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 정말 필요합니다
사교육이 없으면 좋겠지만
나 : 어머니 지금 아드님이 하는 과외 과목이 너무 많은 거 같은데요.
어머니 : 그래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 : 어느 정도가 남들 하는 만큼일까요?
어머니 : 뭐 스카이는 바라지 않아요. 인서울 정도면 만족할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생각하시는 인서울을 목표는 남들 하는 정도나 뒤처지지 않는 정도의 목표가 아니라 참으로 높은 목표다. 중학생이 한 반에 30명이라면 이 시골에서는 반에서 1등 2등 정도 학생만 인서울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부모님의 자녀는 상위권 학생 즉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이다. 10등이 1등 2등 되는 것은 공부 기술을 가르쳐주는 수많은 책에서 보는 것처럼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는 의대나 서울의 명문대가 목표이겠지만, 고3이 되어 성적이 다 나왔을 때 3듭급 중반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상위 30% 이내의 상위권 학생들이고 지방 국공립대학이나 경기권 대학을 지원하게 된다. 남들 하는 만큼 정도 해서는 도저히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해서 전교권에서 놀아야 서울 주요 대학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다. 그것도 농어촌특례라는 서울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 비장의 무기를 동원해서야 가능하다. 중학교 부모님들이 인서울이라 말할 때는 서울에 주소를 두고 있는 40개 대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 15개 정도 주요한 대학을 말하는 것이니 자신의 목표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얼마나 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시는 분이 많아 상담하다 보면 답답하다.
이번 주 목요일이 수능시험 날이다.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이번 연도에 수능을 치는 학생은 재수생 한 명 포함 7명이다. 아이들에게 수능 선물을 보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콜릿이나 찹쌀떡을 줬는데 요즘은 치킨 한 마리와 콜라 기프티콘을 보낸다.
치킨을 받은 이 학생들의 소망은 스카이는 아니어도 인서울이다. 어머니들은 중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5~6년의 세월 동안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이렇게 3~4과목의 사교육을 시키셨다. 동시에 4과목 수업을 모두 받기도 하고 고2 고3이 되면 이과 학생의 경우 영어나 국어는 빠지기도 한다. 이 시골 바닥에서도 이렇게 4과목 세트로 과외를 하는데, 서울은 오죽할까 싶다. 아이들은 사교육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지쳐서 익사 직전까지 가기도 하고, 아예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아이의 상태와 상관없이 사교육에 투자하고 그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언론에서 발표하는 사교육비 통계는 전혀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들까지 포함해서 실제 체감되는 현실보다 적은 액수로 보인다. 나에게 영어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3과목에서 5과목 정도의 과외를 받고 유료 인터넷 강의도 듣는다. 한 아이당 백만 원 이상 지출될 거라고 상상이 된다. 게다가 재수를 하는 경우 군 단위 시골 학생의 경우 기숙학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비용은 10개월에 3천~4천만 원 정도 된다. 대학 4년 등록금 정도 된다.
비싼 사교육이 아니면 공부를 못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1년에 연회비만 내면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도 있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을 때, 내신 등급 1등급 받거나 서울 주요 대학에 가면 교육비를 환불해 주는 제도도 있다. 굳이 학원이나 개인과외로 교육비를 많이 쓰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 강의든 대면 수업인 과외와 학원 없이 오직 공교육으로는 도저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중학교 교과과정은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고등학교 과정은 수능을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중학교 선생님은 고등학교 과정을 책임지지 않고 고등학교 선생님은 수능 준비를 책임지지 않는다. 그게 대한민국 공교육의 현실이다.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모든 학습 내용을 100% 잘 이해하고 모든 시험에서 1등급을 받는다 해도 명문대에는 갈 수 없다. 특목고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에서 내신 1등급 학생들도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2~3등급을 받는 일이 흔하다. 지방 고등학교의 경우는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의 차이가 벌어진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엄청난 간극, 그리고 고등교육과정과 수능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부모님과 학생의 몫이지 학교의 책임이 아니다.
이번 9월 전국 연합 모의고사에서 수학에 킬러 문제를 없애서 만점자가 2500명이 넘었다고 보도되었지만, 킬러 문제를 없애도 상위 4% 1등급이 아닌 학생들에게는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수학이 좀 쉬운가 했더니 영어는 어려워져서 상대평가를 하나 절대평가를 하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1등급이 4%대에 머물렀다. 소위 아주 고난도 문제인 킬러 문제를 없애긴 했지만, 그보다는 조금 쉽지만 그래도 어려운 준킬러 문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영어의 경우 지문은 평이하지만, 선택지에서 답을 찾기 어렵도록 환언이나 비유적 표현을 배치해서 그러하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의 간극과 고등학교와 수능의 간극을 매우는 게 사교육의 역할이다. 교과서만 살펴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언뜻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3 교과서와 고1 교과서의 간극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 시험 범위에서 교과서가 차지하는 부분은 50% 정도 되고 나머지는 중간 기말고사 직전에 치른 전국모의고사의 지문이 50%나 된다. 이 50%에 해당하는 모의고사 문제 시험 범위는 보통 듣기 평가를 제외한 18번부터 40번 문제의 지문을 분석하고 암기해야 한다. 달랑 2개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교과서 시험 범위에 비교하면 공부하는 양의 서너 배는 된다.
