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에서는 벛꽃 마라톤대회가 매년 4월에 열린다. (지금은 윤봉길 마라톤대회라 이름이 바뀌었다) 도로명이 벚꽃로인 이 도로에는 벚꽃이 줄지어 피어있고 그 꽃을 바라보며 달리는 환상적인 대회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대회부터 최소 되어 올해 4년 만에 열렸다.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참가신청을 하려 하는데, 남편이 10km에 등록을 하자는 것이다.
동네 헬스장에서 주야장천 러닝머신에서 러닝은 안 하고 워킹만 하는 나에게 좀 뛰어보라고 남편이 나를 동네 공설 운동장에 데려간 것이 2017년 가을인가 싶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입시 한 과목이었던 체력장 한다고 뛴 것이 마지막이었던 중년의 여인 머리에는 ‘뛰다’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다. 공설 운동장 트랙이 400m인데 날 더러 뛰라고 하니 나는 oh no! 뛸 수 없어 그랬다. 물러서지 않고 남편은 몇 바퀴를 돌았는지 세지 말고 그냥 천천히 뛰라 해서 처음 2바퀴 정도 돌았다. 마치 아기가 인생의 첫 발걸음을 내디디며 걷기를 시작한 것 같다. 열아홉 살에 뛰어보고 30년 만에 뛰기 시작해 조금씩 뛰기 실력이 늘어 2023년에는 5km는 ‘껌으로’ 뛰는 사람이 되었다. 말하기와 달리기와 풍경 바라보기의 3가지 멀티테스킹을 하는 펀 러닝 fun running이면 대만족이었다. 그런데 10km라니 두 배를 뛰란 소리인데 그게 가능하냐고 한 1분 정도 고민하다가 바로 해보겠다고 했다.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는 귀가 얇아지는 것이 지혜롭다. 남편에게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자고 청혼한 건 바로 나인데, 같이 살면서 이사 가자, 이민 가자, 직장을 옮기자, 직업을 바꿔보자 같은 중대한 결정이든, 무슨 나무를 심어보자, 어딘가 여행을 가보자 등의 소소한 결정이든 나는 그가 말하면 모두 ‘그럼 그래 볼까나’ 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에 엄청나게 귀가 얇다. 어쩌면 내가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용기를 내지 못할 때 할 수 있게 하는 촉매제나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번 마라톤대회에 남편이 하프 코스에 나가고 싶었지만 10km를 처음 뛰어보는 나의 페이스메이커및 사진기사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사진기사 역할은 현장에서 사진 찍고 SNS에 올리고 유튜브 업로드까지. 그런데 사진이 중요한 게 아니고, 5km에서 2배를 뛰어야 하니 코치도 되어 주었다. 코칭이란 별거 없어 보였다. 일주일에 1km씩 더 늘여가며 뛰는 것이었다. 8km를 뛸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안심이 되어 10km를 다 뛰어보지는 않았다. ‘대회발’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회에 나가면 함께 뛰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나서 평소보다 10% 이상의 기량이 더 나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코칭을 받고 보니 뭐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고 내가 신뢰하는 코치가 지도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이들 가르치면서 무슨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숙제를 성실히 하면 좋은 성적을 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대회에 나가니 기분은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이크에서 나오는 대회 진행자의 목소리와 머리에 무지개빛 가발을 쓰고 나오신 마라톤 동호회와 여성 회원들의 모습에 사기충천 되어 오르막 내리막길이 많은 10km를 무사히 달렸다. 함께 달리는 남편과 길가에 선 대회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에 힘을 입어 절대로 걷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오르막길에서는 걸어야 한다는 ‘고정마인드셋’을 넘어 힘을 다해 뛰었다. 1시간 가까이 뛰다 보니 출발했던 공설 운동장에 보였다. 결승선에 돌아올 때 나의 가슴은 안도와 기쁨과 성취감과 행복과 감사로 가득했다. 5km밖에 뛸 수 없다는 벽을 깨부수었다! ‘성장마인드셋’이 이런 거구나!
달리기와 공부는 쌍둥이
영어 과외를 하다보면 EBS 교재 수능특강시리즈 공부를 무조건 한다. 전국의 모든 과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이 책으로 수능준비와 내신시험 준비를 한다. 이 많은 문제를 풀면서 나는 마음에 퍽 꽂히는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거나 인생의 교훈을 주워 담기도 한다. 올해 수능특강 영어 4장의 1번 문제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이긴 하지만 나의 10km 달리기 완주와 더불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 문제이다. 저자는 연간 1인당 소득이 13,000불 이상이면 소득의 증가는 행복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스털린의 역설’을 생각나게 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소득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경제학의 신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1946년부터 1970년에 걸쳐, 공산권, 아랍, 가난한 국가 등을 모두 포함한 전 세계 30여 개의 지역에서 정기적인 설문 조사를 시행하여 일정수준 소득 이상에서는 돈이 반드시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럼 무엇이 행복을 줄 것인가. 이 문제의 저자는개인의 자유, 의미 있는 일, 사회적 관용이라는 3가지 요소를 말해주었다.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에 ‘나의 성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기에, 성장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돌리고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체험했다. 순간 내 학생들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은 자유가 없다. 일단 학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과외 수업을 하느라 자유시간이 거의 없다. 이제 막 고1이 된 학생들은 이 자유시간의 소멸에 괴로워한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이 풍부한 사회도 아니다.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는 학생들, 대학을 가지 않는 진로를 택한 학생들을 패자이고, 명문대학에 간 학생들이 승자가 되는 서열의식이 강하다. 자유도 관용도 부족한 이 사회에서 아이들이 살아남을 길이란 ‘의미’를 부여잡는 길 밖에는 없다. 내가 하는 이 빡빡하고 정떨어지는 공부를 참아내자면 나의 꿈과 나의 성장이라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멘토이고 선생님이다.
공부를 싫어하고, 26살에 키크고 잘생긴 남자와 결혼해서 28살에 아들을 낳는 것이 꿈이라는 한 학생이 며칠 전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의 고통을 시험을 잘 보는 멋진 나를 만드는 의미로 전환한 것 같다. 그런데 달리면서 통증과 고통을 구별해야 한다고 마라톤 하는 남편이 그런다. 통증은 질병으로 이어지므로 통증을 느끼면 달리기를 멈추어야 하지만, 고통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고. 입시 공부는 통증이 되어 우울증이나 불안 같은 마음의 병이 되면 안 되지만, 한 사람으로서 성장을 이끄는 ‘고통’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루 중 재미있는 것들과 잠시 이별하고, ‘공부를 미친 듯이 볼까나’하는 마음을 주는 선생님이, 코치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귀를 얇게 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내 소원이다. 그놈의 입시공부든 마라톤이든 혼자서는 못하고 함께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