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와 오키나와 여행 (1)

휠체어만 있으면 갈 수 있다

by 민혜숙

나 : 진짜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뭔가 이벤트를 해야 하는데.

남편 : 따뜻한 오키나와에 가는 건 어때?

나 : 아버지랑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많이 걷지 못하시니...

남편 : 휠체어를 빌리면 되지!


결혼 30주년으로 5월에 파리에 2주간이나 여행을 다녀와서 12월에 진짜 기념일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뭔가 아쉬워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2025년 과외 은퇴 첫해를 맞이한 나와 직장 은퇴 두 번째 해를 지내는 남편과 나는 한 해 동안 무진장 돌아다녔다.


인생에서 가장 여행을 많이 다닌 한 해를 보내면서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죄송하기도 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제 80대 후반으로 가시는 아버지는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여행을 소화할 만큼 많이 걷기가 힘드시다. 몇백 미터 걸으시면 쉬어가야 하니 작년 여름 천리포 수목원에 갔을 때도 ‘난 여기서 쉬고 있을 테니 너희들만 둘러보고 와’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가도 함께 그 장소의 아름다움을 다 볼 수 없고 자동차를 오래 타시면 더욱 통증이 심해지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아버지를 위한 신박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휠체어를 렌터카와 같이 빌릴 수 있는 일본 렌터카 회사를 발견했는데, 한국인이 경영하는 이 회사 이름은 ‘오달’이다. 오키나와의 달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팡이도 짚고 다니지 않는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좋다고 하실까, 86세의 나이에 해외여행을 가자고 하실까 의심하면서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가시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의 기뻐하는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렸고, 결혼 기념여행과 효도 여행, 두 남자와 함께 떠나는 일석이조의 오키나와 여행에 발동을 걸었다.


‘오달’은 정말 감동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는 중에 직원분은 이미 공항에 나와 대기하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 오키나와는 입국 절차는 복잡해서 시간이 꽤 걸렸다. 수속을 마치고 문이 짠 열리면서 우리는 휠체어를 펴고 기다리는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작은 키에 날렵한 외모의 중년 남성을 만났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넓고 긴 공항을 쉽게 거쳐 렌터카가 주차된 승강장까지 올 수 있었다.


병원에서 입퇴원 할 때 말고 휠체어를 타신 건 처음이신 아버지는 약간 어색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원분의 친절한 말씨와 응대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피부색이 좀 어두운 편이라 아버지는 한국인 맞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한국인 맞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 직원분의 미소와 친절함은 일본에 다시 오고 싶어지도록 하는 엄청난 끌어당기는 힘이다. 제아무리 유명한 식당이어도 친절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가고 늘 친절에 목말라하는 나에게 특별히 그렇다. 친절함, 다정함, 미소가 없는 음식이 뭐 그리 대단하랴. 음식뿐 아니라 인생도 그렇다. 미소를 뺀 인생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오달 렌터카 회사에 도착해 왼쪽 차선으로 운전해야 하는 일본에서의 운전 요령과 휠체어를 올리고 내리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빌린 차량은 승용차가 아니라 승합차였다. 아버지와 나는 뒷자리에 남편은 운전석에 앉아서 무사히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이층집이었는데 1층에 방이 3개 있고 2층에는 한 개의 방과 부엌과 거실이 넓게 마련되어 있었다. 더블 침대가 총 5개니 이 집은 10인이 잘 수 있는 집이었다. 식기도 10개씩 넉넉히 있었는데, 이 고마운 주방에서 나는 4박 5일 동안 완벽한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 넓디넓은 숙소는 매우 조용했고 1박에 25만 원이었다. 호텔방 2개를 구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내 집처럼 편안한 곳이었다. 게다가 주방에서 조리까지 할 수 있어서 여행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보통 국내에서 콘도로 여행 가면 부엌에서 음식을 해야 하는 수고를 하기 싫은데 외국에서 에어비앤비로 숙박을 하고 부엌에서 조리하는 일은 재미가 쏠쏠하다. 오키나와에는 ‘어메리칸 빌리지’라는 상업 밀집 구역이 있다. 숙소도 어메리칸 빌리지 가까이 구했는데, 첫 날 도착해서 가보고 매우 놀랐다. 이 작은 섬에 이렇게 큰 상업지역이 있다니!


1945년부터 1972년까지는 미군의 직접 점령 기간이었고 현재도 미국의 일본 내 기지의 70%는 오키나와에 있다고 한다. 이런 미군의 영향으로 스테이크 버거 같은 미국식 음식과 일본 가정식 식당, 가족이 함께 식사 가능한 이자카야, 카페, 디저트 가게 등등 수백 개의 영업장과 거대한 주차장이 있었다. 이곳에 ‘이온’이라는 복합 쇼핑몰이 있었는데 1층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장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유여행의 소소한 재미를 마트에서 먹거리를 사면서 느끼곤 한다. 한국 물가와 비교하며 야채와 과일을 골라 무게를 재고 선물할 과자나 초콜릿도 장바구니에 담고 아침 식사용 빵은 베이커리에서 산다. 일본에 오면 까막눈이 되는 나는 제품들에 적힌 일본문자 속에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숨은그림 찾기 비슷하다.


유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이 천국이다. 요구르트와 우유를 종류별로 담고 샐러드를 만들 야들야들한 상추와 싱싱한 토마토와 당근 등등을 사가지고 숙소에 와서 창문을 열고 옆집, 앞집을 둘러 보았다. 차탄이라는 이 지역의 에어비앤비 숙소들은 관광객을 위한 깔끔한 이층집으로 새 건물이었는데 대부분 한국인이 묵고 있었다. 파리처럼 주인이 사는 듯한 숙소가 아니어서 좋았다.


30초면 바닷가 산책로에 갈 수 있었다. 봄 날씨처럼 따뜻한 공기를 가르며 바닷가를 산책하다 보면 여기가 외국인 듯 아닌 듯하다. 일본인 국내 관광객이 80% 정도로 내국인 방문이 많은 오키나와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주로 한국인과 대만인이라고 한다. 백인들이 잘 보이지 않는 이곳은 심리적으로 멀리 왔다는 느낌은 주지 않지만, 일본에 오면 느끼는 사람들의 친절함과 온화한 날씨는 외국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날씨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매우 흐렸다. 그럼에도 바다는 에머럴드 빛을 조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저 바다가 해를 받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바다라는 존재는 그냥 아름답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해가 비치듯, 폭풍이 치든.


그런 바다를 오늘 참 많이 봤다. 공항에서 아주 가까워서 점심 식사를 하러 간 곳은 세나가섬이었다. 섬에 조성된 ‘우미카지 테라스’라는 구역에는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식사를 할 식당과 카페가 많았다. 우리는 ‘포실리포 Posillipo’라는 이름이 좀 어려운 이탈리아 식당에서 피자와 파스타는 맛있게, 돼지고기 요리는 좀 아쉽게 먹었다. 가격이 좀 비싼 그러나 매우 우아하고 친절한 식당이었다. 늦은 점심이라 아주 맛나게 친절함을 즐기며 식사를 했다. 외국 음식을 며칠 동안 먹어도 괜찮은 아버지와 남편은 여행에 특화된 나의 두 남자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휠체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으로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도착한 이곳에서 나는 여행 떠나기 전 근심을 내려놓았다. 포실리포라는 이름은 검색해 보니 ‘근심을 멈추는 곳’ 이라는 뜻으로 나폴리의 해안의 언덕이라고 한다. 나폴리는 아니지만 오키나와의 바다를 보면서 근심을 멈추고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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