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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un 18. 2022

도대체 영어를 왜 배워?

영어는 나의 가치를 올려주니까

나 : (단어 시험 채점을 마치고) 얘들아 단어 외우기 힘들지? 한두 개 틀렸지만 정말 잘했어.

시현 : 쌤! 그래도 왕관 그려주세요.

나 : (백 점 맞은 시험지에 그리는 왕관을 그려주면서) 그런데 왜 영어를 배우냐 너희들은?

서진 : 영어를 잘하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외국 여행 가서 불편하지 않아요.

나 : 친구 사귀는 거랑 여행을 위해서... 그게 다야?
 예빈 : 영어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요.

시현 : 영어 잘하면 간지 나요.

나 : 그래 간지 나지!  또 이유가 뭘까? 수능 끝나면 영어 필요 없어?

아이들 : .......     


영어를 왜 배워?

  나는 아이들에게 왜 영어를 배우느냐고 자주 묻는다. 신기하게도 외국 여행 가서 의사소통하기 위한 거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열이면 아홉은 된다. 아마도 영어는 외국어이고 외국어는 외국에서 사용해야 제맛이라 그런가 보다. 도대체 영어를 왜 배우냐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이 세상의 대부분 정보가 영어로 되어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으려면 논문이나 전공 서적을 읽어야 하는데 그게 다 영어로 되어있고, 이공계 자연계 대학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들이 꿈꾸는 교환학생을 가거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도 영어가 필요하다. 또 메뉴얼을 읽거나 구글링을 위해서도 영어가 필요하다. 파파고 같은 앱을 이용해서 번역을 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문서일수록 앱으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나는 이제 갓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과 용감하게 영어 원서 읽기를 시도했다. <Who Was> 라는 위인전 시리즈에서 스티브 잡스 편을 골라 읽는데, 아이들은 잡스가 성공하는 대목에서 그가 얼마나 돈을 벌었냐고 묻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하는 말은 그의 네 명의 자녀가 유산을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자기처럼 불쌍한 학생에게 그 많은 돈을 좀 나눠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잡스는 돈이 많으니까 나눠줘도 되지 않냐고 한다. 그의 아내 로렌 포웰 잡스는 2020년 현재 250억 달러를 소유한 세계 최고의 부자인데, 기부 서약(Giving Pledge)을 통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자녀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다 기부할 거면 아이들은 자기한테 10억만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 : 10억으로 뭐 하려고?

시현 : 집 사려고요.

나 : 너가 어른이 돼서 돈 벌어도 집을 못 살 것 같아?

서진 : 저는 좋은 대학에 갈 만큼 공부를 잘할 거 같지 않아요.

나 : 얘들아 너희들은 정말 열심히 잘하고 있어. 너희들은 정말 드림팀이야!! 좋은 대학 못 간다고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 있지 마. 그냥 편히 놀아.   

   

돈을 따라오게 해야지!     

  지방. OO시도 아니고 예산‘군’ 에 사는 아이들은 실제로 성실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나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나는 덧붙여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돈을 벌려고 일한 사람이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려는 열정만 있었던 사람이라고. 그래서 돈이 잡스 아저씨를 아 온 거라고. 우리가 배우는 책에는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사에서 말한 그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 이 문장이 없어서, 이 문장을 아이들과 음미해 본다. 그런 다음 너희들이 영어를 잘하면 더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고, 너희들의 가치가 올라가면 세상에 너희가 필요할 것이고, 그러면 돈은 그냥 따라오는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그리고 나도 영어를 잘해서 평생 즐거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내 경험까지 말해준다. 아이들이 뭔가 감동한 얼굴을 하면 그러니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이들 귀에는 영어 선생님은 기승전‘영어’라고 들릴지도 모른다. 10년 전 쯤 시골의사 박경철 작가가 쓴   <부자 경제학>에서 얻은 결론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온갖 재테크 세테크 주식투자 부동산투자 등등 다 중요하겠지만, 21세기에 지식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영어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거나 멋지게 글을 쓰지는 못해도 영어를 읽는 능력만큼은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은 수능시험을  제대로 준비하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수능을 도와주는 영어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돈을 따라오게 하는 기본 가치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자발적 교재선택의 효과     

시현, 예빈, 서진, 이 세 친구들은 정말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차곡차곡 배웠다. 그래서 구문 분석 능력이나 의미 유추 능력이 뛰어나고 내용정리도 공책에 깔끔하게 적어 온다. 숙제로 내준 내용 정리본을 돌아가면서 저희들 끼리 순번을 정하고 한 사람씩 내용 정리본을 읽으면서 서로 잘못된 곳을 고쳐준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나 흡족하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도 아이들이 스티브 잡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신들이 공부할 책을 정해서 이런 자발성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공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수준이나 흥미와 상관없이 교과서를 정해서 쓴다. 충남 예산에 온 지 10년 동안 목격한 것은 한 번 교과서가 정해지면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판사가 개정판을 내지만 출판사를 바꾸지는 않는다. 교사도 교재를 선택할 권리가 없고, 아이들 수준을 나눠서 가르쳐도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같은 시험을 본다. 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삽화나 구성의 미적인 감각도 세련 돼지고 다양한 교과 활동을 하게 되어있지만, 학교에서는 80년대 내가 배웠던 것 비슷하게 가르친다.징그러운 문법과 단어암기. 교과서에 나오는 그 많은 활동은 거의 안하고, 본문 암기와 문제풀이를 통한 내신 시험 준비. 다만 교실에서 컴퓨터나 TV 화면 등 여러 전자 장비를 사용한다는 점만 다르다.     


  사교육을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사교육의 장점 중 하나는 공교육에서 교과서로 충족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이라 관계대명사도, 가정법도 전혀 모르고, 분사, 수동태, 현재 완료시제 개념만 간신히 알고 있지만 책을 읽는데는 문제없다. 내가 수업시간에 해석을 해주면서 배경 설명을 해주면 아이들은 열심히 듣고 메모한다. 그걸 가지고 집에 가서 내용정리를 하고 예습으로 내준 부분을 읽어온다. 단어정리책이나 구분 해설 따위가 필요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어 과외 선생님 숙제는 독해 교재 지문 행간에 해석을 쓰라고 하는 숙제다. 한줄 한줄 해석을 하며 구문을 씹어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냥 읽고 싶은 내용을 신나게 쭉쭉 앞으로 읽어나가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고 강물 속의 코이처럼     

  호기심이 있다면 100% 이해될 때까지 물어보고 해결 되면 스스로 읽고 쓰고 한다. 이 책 맨 뒤에 있는 여러 인물 목록을 보더니 아이들은 잡스가 손을 잡고 일한 월트 디즈니나 빌 게이츠 편을 읽고 싶어 한다. 영어 독해책이나 교과서가 아니라 100페이지 정도의 얇은 원서로 된 챕터북을 읽어낸 성취감은 매우 크다. 그래서 문법을 잘 몰라도 단어와 배경지식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만 있다면 쭉쭉 계속 읽어나간다. 과외 선생님에게 영어책을 읽겠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입시용 학습 교재가 아닌 작은 위인전 하나를 읽고 영어로 된 정보를 머리에 입력하는 과정을 배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걸 조금씩 느껴보는 중이다.

    

  코이라는 관상어는 어항에서는 5~8cm, 수족관에서 15~25cm, 강물에서 90~120cm 자란다고 한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잘 배우게 해서 어항에서 수족관을 넘어 강물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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