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선생님 하실래요?
영어 과외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특성
부동산 중개인 : 혹시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 : 아…. 학생들 영어 가르쳐요.
중개인 : 그러시구나. 어떤 학생들을 가르치세요?
나 : 중학생, 고등학생요.
중개인 : 이 지역 학교 선생님이세요?
나 : 저는 과외 선생님이에요. 학교 선생님이 아니고요.
중개인 : 어머 그러세요? 그럼 우리 아이 영어 가르쳐 주실래요?
나 : (잠시 놀라며) 이사 오면 바로 시작할까요?
충남 예산군에 와서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다. 예산에 이사 오기 전에 팔도강산도 모자라 외국까지 하도 많이 이사를 해서 나는 부동산 중개인을 2년에 한 번은 만나서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중개인들은 집들을 보여주고 계약서를 쓸 즈음에 내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냥 영어 가르친다고 한다. 그럼 공교육 선생님이냐고 묻고 나는 과외 선생이라고 답한다. 나의 대답에 뜻밖에도 나를 처음 만났는데 당장 아이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일도 생긴다. 내가 선생님처럼 보였다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지만
사회적 자아를 키울 수 없는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 이건 부정적 이미지다. 멋진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걸고 큰 건물의 로비를 종횡무진으로 걸어 다니고, 칸막이로 나눠진 큰 사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커피 마시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승진을 위해 분투하거나 동료와 협업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직업으로서 위상이 높지 않아서 그런지 인터넷으로 회원가입을 할 때 직업을 묻는 항목에서 과외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심지어 브런치 작가 지원을 할 때도 나를 교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직업란에 과외선생님은 항상 없다. 과외 선생님은 공교육 선생님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갖기 어렵고 그래서 그런지 중고등학생들의 미래 희망직업으로 과외선생님은 없다. 나는 교육 종사자이긴 하지만 학교나 학원이라는 기관에서 일하지 않아서 프리랜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좀 애매하다. 그래서 주부라는 항목에 표시하기도 한다. 참 애매하다.
딸아이가 2014년에 예산을 떠나 천안에 있는 비평준화 학교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천안에서 수학학원을 보내야 하는데 기숙사 근처에는 대형 학원이 없었고 멀리 버스를 타고 한밤중에 기숙사에 돌아오는 것도 마땅치 않아서 기숙사 근처의 작은 수학학원을 찾았다. 원장님이 나를 맞이해 주었는데 무슨 패션모델인 줄 알았다. 훤칠한 키, 흰 피부와 잘생긴 얼굴. 약간의 경상도 억양을 가진 친절한 30대 중반의 매력적인 남성. 내가 20대였다면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을 외모였다. 상담하면서 내가 과외 선생이라 하니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분은 고려대를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취업에 더 유리한 경북대 수의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내신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내신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논술 전형으로 학생을 많이 뽑던 시절에 수학을 워낙 잘해서 아르바이트로 논술 전형 대비반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한 달 수입이 대기업 부장님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수의사가 되는 아들 꿈을 꾸셨다고 했다. 제발 대학을 졸업해 달라고 한 어머니의 부탁을 뿌리치고 수리논술 강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다. 그 후 우리 아이 학교 근처의 수학 원장이 되었지만, 학생이 많지 않은 외진 곳의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학원이었다. 그 잘난 인물과 실력을 겸비했지만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중에 딸아이가 전한 소식에 의하면 선생님은 고려대 나온 영어학원 강사와 결혼했고 부부가 천안의 중심 학원가로 옮겨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졸의 남편을 받아들일 사람은 동종업계의 영어 선생님이었다.
