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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ul 06. 2023

남편은 친구

같이 밥먹고 같이 뛴다

남편 : (카톡으로)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요?
 나 : 오키! 파스타 먹으러 갑시다!
 남편 : 그럼 농협 주차장에서 만나요.

나 : 10분 후 떠납니다. (속으로) 앗싸!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평일에 남편과 점심으로 외식을 한다. 아침 식사는 10분이면 끝내야 하는 분주한 식사라 대화하기 어렵고, 내가 늦은 오후부터 오밤중까지 과외 수업을 하는지라 남편과 저녁밥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가까운 맛집을 찾아가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집에서 잘할 수 없는 숯불갈비나 제대로 만드는 파스타 집이나 플레이팅이 예쁜 샐러드와 피자집에서 점심이라 하기엔 좀 과하게 먹는다. 남편이 사무실에 좀 늦게 들어가도 괜찮은 날이면 커피까지 마시며 땡땡이치는 것을 도와준다. 남편 직장과 우리 집 사이에 농협이 있는데 거기에서 접선하듯 12시에 남편과 만나 한 차로 정한 식당으로 간다. 작은 시골 농협에서 5분쯤 가면 맛집이 펼쳐지는 신도시가 나오고 거기서 1시간 정도의 짧은 데이트를 한다.     


<인생 후르츠>라는 영화를 보면 노부부가 작은 집에서 정원에 수많은 과일나무와 채소를 심어 가꾸면서 음식을 해 먹는다. 그렇게 온종일 같이 지내면서 오순도순 지내는 부부처럼 나도 남편과 지내고 싶다. 그런데 각자 주중의 삶이 바쁘고 주말에도 친구나 지인을 집으로 초대할 때가 많고 부부만의 조용한 시간은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주중 점심에 남편을 만나 식사를 하거나 주말에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한다. 남편과 아내가 단둘이서 카페 가는 부부는 많지 않다고 남편은 자신이 엄청난 애처가라고 항상 너스레를 떤다. 남편은 20대 중반부터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당하며 살아온 엔지니어였고 늘 귀가 시간이 늦었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일찍 퇴근하지만, 남편의 긴 부재에 기다림이 많았던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나는 남편이 그립다. 내가 황혼을 좋아하는 것은 해지면 남편을 만날 수 있어서라고 오글거리는 언사를 해서 지인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결혼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남편의 점심 식사 초청은 마음 설레게 한다. 맛있는 음식을 남편과 같이 먹는 것은 큰 기쁨이다. 행복이 뭐 별거인가.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감사하며 먹는 것 아닐까.     

 

외식이 지겨울 때, 영화 속 할머니처럼 나도 점심 식사를 잘 준비해서 집에서 남편과 식사를 하기도 한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프린트를 열심히 해서 집에까지 배달해 주었는데 한 문제도 안 풀어온 학생들에 대해 성토대회를 하거나, 결석한 한 여학생의 변명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기도 한다. 이렇게 남편과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사실 나는 남편 얼굴을 자세히 보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기 때문이다. 이제는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훨씬 많고, 눈 아래 지방이 도드라져 보인다.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이제 어린아이들 눈에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로 보이는 흰머리의 얼굴이다. 이 얼굴을 자세히 보면서 잘생겼구나 하는 생각하는 내가 웃겨서 속으로 웃는다. 나처럼 콩깍지를 쓴 <인생 후르츠>의 여주인공 87세 할머니도 우리에게 고백한다. 90살이 된 남편이 잘생겨 보인다고!      


지난달에 성공회에 나이 지긋한 어머니 교우님들이 우리 성당에 방문하셨는데 그중 한 분을 교우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홀로 지내시는 분이라 외로우실 것 같아 내가 어머니라고 부르며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나에게 카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남들도 인생도 무척 좋아하기로 했어요. 자신과 남들과 싸울 시간이 없어요. 곧 영원히 헤어질 당과 항상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 이 순간을 무척 좋아하기로 했어요’ 눈물이 핑 돌게 하는 말씀이었다. 내 인생을 사랑하는 시간으로 채우기도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으로 밥 먹는 거 말고 뭔가 같이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몇 년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점점 달리기를 잘해서 마라톤 완주도 하고 하프 마라톤도 자주 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초보자들을 가르치는 ‘코치’님이 되었다.      


