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생일 축하한다! 옛날에 너가 태어났던 집은 초가집이었어.
나 : 초가집이었다고요?
아버지 : 그래, 산파가 왔을 때 나는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있었지.
나 : 그 얘기는 많이 하셨는데 초가집이란 건 여태 몰랐네요!
내가 태어난 초가집
매년 내 생일 아침이 되면 아버지는 나에게 생일 축하금을 통장으로 보내주시고 어김없이 전화를 주신다. 내가 태어날 당시 상황을 생일마다 기억을 호출시키시는데 이번 생일에는 내가 초가집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주셨다. 1960년대 후반 시골의 일반적인 주거형태가 초가집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한 것이 아닌데,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과 살던 집은 일반주택이거나 아파트다 보니, 내가 초가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와 같이 아버지는 아이들 시험지 채점하다가 어머니가 배가 아프기 시작하자 산파가 와서 내가 태어났다고 여러 번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는 추운 겨울 태어날 나를 씻길 물을 데우고 계셨다고 하신다. 그 집이 초가집이었다는 말씀은 올해 처음 하셨다. 초가집이 궁금해서 출생의 비밀을 찾아가듯 그 연유를 여쭤보니 아버지의 젊은 날 고군분투였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하셨지만, 공무원이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라고 형님이 권하셔서 고향으로 내려와 군청의 예산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셨다. 예산계 계장님이 가난한 신입사원을 위해 무상으로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제안했는데 그 집이 초가집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더는 그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옆집에 있는 하숙집으로 들어가 2년 가까이 살았다고 하신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라 출근하시면 하숙집 아주머니는 나를 딸처럼 등에 업고 이유식도 만들어 먹이며 보살펴 주셨다고 한다. 코흘리개였다던 하숙집 아주머니의 초등학생 아들, 아주머니의 어머니나 시어머니까지 나를 봐주지 않았을까 싶다. 하숙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나, 세 식구는 동네에서 유명했다고 하시며 아버지는 웃으신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유아 시절은 아프리카 속담에 꼭 맞는 상황이었다. 한편 아버지가 얼마나 20대 청년으로 믿음직하고 성실했으면 계장님이 방을 선뜻 내주셨을까하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상사의 마음을 샀고 어머니가 하숙집 아주머니와 잘 지내서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니 감격스럽다. 아버지는 딸을 얻는 기쁨에 힘을 얻어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면서 좋은 평판을 쌓으셨고 그래서 도움도 많이 받으셨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공무원 월급이 너무 적어서 아프신 어머니 수술비와 치료비를 마련하기 어려워서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구하셨는데, 단칸방에 당시 대학생이었던 작은 아버지와 잠시 같이 사셨다고 한다. 우리 세 식구에 작은아버지까지! 이건 다큐멘터리 <그때를 아십니까>에 나오는 스토리다. 아버지는 내가 묻지 않으면 굳이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으신다.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 돕는 60년대 70년대 어려운 시절을 보면 지금의 내가 너무 나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만 찾고 사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너를 위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 되는 곳
즉각적인 보상이 없어도 다른 이를 돕는다는 것은 얼빠진 일일까? 너나 잘하세요, 오지라퍼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나는 타인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평소보다 좀 어려워서 원하는 등급이 나오지 않는 슬픔을 안겨주었던 2023년 3월 전국 수능모의고사 21번. 밑줄의 함축적 의미를 묻는 문제였다. 이 밑줄 유형은 보통 3점 배점으로 어려운데 이번 문제는 2점 배점으로 아이들을 괴롭히진 않았다. 밑줄은 ‘미래의 그림자 the shadow of the future’라는 말에 그어져 있었다. 우리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한 행동이 모두 나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남의 등을 긁어 주지 않는데 내 등을 긁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행동은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 것이거나 나중에라도 내가 한 행동을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제였다. 다시 말해 ‘미래의 그림자’라는 말은 오늘 내가 한 이타적 행동은 미래에 나를 도울 사람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 즉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을 어렵게 말한 지문이었다.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수이고 심리학자인 로랑 베그는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 사회성이 가져오는 이점이 확실한데 고립된 사람보다 사회적인 사람이 더 건강하다고 한다. 사회 결속력이 면역력 강화 수명 연장 수술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존재는 고통을 이기게 한다고 말한다. 친구와 함께 내려오는 경사로를 15% 정도 더 낮게 평가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다. 우리가 법을 지키는 이유는 처벌보다 가족이나 이성 친구의 반응이 두려워서라고 한다. 즉 평판을 유지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회적인 사람은 도덕적으로 될 확률이 높고 도덕적인 사람은 타인의 도움으로 행복을 증진 시킬 기회가 많다는 요지였다.
나의 아버지가 예산계 계장님과 하숙집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내가 잉태되고 그렇게 중요하다는 0세~3세까지의 영아기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뿌려 놓은 좋은 씨앗,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행동들 덕이었다고 믿는다.
이기적 이타주의는 이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는 작동원리인 것 같다. 사회의 간접적 상호성의 복잡함이 싫어 홀로 지내면 또 외롭고 그래서 다시 공동체와 동호회를 찾는다. 인싸로 살것인가 아싸로 살것인가, 뜨거운 물 차가운 물 사이에서 방황하지 말고, 타인과 관계 맺고 서로 배려하면서 지낼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특히 중년과 노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동체는 종교, 사회, 문화 등에서 같은 지향점을 갖고 서로에게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이 되고 슬픔을 공유하고 같이 공부하고, 특히 밥을 나눠 먹고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가 요즘 외로우신 이유는 그러한 공동체에 속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사별하고 홀로 되신 후, 너무 같은 연배의 친구나 동창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셨지 다양한 나이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적인 활동을 못하셔서 그런 것 같다. 식물도 같은 작물끼리만 모아서 키우면 병이 생긴다고 한다. 생물의 다양성이 생태에 중요하듯,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이 더 몸과 마음에 이로운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지내신 지 16년이나 되신 아버지께 대도시 오피스텔 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사는 시골로 내려오시라고 강권하고 있다. 80을 훌쩍 넘으신 아버지는 이제 내 옆으로 이사 오려고 결심하신 듯하다. 오시라고 한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도 함께할 공동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음껏 남을 위한 것이 나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 공동체를 나는 대한 성공회 교회에서 찾았다.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있어서 든든하고 행복한데, 사는 게 의미가 없는 거 같아.” 의미가 없으면 행복이 쪼그라든다. 초가집에서 나를 낳으신 아버지가 평생 동안 많은 이를 도우며 씨를 뿌리셨으니 시골에 내려오셔서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더 많이 행복을 거두시길 기도한다. 그래야 나도 아버지 나이가 될 때까지 행복을 거둘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