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학생들 방학하기 전에요? 남편 : 그렇지. 빨리 휴가 다녀와서 힘을 내서 여름을 보내려고.
나 : 아 장마가 그때쯤이면 끝나겠지?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숙소를 예약하려는데 남편이 7월 중순으로 빨리 예약을 하자고 해서 그리 했다. 그런데 7월 중순 엄청난 장맛비로 인한 비 피해 소식과 극한 날씨라는 말이 들리는 와중에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남편은 열심히 일기예보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중부지방에 비교해 남부지방은 비가 덜 할 것이나 안심하라고 했지만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다 잦아지기를 반복했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와 앞이 잘 보이도록 비가 오지만 아무 문제 없다고 하는 남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비가 오면 호텔 방에 죽치고 앉아 있을 각오를 속으로 하고 있었다.
부산 기장군에 도착했다. 비가 오니 바닷가 산책을 할 수 없어서 점심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작은 카페에 갔다. 해변에는 한 사람도 없고 세찬 파도가 치고 있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으니 바다를 향한 창문은 빗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빗물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사나웠고, 창문 옆에 심어진 소나무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소나무 가지의 흔들림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멀리서 온 우리를 위해 에메랄드빛이 약간 도는 듯 하다가. 수면이 수평선으로 갈수록 진한 인디고블루가 되더니 숨 막히게 광활한 회색 비구름이 꽉 찬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비 오는 바다는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바다를 보여 주었다. 태양도 해수욕객의 번잡함이 없는 바람 소리 빗소리만 가득한 바다였다. 빗물 가득한 이 창문 밖은 세찬 바람과 비가 몰아치고 있지만, 이 창문 안은 안온하기 짝이 없다. 당근 케이크와 루이보스차가 있는 실내의 안전함과 상쾌함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닐까 싶었다. 세상 밖은 저렇게 나를 잡아 삼킬 듯 무서운 비바람이 몰아쳐도 언제나 안심하고 들어 올 수 있는 가족이라는 안전지대.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아버지 어머니와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유원지 물가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나는 튜브를 타고 둥둥 떠 있고, 톰 크루즈보다 멋진 포스와 넓은 어깨 및 믿음직한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두꺼운) 가슴이 드러난 아버지가 있다. 그 옆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가녀린 나의 어머니. 두 분이 나의 튜브를 잡고 계시다. 나는 꽃이 달린 수영모를 푹 뒤집어써서 이마가 반은 가려진 채 튜브에 턱을 걸고 안심한 듯 물을 바라보고 그렇게 사진에 담겨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깊은 물가에서도 나는 부모님이 옆에 계시니 내 표정은 한없이 평안하다. 부모님의 그늘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나는 깊은 물이든 얕은 물이든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무서운 바다를 건너 멀리 프랑스 리옹이라는 도시까지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겠다고 무모한 모험을 할 수 있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물을 배운 사람은 거칠고 사나운 물을 보아도 떠나고 싶은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함께 여행을 떠난 내 딸도 대학의 낭만을 즐기는 학부 생활을 마치고, 이제 실험실 노예 인생이 시작될 거라는 무서운 말을 내뱉고는, 학위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대학원 세계에 몸을 던졌다. 사나운 폭풍과 피부와 뇌에 구멍을 낼 듯한 태양이 꽂히는 학문의 바다로 갈 수 있었던 건 언제든 쉬어 갈 수 있는 가족이라는 안온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묵는 호텔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었다. 수심이 1.1m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어린이들을 위한 수영장인가 싶었다. 몸을 던질 바닷가가 없으니 수영장이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수영장에 1등으로 줄을 서서 입장했다. 수영장에 들어가는 순간 이 따뜻함은 뭐지 하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을 배려한 것 같다. 이 따뜻하고 깨끗한 물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구름 아래 무서운 물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꼬맹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수영장이 꽉 차버렸다. 이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어쩔 줄 모르게 신이 났다. 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물에 몸을 둥둥 띄우고 헤엄을 쳐다보니,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있다는 강렬한 기쁨의 도파민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내 옆을 스치는 어린이들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 사진 속에 나처럼 아버지 어머니의 팔을 잡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안전한 즐거움을 먹고 저 아이들도 큰 꿈을 키우고 성난 거품이 이는 파도를 뚫고 바다로 나아가길 기원했다.
해운대에 왔으니 요트를 타야 했다. 2년 전 봄에 정말 신사의 기품있는 선장님의 요트를 탄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그 선장님 배를 예약했다. 여행 첫날은 풍랑주의보로 취소되어 다시 예약했는데 비바람 부는 날씨에도 과연 승선해야 하는가 몹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배를 타고 싶다는 마음에 요트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심히 요동하고 돛은 바람에 굉음을 냈다. 요트가 바람을 맞으며 가다 보니 배는 극심하게 기울어져 위로 올라온 쪽으로 7명이 승객이 몰려 앉아야 했다. 거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비유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요트 승선 시간이 60분인데 떠 난지 5분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60분의 공포를 인내할지 난감했다. 일렁이는 파도를 보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해운대 마린시티의 마천루들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의 사악함과 해내야 하는 각자의 일이 이 요트 타기 같지 않을까 했다. 이 바다의 포효 속에서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그저 장난감 같았다. 설마 이 배가 뒤집히는 건 아니겠지만 전복한다 해도 구명조끼가 있으니, 아까 아침에 실내수영장에서 했던 것처럼 헤엄을 치면 저 선착장까지는 갈 수 있을 거야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장님의 배려로 배를 돌려 광안대교 아래로 오니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한 20분 동안 계속된 무시무시한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 고통스러운 바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무서운 바다가 있으니, 따뜻한 물과 손잡아 줄 사람이 있는 실내수영장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바다도 있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몸을 풍덩 던지는 안전한 물도 있다. 여행은 무서운 물에서 각자 사는 가족에게 주어지는 따뜻하고 즐거운 물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서 우리는 해변을 산책할 수도 없어서 호텔에 있는 TV를 켜 보았다. TV 없이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라 큰 화면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넷플릭스 구경도 하고 딸아이가 본다는 TVing 도 둘러 보았다. 유튜브도 연결해서 볼 수 있다 해서 임윤찬의 연주를 큰 화면으로 보니 연주회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큰 TV 앞에서 대학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한 학기를 보낸 딸 아이의 일상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를 듣고 임윤찬을 내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다 보니 자정이 넘는 것도 몰랐다. 나는 이렇게 편안하고 다정한 딸과의 수다를 좋아한다. 우리 둘은 체온에 일치하는 물속에 들어온 것 같다.
안전한 물은 집이고 무서운 물은 세상이다. 실내수영장도 있고 폭풍우 치는 바다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물에서만 살 수는 없다. 안온한 물에서 있을 때면 인생은 지리멸렬한 것 같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그래서 바다를 향해 용기를 내 떠나야 한다. 그래야 배울 수가 있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바다는 배움의 기회를 준다. 계획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바다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 인생이 바다에서 피할 수 없이 높은 파도와 암흑의 밤을 만난다. 못 견디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따뜻한 침대와 음식이 그립다. 그때마다 돌아올 안전하고 쉴만한 물이 있기에 우리는 거친 바다로 다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