날씨가 더운 여름이 되면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공설 운동장에 나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달리기를 한다. 400m 트랙으로 5km 정도 달린다. 지루할까 봐 휴대전화로 음악도 틀고 옆에서 뛰는 남편 코치님은 ‘잘 뛴다!’라고 추임새도 넣어주고 현재 속도가 얼마인지 현재 얼마를 달렸는지 생방송을 해준다. 몸을 가볍게 하라, 몸이 조금 앞으로 기울어지게 하라, 팔을 뒤로 치면서 뛰어라, 엉덩이를 약간 트위스트 하듯 해봐라 등등 함께 옆에서 달리면서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이걸 잔소리로 듣지 않고 열심히 듣고 따라 하는 것은 정말 그렇게 하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정말 몸을 앞으로 기울이듯 뛰었더니 저절로 속도가 났다. 내 몸이 공중으로 방방 뜨는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을 내딛게 되고 그러니 속도가 붙었다. 몸에 집중하면서 몸의 움직임, 심장박동, 가쁜 숨, 흐르는 땀을 느끼는 것은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호모사피엔스가 대자연을 달릴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상상도 해본다.     


운동할 때는 최대한 몸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면 젊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주로 러닝머신에서 걸으면서 기계에 설치된 TV를 보고, 젊은이들은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운동을 하는데 거의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구를 사용할 때 3회 운동을 반복해야 하고, 1회 하고 1분 정도 쉬어야 하는데, 그 1분 동안 거의 전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휴대전화에 눈을 두고 있다 보면 그 1분이 2분, 3분이 되고 어떤 회원을 운동 기구에 눕거나 앉아서 하염없이 폰삼매경이다. 공부할 때는 휴대전화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어른들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면서 정작 어른들도 휴대전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운동에 집중할 수 없어서 휴대전화를 운동할 때 가져가지 않고, 남편과 운동장에서 뛰었던 그 기분으로 숨이 가쁘도록 1시간을 열심히 하고 귀가하는데, 이 체육관에서 체력을 쌓아서 달리기도 잘 되는 것 같다. 하루에 1시간 운동하는 시간은 잘 달리기 위한 준비운동 시간이다.      


남편과 둘이서도 뛰기도 하고, 남편이 달리기를 가르쳐 주고 있는 여성분들과도 같이 뛴다. 서너 번 만남으로 이내 친근해진 두 여성 러너들과 셋이서 뛰는 것도 재미있었다. 앱을 이용해서 5분 뛰고 2분 걷는 방식이었는데 5분 동안 죽어라 뛰니 2분의 걷기가 달콤했다. 다 뛰고 나서 물을 마시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보름달이 두둥 떠올랐다. 다들 이 예쁜 달님을 찍어 보려고 스마트폰을 달을 향해 올리고 셔터를 눌렀다. 달이 더 선명하게 나오게 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정보를 나누면서 찍었더니 제법 근사한 사진이 나왔다. 높은 온도와 습도에도 불구하고 달 밝은 밤에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달구경을 했다. 피곤한 몸을 소생시키는 달빛이 운동장의 불빛과 어우러져 고즈넉했다.     


남편은 이제 남편이라기보다 나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성실하게 인생을 감당하며 우정을 나누어 왔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고 직업을 수행하고 생활에서 생겨나는 각종 필요에 응답하며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게 지낸 사람이 되었다. 너무 가까운 사람인데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MBTI 검사로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시기도 있었고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시절은 어느새 지나 남편은 은퇴가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인생의 굽이굽이 지나 여기까지 같이 달려온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같이 앞으로도 같이 밥 먹고 같이 달리고 하면서 지낼까 한다. 달리고 나서 하늘에 둥근달을 쳐다보니 남편 얼굴과 달이 겹친다. 여태껏 남편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이 콩깍지는 아무래도 결혼의 신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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