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 법학부에 입학했습니다.
법을 배운다는 건 정말 재밌었습니다. 법조문을 통해 막연했던 세상의 질서를 보게 되고, 판례를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학문을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그것도 내가 배우고 싶은 걸 전공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4학년 1학기를 끝으로 조기졸업을 했습니다.
법학을 좋아하기도 하고, 전공도 살리고 싶어 막연하게 공무원 시험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할 수 있지 생각했습니다. 시험을 만만하게 본 것이지요. 그때가 24년 9월이었습니다.
7급에 비해 9급이 더 많은 인원을 뽑고 있었기에, 병행하기보다는 빨리 합격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했습니다.
[25년도 시험준비]
전공과목 2과목은 법과목 중에서도 제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과목이기도 했고, 학사 과정에서도 A+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 혼자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대형 공무원 학원의 인강을 결제하여 법과목 기본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약 2-3개월 간 기본강의를 수강하면서 동시에 기출문제집을 풀어나갔습니다. 12월 말부터는 기출문제집만 여러 번 반복하여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국가직 기출을 풀어보는 방식으로 실력을 점검했습니다. 여러 직렬이 섞여 있는 문제집을 반복하고 국가직 기출을 실력 점검용으로 풀다니, 첫 단추가 잘못 꿰매졌습니다. 국어와 영어 과목은 문법 정도만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제가 본 25년도 시험부터 출제가 전환되어 국어, 영어 과목에서 지엽적인 암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는 한국사 자격증 1급을 딴 경험을 살려 강의는 수강하지 않고 기출로만 공부했습니다. 당시 준비 기간이 촉박했기에 국어, 영어, 한국사 3종 모의고사만 3번 풀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26년도 시험준비]
합격 컷인 93점과 제 점수인 90점은 3문제 차이였기 때문에 이 공부방식을 최대한 유지하고, 법과목에 더 투자하여 점수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6년도 시험까지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당시에 시험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상태에 시작하여 당일까지 달려야 가장 효율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25년도 시험 준비를 하면서 주말 오전에 알바를 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유지하고, 평일 중 3일은 수학학원에서 초등학생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다음 시험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말이죠.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초반에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법과목 기본강의를 들었고, 새로운 기출문제집을 사서 풀었습니다. 12월 초부터는 주말 알바와 학원을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5년도 시험 준비때와는 다르게 국어와 영어는 아침마다 하프 모의고사를 풀었습니다. 법과목은 개념 정리 및 문제집, 모의고사 풀기 등을 반복했고, 시험장에 들고 갈 나만의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자주 틀리거나 이번에 나올만한 중요 판례들을 정리했습니다. 한국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출을 풀고, 오답정리 및 암기를 하는 방향으로 공부했습니다.
25년도 시험과는 다르게 26년도 시험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동반했습니다. 졸려도 잠이 안 오고, 감기까지 걸렸습니다.
25년도 시험 준비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험에 임했기 때문에 단순하게 진도 나가는 것에 바빴고 문제 풀기에 급급했죠.
26년도 시험을 준비할 때는, 몇 문제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왕이면 ‘난 무조건 고득점으로 합격한다’라는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문제를 풀면 풀수록, 정체 모를 두려움이 절 감쌌습니다.
한 문제 한 문제가 소중해졌고, 급기야 답을 고르면 제 자신을 의심하면서 다른 선지들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시험 당일 저의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법과목을 풀 때 1번 선지가 답이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정석이지요. 전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머지 선지들도 확인하여 1번이 정답 선지인 것을 확인하고 넘어갔고, 그다음으로 푼 영어 과목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선지들도 다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졌고, 국어와 한국사를 정신없이 풀었고, 시험 종료 5분 전에 한국사 5문제를 풀지 못한 채 급한 대로 마킹부터 시작했습니다.
정말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마음속에선 ‘제발 1초만 더..‘ 만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한국사 5문제를 거의 찍다시피 풀고 마킹하니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OMR 가채점 결과, 맞힌 2문제가 마킹 실수로 틀린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약 1년 6개월의 수험기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집으로 돌아와 채점을 하고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의 수험기간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가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돌아보니, 시험장에서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선택과 습관들이 쌓여 결국 그 결과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공부 방식, 과도한 완벽주의, 그리고 기준의 부재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을 흔들었고, 결국 시험장에서의 판단까지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