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바를 사랑한다. 빠리바게트 빵집 말고 ‘빠른 독해 바른 독해’. 중3부이나 고1부터 사용할 수 있는 시리즈 교재의 이름이다. 이 책 제목은 언어의 완전함을 향한 숭고한 비전을 보여준다. 이렇게 책 이름으로도 완벽하다. 완벽함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완전함이나 완벽함이라는 단어는 요즘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완벽주의자는 까칠하고 중요하지 않은 세세한 것에 매달리고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결벽증 환자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찾아온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 식사와 술 한잔을 하다 보면 엄청난 설거짓거리와 쓰레기가 생기는데, 시간이 늦어도 다 치우고 자야 잠이 오는 날 보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다. 설거지와 뒷정리가 마무리되어야 그날의 만남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고 그래야 나는 마음이 편하다. 완전하게 저녁 식사가 끝난 것이다.
나에게 완전함은 좋은 것이다. 나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완전하다는 것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하는 것과 더불어, 상반된 두 가지의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보기, 공감해주면서 훈육을 하기, 바르게 하면서도 빠르게 하기등등.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보면 나는 ESTJ가 나오는데, 어떤 표에 보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16가지 유형 중에 가장 성격이 나쁜 유형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추진하고 관리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효율성이 높지 않다고 사람을 비난하며 솔직하다는 미명하에 상처를 주는 유형이다.
이런 나를 구제하는 방법은 각 요소에 있는 반대 성향을 개발해서 둘을 다 가지고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너무 사고형이라면 감정을 의식적으로 고려하고 판단하기 전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성격검사의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60:40 정도의 비율로 성향이 구별된다면 좀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검사는 내가 어떤 성향이라는 것을 밝히는데서 나아가 내가 어떤 성향이 부족하니 그것을 채우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외향적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 한 마디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가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영어 독해 ‘빠바’도 비슷한 이치다. 내가 이 책을 저자였다면 바른독해 빠른 독해 즉 ‘바빠’로 지었을 것 같다. 바르게 할 줄 알야아 빠르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유창성과 정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단어와 문법 같은 정확성이 확보되어야 유창성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최승필 저자의 <공부머리 독서법>에서도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많은 양의 독서보다는 2주에 한 권 정도를 추천하고 있다. 여러 번 정독해서 읽고 이야기를 구성해보고 토론하고 나아가 필사까지 하라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어느새 속도가 붙고 글의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능력이 생긴다고 하는데 영어 독해도 똑같다. 다만 영어는 국어와 달리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혀야 하는 난관이 있지만, 오히려 이 난관이 독서를 느리게 만들고 정독을 유도한다. 빠르게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니까 바른 독서가 저절로 된다. 이 느린 독서는 마치 단군신화에서 호랑이와 곰이 동굴에서 100일을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걸 참지 못하고 대충 빨리 읽으면 중학교까지는 문제를 맞힐 수 있으나 고등과정이나 수능영어 정도 되면 매력적인 오답으로 늘 빠져 버린다.
완전독해라는 해법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읽은 <주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 에 나오는 4세기 그리스도교 저술가 니사의 그리고리우스 말에서 용기를 얻었다. 그는 완전으로 향하여 계속 변화하는 과정을 완전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계승자들은 인간이 완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그는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도덕적 영적 변화에 주목했다. 우리가 성장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는 우리의 사랑은 완전하지 못해 완전에 도달 할 수 없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완전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음을 즐거워해야한다고 말했다. “완전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 이것이 참된 완전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처럼 우리도 영어공부를 해보자. 우리 말도 아니고 외국어를 바르게 빠르게 읽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절망하지 말고 속독과 정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꾸준히 달리면 된다. 수능 1등급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지만 고등 교육을 받은 원어민의 수준으로 말하거나 쓰지는 못해도, 읽거나 듣는 것은 가능하도록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목표를 위해 달리기를 하도록 인도하는 방법으로 <스터디 코드>를 쓴 조남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완전 독해’라는 개념을 학생들에게 실천해 보게 하고 있다. 완전 독해란 문제집에 나오는 지문을 완전히 분석하고 파헤치는 방법이다. 매우 느린 작업이다. 하루에 지문 1~2개 정도면 충분하다. 지문의 문장에 번호를 붙이고 한 문장씩 문법적 구조 분석을 하고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 단어는 파생어까지 다 외우고 문법적인 특이점을 메모하며 해석을 붙이는 방식이다. 분석하는 문제는 보통 틀린 문제이므로 왜 이 문제를 틀렸는지 선택지의 문장까지 해석해 보고 이유를 찾아보면 끝이다. 베껴쓰기 해석하기 분석하기의 3단계를 거친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 노트 두툼한 것으로 2~3권 쓰다보면 완성될 일이다.
나도 동시통역대학원 준비반 학원에서 비슷한 작업을 해 보았다. 신문기사를 잘라서 공책 왼편에 붙이고 오른 편에는 길고 어려운 문장을 ‘완전 독해’하고 한 두줄로 요약문도 적어보는 형식이었는데, 이렇게 1년 정도 공부하고 나니, 영어 신문이 읽어지고 AFKN 뉴스가 들리고 뉴스위크가 이해되는 신기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영어의 단계를 높이려면 지겨운 완전독해를 해야한다. 곰이 100일 동안 마늘 먹고 동굴에 있으면 웅녀로 탄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단계를 거치면 나는 영어 텍스트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사전 없이 전공서, 성경, 소설, 에세이, 인터넷기사, chatGPT의 설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그토록 지겹고 힘들게 또 사교육비로 많은 비용을 치르며 수험 영어를 배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보상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읽기에 자유를 얻었다면 그 다음엔 쓰기나 말하기에 도전할 수 있다. 원어민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이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는 것이 완전함이라는 교훈을 즐겁게 따르는 일이다. 파파고라는 번역기가 하도 훌륭해서 내가 쓴 글을 영작해 보고 번역기가 한 번역을 비교해 보면서 공부를 할 수 도 있다. chatGPT에게 내가 작문한 문장을 비슷한 문장으로 바꾸기 paraphrase를 시키면서 공부하는 방법도 재미있다. 영어 공부의 방법은 끝이 없고 스마트해지고 있는데, 이 공부를 방해하는 각종 방해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어서 이것들을 단속도 해야한다. 한편 완전독해 공부법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면 영어는 나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 된다. 돈의 최악의 형태는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된 것이고, 최선의 형태는 인간이 돈의 주인이 된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영어 점수가 폭군으로 군림하는 중고등학교 6년간의 영어 입시 공부기간을 잘 지내면, 어느새 영어가 나를 위해 일하는 시기가 온다. 완전독해는 그 변화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