교과서보다 더 어려운 지문을 20개 정도 이해하고 암기해야 하는데, 이 모의고사 문제에 대한 해설을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인터넷 강의든 학원 과외 등에서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시험 범위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실제로 문법과 어휘 면에서는 시험 범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걸 다 안다는 전제하에 문제를 낸다.
그리고 주관식 문제의 꽃이자 변별력의 최종심판관인 영작 문제는 그 많은 시험 범위에 있는 수백 개의 문장 중 선생님 마음에 든 문장이 아무런 맥락 없이 등장한다. 그냥 밑줄 친 문장을 닥치고 영작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교과서만 단순히 달달 외우고 문제집 한 권 풀면 그래도 90점 이상 받아서 칭찬받던 중학교 시절과 살벌하게 다른 현실이 다가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의 학습량과 수준의 차이는 큰 강과 같다. 험악하고 세찬 강을 건너게 해주는 게 사교육 선생의 할 일이다. 사교육이든 자기 주도 학습이든 이 강을 못 건너면 인서울은 물 건너간 일이다.
마찬가지로 일반 고등학교에서 교과서만 공부해서는 수능대비가 전혀 되지 못한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과거 3년간 기출문제는 수험생의 바이블 같은 것인데 학교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EBS 수능 연계교재도 학교에서 내신 시험용으로 매우 일부만 학교에서 배운다. 다루어야 할 교재의 1/3도 못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내신 시험공부 말고 수능시험 공부 역시 사교육이 필요하다. 내신 시험 준비든 수능대비든 학교에서 다 하지 못하니까 사교육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2028년 수능부터 내신 9등급 제도가 5등급 제도로 바뀐다고 하니 내신보다 수능의 비중이 더 커지고 특목고나 자사고 인기가 더 많아질 것이다. 5등급 제도에서 10%까지는 1등급이라고 하니 2등급 학생들은 좀 유리해지겠지만, 2등급이 30%대까지 늘어나면, 2등급이 아니라 10% 내 1등급을 받으려고 더 아이들의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다.
올해 수능 응시생의 재학생 비율과 재수생 비율이 2:1 정도 된다. 재학생이 32.6만 명에 재수생이 거의 16만 명이다. 28년 만에 가장 많은 재수생 비율이라고 한다. 인구 감소로 재학생의 수가 감소하고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가겠다고 재수생은 늘어간다. 입시제도가 바뀌는 중2 아이들부터 특목고 간다고 하고, 킬러 문제는 없어지고 의대 정원이 늘어나니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재수를 하겠다고 하고, 정시가 확대되는 추세이니 사교육은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불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대학 입시제도를 백번 바꾼다고 해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능제도만 바꾸는 것은 음식이 다 상했는데 어떻게 상한 음식 냄새를 가릴까 연구하는 것과 같다. 대학입시제도를 바꿔서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것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국어 수학 영어의 선행학습을 도와주어야 한다. 중3 때 고1과정을 완전히 할 수 있어야 고1 때 연착륙을 할 수 있다. 1년 정도의 선행학습은 필수가 되었다. 수학의 신이라는 현우진 선생님도 1년 이상 선행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다 까먹기 때문에. 영어의 경우 문법이나 어휘가 풍부해 지면 재미있는 독해책이나 소설책을 읽기를 권한다. 배운 것을 본문에서 적용하면 좋다. 그리고 긴 글을 읽지 못하면 수능의 긴 지문을 시간 내에 읽지 못한다. 중학교 때 <Dear Mr. Henshaw> <Frindle>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The Holes>처럼 번역서를 쉽게 구하는 책을 읽으면 빠르게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고등학교의 교과서는 껌으로 여기고 공부할 수 있어야 수능을 어찌해볼 수 있다. 수능 없이 대학을 가던 호시절이 있었다. 정시가 20% 수시 80%로 수시가 아주 많았던 2010년대 후반에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은 자기 실력보다 더 수준이 높은 대학을 갔었다. 사실 정시확대는 지방 학생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내신이 5등급 제도로 바뀌고 정시가 늘어나고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더 열심히 독이 아닌 약으로서 선행학습으로 노를 저어가야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
사교육이 약인지 독인지 알려면 자녀의 시험점수만 보면 안 된다. 사교육 선생님에게 진단을 받고 ‘적절한 양의 공부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교육방법과 교재로 하는 약’을 먹여야 한다. 약 안 먹이고 아이를 키울 수 없을까? 있기는 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과정이 통합되고 수능이 미국의 SAT처럼 여러 번 응시할 수 있고 너무 어렵지 않으면 된다. 정량적 평가 외에 입학 사정관이 판단하는 정성적 평가 방법을 믿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된다. 전교 등수를 매기는 방법을 없애고, 공교육 교사가 교재를 선택하고 평가하는 자율권을 가지고 평가를 했을 때 그것을 부모와 학생이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위가 있으면 된다.
그런 사회가 올 것 같지 않아 나는 오늘도 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잘 달래가며 사교육이라는 약을 먹인다. 너무 약을 많이 먹이면 독이 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