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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Aug 14. 2023

 떠나가는 학생

마음 아프지만 반성할 기회

민지 : (카톡 메시지) 제가 유나한테 선생님이 전달하라는 프린트 전달하지 못했어요.

나 : 뭐라고? 내일 모래가 시험인데 전해주지 못하면 어떡해?
 민지 : 주려고 유나 반에 갔었는데 걔가 자리에 없었어요.

나 : 그럼 유나에게 미안하니까 초콜릿 하나 사 올래?

민지 : (43원 남은 본인 계좌 사진을 캡쳐해서 카톡으로 보낸다.)     


평화를 부르는 네 글자 : 내 탓이오.

중간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문제를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시험 기간에는 우리 집 프린터기가 고생이 많다. 하루에 수백 장씩 출력을 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런데 간혹 정신이 없어서 수업의 프린트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수업을 시작할 때가 있다. 학생이 혼자서 수업할 때는 그 자리에서 출력하면 되지만, 학생이 서너 명 정도 되면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민지와 세 친구가 수업하던 날 나는 문제를 출력하는 걸 깜빡했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민지 고모가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 사무실에 프린트물을 가져다 놓았다. 민지는 자기 것을 챙기고, 우리 동네에서 좀 떨어져 승용차로 10분 이상 가야 하는 동네에 사는 유나를 학교에서 만나서 출력한 문제를 전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험 전날 수업을 시작하기 전 몇 시간 전에 카톡방에 수업시간을 공지했더니, 민지는 유나에게 프린트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그제 서야 이야기를 했다.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답을 맞히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문제를 못 받은 유나만 문제를 풀지 못하고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스로 친구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해놓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민지에게 화가 났다. 그래도 화를 참으며 그럼 친구에게 초콜릿 하나만 사다주라고 했더니 카톡으로 자기 통장에 43원이 있다고 통장을 캡쳐해서 보내왔다. 어이가 없었다. 여전히 화가 났지만 카톡 메시지로 그럼 어머니께 민지 통장에 돈을 넣어주라고 부탁할까라고 했더니, 민지는 유나가 자기 자리에 없었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그럼 민지 너는 잘못한 게 없다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열이 나서 수업에 올 수 없다고 했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오지 않아서 민지에게 전화했더니 받지 않았다. 수업에 온 친구 전화로 전화를 했더니 받았다. ‘어디서 거짓말이야! 당장 오지 못해!’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곧이어 어머니께서 카톡을 보내오셨다. 아이가 너무 억울해서 우느라 수업에 갈 수 없다. 왜 민지만 잘못했다고 하느냐, 자기 걸 챙기지 못한 유나도 잘못이 있지 않으냐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 바로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미리미리 프린트물을 준비하지 못한 내 불찰이고 민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예상대로 민지는 시험을 잘 못 봤고, 민지 어머니는 아이를 그만 보내겠다고 얼마 후 전화를 주셨다.      


그렇게 민지는 나를 떠나갔다. 학생이 그만두면 마음이 아프다. 의사 선생님들이 쓴 에세이를 보면 환자의 죽음은 늘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 마음 아픔이 무디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학생이 나에 대한 불만으로 떠나게 되면 늘 마음이 아프다. 내가 가르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학생이라 해도 수업을 그만두겠다는 어머님의 전화가 오면 며칠 동안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자책을 하게 된다. 내가 좀 더 참고 아이에게 이성적으로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숙제를 안 해 왔을 때 정색을 하고 질책을 하면 항상 울어버렸던 민지는 언성을 높인 나의 태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집안이 떠나가라 울었을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본 어머니는 아주 속상하셨을 게 분명하다. 내 입장을 설명하기 보다는 ‘내 탓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큰소리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태도는 선생님으로서 매우 나쁜 태도이다. 내 아이와 싸울 때 전화를 내 쪽에서 먼저 끊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런 행동을 학생에게 한 것을 분명 잘못이다.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항상 옳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정말 틀렸고 당신이 모두 옳다가 아니라, 내가 당신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지라도 어머니들과의 관계를 우선순위에 둔다. 논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논쟁에서 이기면 무엇하랴. 관계를 잃으면 나는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나의 잘못을 인정했을 때 어머니들이 내가 그분들의 자녀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는 ‘제가 잘못했군요’라고 말할 수 있다.  

   

친구이면서 선생님이면서

학생이 떠나면 우울하다. 우울하다고 나를 무능하게 여기거나 자존심이 상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떤 아버지가 잡초를 뽑으라고 두 아들에게 시켰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아들은 잡초를 뽑기만 하면서 잡초가 계속 난다고 불평을 했다. 다른 아들은 잡초를 뽑고 거기에 곡식을 심어서 수확했다는 이야기다. 마음에 난 불만과 우울의 잡초를 뽑기만 하지 말고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 민지가 나가는 일로 인해 나는 중학생 문장암기 숙제를 좀 더 잘 내주기 위해 궁리를 했다. 막연하게 내가 정리한 문장을 외우게 하지 말고 문법책에서 주요 문장을 아이들에게 선택하게 해서 단어시험과 같이 수업마다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 영작 실력이 곧 내신 성적의 변별력이기 때문에 문장암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재미없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면 문법적으로 적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문법 배운 즉시 스스로 뽑은 문장들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방식의 문장암기를 시도하면서 민지가 떠나서 쓰라린 마음을 추슬렀다.     


과외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언어적 지식을 전달한다. 여러 지문을 해석하고 분석하면서 한편 나는 많이 배운다. 중고등학생들의 독해 교재를 보면서 아름다운 문장도 만나고 인문학적인 단편적인 지식을 배우면서 더 많은 독서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책에서 읽은 내용이 지문에 나와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을 때 희열을 느낀다. 아이들과의 교감에서 청소년들의 욕구와 좌절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을 이해할 때 기쁘다. 얼만 전 읽은 <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다>라는 책 제목은 나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이었다. 민지를 통해 논쟁에서 선생님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배웠다. 학생이 선생에게 배우듯 선생도 학생을 통해 배운다. 과외 선생을 하다 보면 학생이나 어머니들과 감정적인 갈등이 생기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그것은 가족과 친구 간의 문제 해결 방법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내가 옳다를 주장하기보다는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인간관계의 지혜나 자신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곳은 비단 학교와 학원이 아닌 세상 모든 곳이 아닌가 싶다.


<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다>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명나라 때 이야기라고 하며 소개한 문장이 있다. “친구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나를 떠나는 학생이 있다면 내가 그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탓이다. 우정을 나누듯 학생과 서로 마음이 잘 통해야 지겨운 공부를 헤쳐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 또 삶이나 책에서 얻은 배움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      


탁월한 선생님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공부가 절실하다는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고 느낀다. 공부가 절실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과외를 그만둔다. 그 절실함은 수년간의 우정으로 만들어짐을 그 동안 많이 경험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을 떠올랐다. 친구같이 다정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일은 참 어렵다. 그래도 교사나 양육자가 추구해야 할 가장 멋진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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