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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Mar 21. 2024

자녀에게 영어원서 읽게 하려면

호기심부터 챙기세요

어머니 : 선생님, 제 아이가 미국을 폭시켜 버리고 싶다고 해요.

나 : 이런. 영어가 엄청 싫어졌나 보네요. 어디서 공부하고 있나요?
 어머니 : 제가 가르치고 있어요. 영어 원서를 빨리 읽혀야 해서요.

나 :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초등학교 4학년 어머니께 상담 전화가 왔다. 나에게 학생을 보내주시는 영어 공부방 선생님이 이 학생을 작년까지 가르치고 있었는데 영어 영재인 것 같다고 하면서 나와 공부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고 아이와 1:1로 수업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아마도 영어 공부방에서 다른 친구들 보다 훨씬 영어를 잘 하니 어머니는 본인이 가르치는 게 낫다고 하고, 지난 반 년 동안 아들을 가르치다가 그만 포기 상태가 되어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 미국을 폭시켜 버리고 싶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영어 혐오증이 극에 달했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나의 조언은 아이가 하고 싶은 영어 공부를 하고 그것도 안되면 좀 쉬라는 것이었다. 이 학생이 나에게 오면 나까지 폭파당할 거 같아 언제든지 상담은 해드릴 수 있지만 수업 진행은 정중히 사양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영어가 이토록 싫어진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수능영어를 위해 공부할 날이 9년씩이나 남아 있으니 영어 공부 마라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를 들은 정도인데, 마라톤 시작하자마자 안 뛰겠다는 선수와 같다. 이 난감한 사태는 어머니의 과도한 기대와 학습의 강요가 아이의 호기심을 교육의 이름으로 싹둑 잘라 놓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영어에 대해 궁금해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영어 정보를 머리에 쏟아 부어버려서 그만 호기심을 분노로 전환 시켜버린 것이다.   

   

어제 중3 학생들에게 앞으로 가고 싶은 고등학교, 대학교, 주중 주말 공부시간,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을 물어보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답변이 충격적이었다. 대부분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썼고, 어려운 과목에는 영어라 한 학생도 많았다. 또 주말과 주중에 학원 숙제를 제외한 자기 공부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기 암기력과 집중력은 뛰어나지만 정신 세계는 이미 노쇠하여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꿈도 없어 보였다. 영어에 대한 혐오증이 초등학교부터 생겼을 것 같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영어 시험은 항상 100점을 맞는 아이러니.


나는 이 100점을 허수라고 생각한다. 시골 중학교의 쉬운 시험이라서 가능한 점수다. 고등학교 가서 내신과 수능 준비하려면 시골 중학생의 상상을 초월하는 학습량이 쏟아지지고 그에 상응하는 의지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향해 달려간다는 목적의식과 동기가 없이는 그 많은 공부를 해 낼수가 없다. 이 중3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가면 상위 몇 % 정도에 들고 싶냐고 물었더니 20~30%라고 한다. 소위 상위권 정도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모두 서울의 상위권 대학 입학을 꿈꾸고 계시니 이 엄청난 차이를 어찌 극복할 것인가?


어머니들의 원하는 것은 주로 영어 원서를 척척 읽는 상태의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 이상을 어서 빨리 이루기 위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원으로 학습지로 영어를 시작한다. 학원과 학습지 내용을 보면 파닉스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문법을 많이 가르친다. 문법 용어도 많이 나와서 몹시 싫게 생겼다. 거기다 단어 외우라고 닦달하고 단어 틀리면 벌받고 깜지쓰고 이런 식으로 영어 공부가 이어진다. 영어 파닉스부터 토하고 싶을 만큼 혐오감을 표현하는 어린 학생들도 있다. 그런 상태에 이르면 잠시 쉬면 되는데 영어 불안증 때문에 학습은 이어진다. 호기심은 무참히 짓밟힌다.    

  

최승필 선생님의 <공부머리 독서법>을 보에서 보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호기심은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지식은 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그림을 보았다. 여기서 순서가 핵심 포인트인데 내 안의 호기심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에 지식이 들어와야한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와 문법의 무차별적인 공습은 미국 폭파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게다가 AI의 등장으로 통역이 원활하게 되는데 왜 영어를 배워야하냐는 질문에 답도 해주어야한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단어시험보고 문법책 푸는 것이 아니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초등영어의 목표가 되어야한다. 그래야 긴긴 입시영어를 참을 만함 힘이 생긴다. 영어로 만들어진 책, 영화, 동영상, 만화, 팝송등 내용에 관심이 생기면서 문화도 알고 싶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그려보는 시각화 visualization 를 해보는 여유를 어머니들께서 주셨으면 좋겠다. 아이의 호기심에 물을 잘 주고 키워나가면서 영어 원서를 조금씩 시도하되, 첫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를 바라지 말고 한 두 페이지라도 잘 읽으면 칭찬해 주고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
 

예를 들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소설인데, 영화를 먼저 보고 주인공 윌리 웡카를 책 속에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에 <웡카>라는 영화를 본 학생 두 명이 <Wanka>를 소설로 엮은 책을 읽자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효과 만점이다. scrumptiousness 뭐 이런 어려운 단어가 나아도 질리지 않고 지나가면서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열심히 읽고 있다. 호기심이라는 힘이 이렇게 크다.   

  

호기심이라는 것은 첼로를 배우면서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레슨을 시작하면서 누가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나의 호기심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쉽게 연주하는 것 같은 연주자들의 모습은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연습의 시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 원서를 사전 찾느라 시간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는 능력도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요즘은 4개의 음표를 이음줄로 연결된 기술을 스즈키 첼로 연습책 2권의 6번에 나오는 <사냥꾼의 합창>에서 익히고 있는데, 왼손과 오른손의 조응에 의해 아름답게 연결된 음을 내기가 어렵다. 시라솔라! 이 단순한 네개의 음을 따로 각활로 내면 쉽지만 16분 음표로 4개를 모아 1박자로 내는 연습을 거의 한달 내내 하고 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했는지 왼손 검지 손가락에 통증이 시작되어 한 주 레슨을 쉬기도 했다. 통증이 오니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나이 들어 시작한 첼로 레슨이 끝이나면 안되는데 싶었다.  다행히 통증은  사라졌다.  


이런 단순한 첼로 왕기초 과정에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첼로를 좋아할 수 있도록 많이 듣는 시간도 필요하다. 남편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해드폰으로 바흐 피아노 협주곡들을 들으면서 첼로 파트를 열심히 듣고 있다. 바흐 피아노 협주곡들은 내가 바흐를 좋아하게 된 계기였다. 협주곡 6번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질 뻔 했고, 6번에서 시작한 애정은 협주곡 1번의 강렬함에 갔다가, 3번 2악장을 들으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예전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멜로디 위주로 들었다면, 요즘은 오른쪽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아름다운 첼로 소리를 즐기고 있다. 새롭게 피아노 협주곡들을 첼로 소리에 귀를 쫑긋하며 듣고 있다보니, 첼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고,이 현상은 4잇단 음표 연습에도 많이 도움이 된다. 연습 의지력은 악기와 그 소리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생겨나듯, 영어 학습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어려움을 이기게 한다. 이 라틴어 경구가 좋아 몇 년 전부터 카톡 상태 메시지에 적어 놓았다.      


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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