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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an 21. 2023

뉴질랜드 남섬 자유여행 (6회중 1회)

크리스마스에 도착한 퀸즈타운

출발

우리가족은 지금부터 20년 전 2002년에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한 이민자로 살고 있었다. 북섬 오클랜드 대도시에서 살면서 뉴질랜드 남섬에 가고 싶었다. 서점에서 보는 뉴질랜드의 자연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화집을 보고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아이도 너무 어려서 트래킹이 불가능하고 돈도 없어서 역이민을 결정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섬은 그래서 늘 신비한 남극에 가까운 곳으로 내 머리에 자리 잡았고 20년 동안이나 무의식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이 욕망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온 게 지난가을. 3년 동안 코로나로 해외에 못 나가다가 드디어 겨울에 따뜻한 여름인 뉴질랜드 남섬이 여행지로 낙점되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송도 신도시를 지나면서 10년 전 추억을 더듬었다. 우리가 살던 금오 어울림 아파트는 이제 송도 스카이라인에서 가장 낮은 아파트고 주변 상가는 이제 노쇠한 분위기였다 저기 종합상가에서 영어 학원이 있었고 세린이도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 학원은 없어졌다. 다른 영어 수학 학원이 즐비하고 그 옆에 병원들도 즐비하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이유가 옆에 상가에 병원을 차리기 위한 것이 아닐까? 전국 1등부터 의대, 치의대, 수의대에 차곡차곡 아이들이 쌓인다. 수능 만점자는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고 서울대 타과에 들어간 아이들도 의대에 가기 위해 등록을 안 하거나 반수생이 되는 입시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온다. 망치든 사람은 못밖에 안 보인다고 과외 선생은 신도시에 학원 간판만 눈에 들어온다.     


딸아이가 중학교 시절을 보낸 송도를 지나 영종도 대교를 건너면서 세린이가 필리핀 어학연수 간다고 오늘처럼 추운 날 눈이 무릎까지 쌓여서 결항이 될둥 말둥 했던 날이 생각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공항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출발 24시간 전에 자리를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었다고 해서 홈피에 들어갔더니 이미 90%의 자리는 예약이 끝나 버린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부지런하고 빠른지 인터넷이 열리자마자 무슨 공연 티켓팅 하듯 자리를 맡았는지 깜짝 놀랐다. 우리는 자리 예약은 했으되 확약은 되지 않은 상태여서 공항 체크인 줄을 서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4시간 전은 선택한 자리에 대해 확약하는 것이고, 출발 일주일 전부터 좌석을 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여행사 직원이 잘못된 정보를 주었던 것이었다. 정말 이 여행사 마음에 안 드네….  

   

인천공항에서

출발 시간이 저녁 8시 50분이었고 체크인이 5시 20분부터라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5시 15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줄을 선 사람들이 가득가득. 와! 미리 공항에 와서 기다린 보람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에 섰다가, 인터넷으로 자리 받은 배정 받은 사람들 줄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거기로 가서 직원에게 물었다. 자리 지정할 때 미스테리에 대해 물어보니 사람들이 이미 좋은 좌석을 추가금액 더 지불하고 샀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뉴질랜드 에어 홈페이지에서 세린 나 학철씨 동시에 접속해서 동시에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세린이만 좌석 확정이 되고 나와 학철씨는 잘 안돼서 포기하고 말았다.아무튼 이제는 항공사 홈피에 들어가서 좌석을 배정받고 확정까지 하면 공항에서 일사천리로 보딩패스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우연히 좋은 자리를 얻는 행운도 없다. 기내에서 좋은 자리는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합리적인 건지 고도의 상술인지 알 수 없다.


뉴질랜드 에어의 음식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양이 너무 적고 메인요리 말고 디저트나 샐러드가 맛이 없었다. 후식으로 식사 트레이에 있던 케익은 정말 맛이 없었고, 저녁 식사치고는 양이 적어 케익을 먹지 않으니 배가 다 차지도 않았다. 영화도 다 옛날 영화와 애니메이션이어서 볼 영화도 없었다. 동북아시아 얼굴을 한 여자 승무원을 우리말과 영어를 다 잘하는 이민 1.5세 혹은 2세 같았다. 우리나라 승무원과 비교하여 키가 크거나 미모의 여성들은 아니었다. 세린이가 뉴질랜드에서 자랐다면 저런 식으로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았을까 했다. 남자 승무원은 마오리의 피가 흐르는 분인지 기골이 장대하고 너무 온화한 미소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마오리, 백인 ,동양인, 정말 여러 인종이 타고 있었다. 백인 아빠와 동양인 엄마와 유라시안 아가의 가족도 보였다. 20년 전에는 e ‘에’ 발음을 i ‘이’로 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뉴질랜드 액센트가 오늘 들어보니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억양도 변하는가 싶었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퀸스타운까지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해서는 통관하는데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내선으로 갈아탈 때는 을 찾아서 다시 체크인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경유지를 통해 여행하면 그냥 짐은 나와 같이 움직이는 건데 짐을 찾아 다시 체크인하라고 했다. 국내선을 타기 위해 2시간가량 여유가 있었지만, 뉴질랜드의 정책이 엄격해서 동식물 과일 등 반입 금지 품목이 많았고 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입국 절차를 밟고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데 걸어가도 된다고 했건만, 길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공항 직원조차 모르겠다고 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 공항에 갔다. 다행히 국내 공항은 사람이 없어서 짐을 빨리 부치고 나니 바로 비행기 탈 시간이 되었다. 날씨가 화창해서 작은 비행기로 2시간가량 오클랜드에서 퀸스타운으로 갈 때는 비행기가 기류에 흔들리는 공포의 시간은 전혀 없었다. 다만 내 옆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한국여성이 너무 떠들어서 괴로웠다. 지난밤 비행기에서 거의 잠을 못 자서 잠시 자고 싶었는데 이 모녀의 큰 목소리에 잠드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퀸스타운 공항에 내리자마자 탄성을 지르게 한 것은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그 아래 검은색 산이었다. 숲이 우거진 산이 아니라 겹겹이 주름이 진 듯한 나지막한 산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을 못 차리리니 공항 직원이 빨리 이동하라고 성화를 바친다.     


