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범 : 선생님. 꿀잡이새에게 사람이 꿀을 안 주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는 건 미신이에요.
나 : 새가 꿀을 찾는 걸 도와줬으면 그 사람은 새에게 은혜를 갚아야지.
기범 : 새는 꿀맛이랑 설탕물 맛을 구별하지 못하니까 설탕물을 주면 되죠. 설탕물이 꿀보다 싸니까 돈을 더 벌 수 있죠. 하하.
중학교 1학년 기범이는 정말 돈을 좋아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 집안의 아이인데도 말이다. 대학원이 뭔지 잘 몰라서 석사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곳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더니, 바로 나오는 질문이 ‘대학원 나오면 돈 많이 벌어요?’였다. 스티브 잡스의 자기만의 스타일에 대한 영어 지문을 읽을 때도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 그 자식들은 유산을 얼마나 받았느냐를 가장 궁금해 했다.
엊그제 같이 읽은 지문은 아프리카에서 꿀잡이새와 인간의 공생관계를 설명한 글이었다. 꿀잡이새가 꿀을 먹고 싶으면 한 사람에게 다가와 지저귄다. 그 사람은 새를 따라가 벌집이 있는 나무에 도착하고 나무 밑에 불을 피운다. 연기에 벌이 다 날아가면 그 사람은 꿀을 얻고 도와준 새에게 꿀을 조금 나눠준다. 아프리카인들은 꿀을 새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는 말로 지문은 끝이 났다. 이 지문에 대한 기범이의 생각은 꿀 대신 설탕물을 주어서 인간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무슨 대기업 사장님 같았다. 중학교 1학년이니 만으로 열두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사람이건 동물이건 돈을 많이 벌게 해 주면 그만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니 참 놀라웠다.
기범이 너는 부자가 될 거 같다고 말해주니까 당연하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부자가 되었는데, 혹시 너의 형이 형편이 어려우면 도와줄 거냐고 물었더니, 돈이 없으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야지 왜 동생에게 돈을 꾸냐면서 절대 돈을 빌려주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합리적인 생각인 거 같기는 하다. 형제 자매지간에 돈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가족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어쩌면 기범이 생각이 맞는 거 같기는 하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이리도 불편한 걸까.
기범이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학교 관악부에 올해 3월에 들어갔다. 트롬본이라는 악기를 택해서 9월에 열리는 대회를 앞두고 방학을 이용해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과외나 학원 수업을 듣고 나서 오후에 학교로 향한다. 어머니는 아마도 아이가 게임에 과몰입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학교에 머물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문제는 아이가 악기 연주를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도 못 가고 학교에 남아있으니 불만이 많고 머릿속에는 게임 생각만 가득하다고 했다. 보통 악기를 배우는 것이 정서적으로 학습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마지못해서 할 때는 구성원들과 같이 화음을 만들어가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고역스러운 시간이 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돈을 벌려고 안달하지 말고 돈이 따라오게 하라고 나는 말한다. 돈을 따라오게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고 실력 있는 사람은 여기저기서 와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해준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이들에게 갑질을 당해도 괜찮은 사회는 정말 잘못된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 갑질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기범이는 새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무거나 먹여도 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뿐, 돌봐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 반생명적 문명이 기업가 정신이 되어 나이가 46억 년이나 된 지구를 파멸로 이끌고 있으니 양육자 교육자들의 책임은 그런 반생명적 인식을 바꿔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집 근처에 고양이 카페가 생겼다. 고양이들 15마리 정도를 두 평쯤 되는 공간에 집어넣고 그 옆에 카페를 만들어서 차를 팔고 있다. 카페에 온 손님들은 고양이를 자기 자리에 데려다가 만지고 논다. 밤이 되면 카페 문이 닫히고 이 고양이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이 작은 공간에서 지낸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만지고 놀 수 있어서 좋아하지만 나는 과연 이게 고양이에게 맞는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동물 친화 능력이 없어서 그리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동물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에는 다 반대한다. 태국에서 관광객을 태우느라 척추가 휜 코끼리, 강아지 공장에서 일 년에 세 차례씩 강제 임신을 당하는 엄마 개, 공장식 축사에서 인간을 위해 비대해 지고 있는 소 돼지 닭들. 나는 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
한편 사람들의 이율 배반을 본다. 자기 집 ‘안’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은 자식처럼 키우고 또 죽으면 주인이 펫로스 증후군까지 걸리지만, 이 동물이 집 ‘밖’에 있으면 상품이고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다. 꿀잡이새에게 설탕물을 주는 것 새가 상품화되었다는 증거다. 이런 모순을 아이들이 알게 하고,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글로벌 언어라 배워야하는 영어보다 중요하고, 함수, 미적분, 열역학 제2법칙 뭐 이런 것들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 모든 재앙은 게임 인터넷 스마트폰 과몰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도대체 아이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작은 기계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이 방학에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라도 가면 좋겠다. 내가 사는 예산에서 1시간만 가면 태안반도 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다. 부서지는 파도와 작열하는 태양 흰 구름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좀 느껴보게 데려가 주셨으면 한다. 나는 열심히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준다. 돈보다 중요한 건 친구와의 우정, 형제 자매간의 우애, 동물·식물이 살아 있는 자연이라고. 그런 착한 사람이면서 공부까지 잘해서 실력 있는 사람이 되면 돈은 그냥 따라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지난주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바다마을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다른 여자와 결혼해 낳은 딸아이를 본처의 자매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기들 집으로 데려온다. 엄마를 잃은 그 아이를 막내동생으로 여기며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원수로 지내도 괜찮은 아이를 동생으로 받아주는 용기는 아마도 자매들이 ‘바다를 보고 자라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다는 넓고 넓다. 일렁이는 그 파도의 깊이는 알 수가 없이 깊다. 이런 넓고 깊은 자연 속에서 자라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같이 작은 것을 보고 자란 사람보다 넓은 품을 지닐 수 있을 것 같다.
바다가 아니라 작은 벌들도 우리에게 넓음 마음을 가르쳐준다. 올봄에 마당 한구석에 심은 작은 배롱나무에 진홍색 꽃이 피었다. 꽃이 만개하니 노란 꽃술이 보이고 벌들이 수없이 날아와 그 노란 꽃술들 사이를 열심히 오가면 꿀을 모으고 있다. 이 벌들도 인간들 때문에 수난을 겪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작은 미물도 열심히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일하고 있고 우리에게 열매를 준다. 꿀잡이새에게 꿀을 주듯 우리에게 열매를 주는 벌들에게도 우리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방학 때라도 바다를 보고 꽃을 보고 벌과 나비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할머니처럼 나는 한소리를 또 하고 또 한다. 돈보다 생명이 더 중요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