 하라고 했지만, 입은 뇌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나 진짜..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같은 섬에 있는데 떨어져 있어도 네 생각이 나는걸 나보고 어쩌라고.. 나만 도시에 가고 너는 이 섬에 남으면.. 나 진짜 도시에서 제대로 살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같이 가주라.. 제발.. 응..?”


한심했다. 내가 왜 린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지, 그때 뇌에서 신호를 보냈다. 마치 데이터를 뒤지다가 이거에 대한 데이터를 찾은 듯 머릿속에서는 이게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니?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였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랑이 아니야. 이건.. 그냥 깊은 우정일 뿐이야. 나는 혼란스러움에 뒷걸음질 쳤고, 그대로 도망치듯 뛰었다. 꼴볼견이다. 린 앞에서 그딴 말들을 하고 지금은 이렇게 도망치다니. 도망쳐서 갈 때는 있나. 나는 바다 쪽으로 가서 바닷바람을 몸으로 맞았다. 이 곳의 바닷바람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마치 어지러운 방처럼 지저분해진 머리를 씻기기 위해 바닷바람을 맞다가 두두두두 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랬더니, 구조헬기가 우리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분명 좋아하고 환호해야할 상황이였다. 드디어 구조된다니! 집에 갈 수 있어!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야할 머리는 린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정말 사랑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헬기 소리에 린도 바다 쪽으로 나왔다. 린은 하늘 위에 헬기를 보고 멈칫했다.


“… 인간..!”


헬기는 내려오고 있었고, 그 뜻은 나와 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였다. 눈물이 핑 돌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이가 깊어지고 나서 계속 린의 생각이 난 것은, 린과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린을 볼때마다 웃음이 난 것은, 사랑이였구나.

어느새 헬기는 모래사장 위에 안착했고, 헬기 안에서는 소방관 차림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서 나에게 뭔갈 이리저리 물었다.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린만 생각날 뿐이였다. 소방관들은 헬기에 타며 내게 말했다.


“그쪽도 타시고, 저기 여성분도 얼른 타세요!“


하지만 우리 둘다 누군가 먼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섬 쪽으로 걸음을 옮기지도 못했고, 헬기 쪽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때 난 린을 바라봤다. 지금 너도 나 같은 고민을 하는거라면, 내가 너에게 느끼는 사랑이 너가 내게 느끼는 감정과 같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소방관은 얼른 타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그 소리는 그저 노이즈로만 들렸다. 나는 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린의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두 손으로 린의 두 볼을 감쌌다. 린의 볼을 처음 만져본건 아니다. 가끔씩 린의 볼을 꼬집으며 웃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기분이 뭔가 달랐다. 웃어야하는데, 입꼬리를 올려야하는데.. 분명 얼굴근육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볼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로 가득 차 흐릿한 눈 앞에서 린 또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 린.. 사실 있잖아.. 지금에서야 깨달은건데.. 나 널.. 좋아하고 사랑했나봐.. 맨날 너 생각만 하고.. 너가 안 보이면 머릿속에서 너가 지워지질 않고.. 그런데 그걸 지금에서야 깨달았어.. 나 사실.. 도시에 중요한 것만 없다면 너랑 이 섬에서 단둘이 살고 싶은데..”


이 말을 꺼내면서 린에게 미안함이 솟구쳤다.


“진짜 미안해 린… 나 도시에 가야될 것 같아.. 널 혼자 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떨구었다. 린과 떨어지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런 나를 린이 두 손으로 폭 안아주었다.


“.. 인간.. 이름이 뭐야..?”


“…. 이정호..”


“정호…”


린은 내 이름을 한번 되뇌이더니 말했다.


“우리 엄마가 말해줬어.. 만약 너무나도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런데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추억을 떠올리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널 이름이 아니라 인간으로만 불렀잖아.. 미안해.. 넌 내게 린이라는 이쁜 이름도 지어줬는데..“


내 어깨에 린의 눈물이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그 느낌에 내 눈물이 더 흘렀다. 난 린의 손을 꽉 잡은 채 말했다.


“언젠가.. 이 섬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올게 꼭…. 어떻게든 와서.. 너랑 다시 만날게..”


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린도 날 올려다보았다. 우리 둘은 잠시 눈을 맞추고 이마를 맞대었다.


“… 잊지마 그 약속..”


“당연하지..”


그 말을 끝으로 난 헬기를 탔고, 헬기를 탄 후에도 창문으로 섬을 계속 바라봤다. 헬기가 높이 뜰 수록 린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지만, 저기에 린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린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제 만날지 시간을 기약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서로가 있을거고, 서로를 잊지만 않는다면, 약속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5년 후-


[야야 이정호!! 나 성공했다!!! 사업이 엄청 성공해서 지금 나 엄청 부자야!!! 너랑 나랑 다른 애들이랑 같이 내 전세기 타고 여행이나 다녀볼래?]


그 문자를 받고 난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내 친구가 이렇게 성공을 하다니.. 참.. 나는 친구를 축하할겸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2~3년전에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지금 성공해서 집까지 저택으로 바꿨다. 친구네 집에 도착하니 다른 친구들도 다 있었다. 그렇게 친구의 전세기에 모두 타고 떠들면서 전세기가 이륙했다. 다들 신나게 카드게임을 하거나 서로 수다를 떨었지만, 난 그럴 기분이 아니였다. 비행기에만 타면 생각나는 린 때문에..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린의 얼굴이 그려지는데.. 과연 너는 날 기억하고 있을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기분에 나는 안대를 쓰고 잠에 청했다. 잠에 들면 그래도 슬픔이 가시지 않을까.

눈을 떴을 땐 전세기가 착륙하고 나서였다. 안대를 벗자, 전세기가 막 착륙했는지 다들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다. 나도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내렸다. 그리고 난 전세기에서 내리자마자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었다. 눈 앞에 린이 있었다.


“… 린..”


“… 정호야..”


서로 조용히 이름을 부르고 달려가 꼭 안았다.


“린..!!”


“보고싶었어..! 왜 이제 왔어..!!”


그렇게 감동의 재회를 마쳤다. 알고보니 사업이 성공한 친구가 전세기를 산 이유가 있었단다. 5년전에 내가 린과 헤어지게 되어 우울한걸 곁에서 본 친구였기에 전세기를 사서 린이 있는 섬으로 가주었던 것이다. 그런 친구의 생각에 조금 감동을 받아 친구와도 우정을 다시 단단히 쌓았다. 다른 친구들도 사업이 성공한 친구의 계획을 듣고 같이 동참했단다. 섬의 좌표나, 어떻게 운전해야할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린과 내 친구들과 섬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도 같이 먹고 나서 밤하늘에 별이 가득해질때, 친구들은 하나 둘 씩 전세기에 타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린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전세기에 탈려 했다. 그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전세기를 타는 계단에 린이 올라오고 있었다.


“.. 린..?”


린은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도 갈래! 너랑 같이!”


그 말에 난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져 린을 꽉 안았다.

그렇게 린과 도시에 도착한 나는 린이 도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우린 제대로된 연애를 시작했다. 데이트도 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그렇게 사귄지 3년이 되던 해, 내가 먼저 린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린은 감동을 받으며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다. 이제 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 가진 아빠가 되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