택시를 타기보다 셔틀버스를 탔다. 우리는 ‘주시 스누즈 Jucy Snooze’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호텔로 가야 했다. 현지인들은 그냥 주시라 부르는 아주 작은 호텔이었다. 거의 젊은이들이 많아서 우리 부부가 거의 최고령자로 보였다. 방에 들어서니 너무너무 좁아서 가방을 침대 밑에 두어야 했다. 그 바람에 침대는 매우 높았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케이블카가 산 아래서 위로 운행하는 모습이었는데 케이블카를 이곳 사람들은 곤돌라라고 불렀다.      

와카티푸 호수에서 감동적인 저녁 식사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와카티푸 호수로 갔다. 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크다는 이 호수를 보니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렸다. 호수 근처의 동그란 모양의 느릅나무 elm tree는 여름의 푸르름을 혼자 다 품은 듯 너무 초록이 작렬하고 있었다. 한겨울인 나라에서 한여름인 나라로 날아와 만나는 기분 좋은 푸르름이었다.      


호수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보았다. 아예 크리스마스 메뉴만 있어서 1인당 80~90불인 곳이 많았다. 물가가 우리의 2배 정도 되는 것 같다. 식당도 규모가 작고 뭐 고급스럽지도 않은데 가격은 엄청 비싸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만다린’이라는 중식당이었다. 작은 원탁에 앉아 crispy duck이라는 북경 오리 비슷한 오리요리와 양고기 스튜와 완톤 만두 튀김과 흰밥을 시켰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중국요리인 데다가 비행기에 내리서 제대로 점심을 못 먹고 퀸스타운까지 와서 배고픈 상태여서 더욱 맛있게 먹었다. 약간 양이 모자라는 듯해서 완톤 수프를 주문해서 바로 ‘이 맛이야!’ 하면서 뜨끈한 국물과 만두를 삼켰다. 식도와 오장육부가 뜨거워지면서 온몸이 노곤해졌다. 24일 아침부터 아이들과 수업하고 짐 싸고 바로 공항으로 떠나서 24일 밤 8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밤새 날아서 25일 오후 5시쯤 호텔에 도착했다. 비행시간만 13시간 30분이었다. 이 긴긴 시간을 거쳐 도착한 곳은 영국 여왕님이 아름다워하셨을 퀸스타운. 아니 누구라도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낼 퀸스타운이었다.     

퀸스타운은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다. 알프스산맥 자락의 오스트리아 볼프강 호수나 할슈타트 호수처럼 아름다운데 규모가 훨씬 훨씬 크다. 크기와 아름다움에서 세계 정상급이었다. 불행히도 물가도 정상급이었다. 공항에서 물 500cc가 4달러(3200원)가 넘어서 공항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도시 어디를 가나 그 가격이다. 크리스마스라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이 아름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게 문들이 다 닫혀 있고 26일인 Boxing Day 까지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우리 설이나 추석 연휴 같은 분위기였다.     

인구 7만의 작은 도시 퀸스타운에 길이 80km의 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자리 잡은 와카티푸 호수. 마오리 언어로 비취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변의 산책로와 아름다운 카페 맥주집에게 잔잔한 파도소리를 들려주고, 갈매기와 오리들이 풍경을 수놓는 그런 호수였다. 푸르른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로 추정되는 깻잎 모양의 나무가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 곡예를 하는 사람들이 산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해지는 호수를 끝없이 바라보고 짙어지는 구름 색을 감상했다. 우리가 뉴질랜드 이민을 포기하고 떠날 때, 떠나기 싫게 만든 그 구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저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파타고니아’라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마스카포네와 과일 맛이 나는 환상적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스플릿이라는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주문하는 사람들의 줄이 얼마나 긴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하염없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 선 사람들에게 직원이 메뉴가 적힌 종이를 나눠줘서 사람들이 주문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아이스크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콘 두 개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와 창문을 통해 황혼의 아름다운 호수를 오래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페키지 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의 맛이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곳은 1층에 부엌 공간이 있었는데 식기, 전열기, 커피와 차등이 갖춰져 있어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냉장고에 자기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고 스티커를 이용해서 이름과 체크아웃하는 날짜를 적어 놓게 했다. 마치 옛날 기숙사의 부엌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곤이 밀려 왔다. 밤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고 비행기를 갈아타고 저녁을 거나하게 먹고 긴장이 풀려 잠도 쏟아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의 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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