소위 말하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 분들과 같이 있으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직업 소개 할 때 주눅이 들었다. 지금은 내 직업에 자부심이 있고 당당하지만, 예산에 오기 전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선생님들이 방학마다 해외여행 가는 게 부러웠다. 그분들이 명함을 줄 때 나는 줄 명함이 없었고, 그분들이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쩌다 친척 한 분이 요즘도 '알바’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할 때나, 오랜만에 만난 동네 이웃이 '아직도 과외 하시나요?’라고 물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거나 용돈을 벌려고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나 싶어 마음이 쓰렸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안정적 직업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성취를 해냈다. 나는 내가 과외 선생님으로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꼬박 지내면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서울 삼청동 주변이나 북촌마을에 가면 서너 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모습이 보인다. 장사가 잘된다고 큰 점포로 옮기면 망하는 경우가 많다. 길을 늘어선 모습 자체가 엄청난 광고효과가 있다. 나도 그런 작은 가게 같은 과외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토요일만 쉬었고 고3 때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7일 수업을 했다. 고등학생 딸을 데리고 어차피 주말에 여행을 하거나 여유를 부릴 수 없어서였다. 2년 전부터는 금요일 토요일은 쉬고 월화수목과 일요일 저녁시간까지 4.5일 일한다. 일하는 시간은 오후 4~5시부터 밤 10시 혹은 11시30분까지 하고 학생은 수업당 최대 3명까지이다. 하루에 6~7시간 수업하고 1~2시간은 수업준비나 부모 상담을 한다.
학원처럼 학생을 무한히 받지 못하니까 내가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의 수가 한정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늘 아이들이 꽉 차 있다는 사실이 홍보 효과가 있다. 일종의 ‘희귀성’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생겨났다. 주4.5일 근무를 확실하게 해서 잘 쉬면서 일하고 싶기 때문에 학생이 많아진다고 학원을 차릴 생각은 없다. 학생이 많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번 내 학생이 되면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동안이나 나의 학생이 된다. 프랑스어, 한국어, 캘리그라피도 강의해 봤지만 이런 과목은 몇 년에 걸쳐 공부하지 않는다. 기본 실력 정도 되면 공부를 마친다. 그런데 입시 영어는 초등 6학년 시작해서 고2나 고3까지 수업이 이어지고 학생의 이동이 거의 없다. (자기주도 학습이 되는 학생은 고1까지 수업하기도 한다) 매년 학년 초에 서너 명의 학생만 추가시킨다. 1년에 서너 명의 학생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어학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혼자 꾸준히 하기도 어렵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라 악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하루에 30분씩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악기처럼 영어도 그렇다. 완성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이들과 잘 소통하면서 진심으로 학생을 가르치면 일정 학생 수를 유지할 수 있다.
학생 수가 많아져도 학원을 차리면 강사를 고용하고 홍보하는 등 경영이라는 일이 엄청나게 큰 부담이 더 추가된다. 투자한 비용 때문에 심적인 부담도 많을 것 같다.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을 하고 수업 중에 아이들과 교감과 소통을 하고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행복이다. 돈을 더 많이 벌 생각은 없다. 수업과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좋다. 나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돈은 내가 일한 것의 보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돈을 아예 못버는 직업도 아니다. 퇴직금이나 연금은 없지만 출퇴근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므로 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다.
“돈을 위해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라고 하신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늘 생각한다.
독서와 배움을 즐길 수 있고 정년이 없다
좋은 영어 선생님은 박학다식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채사장 작가가 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같은 지식이 필요하다. 깊이는 없을지라도 큰 흐름을 짚어주는 명료한 지식이 필요해서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수능 지문들은 심리학, 교육학, 철학, 역사, 경제학, 과학, 예술 등의 개론서에서 많이 나온다. 이런 텍스트들은 수업에도 도움이 될 뿐 아나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답을 주기도 한다. 물론 영어지문을 해석하고 해설지를 보면 답을 알려 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양한 분야를 알고 있으면 지문에 나오는 다양한 주제를 더 재미있게 설명해 줄 수 있다. 독서가 휴식이자 취미인 나에게 과외선생님은 적절한 직업이다. 책을 읽는 것이 생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의 독서법은 우선 요약정리다. 읽는 책의 80%는 요약정리라면서 중간중간 나의 의견을 메모하면서 읽는다. 그 정리한 노트가 한 8권 정도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교육에 관한 내용은 노트에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된 노트 필기 습관 덕분에 10년 전에 읽은 책도 잘 기억해 낼 수 있고, 아이들에게 내가 배운 걸 알려줄 수 있다. 영어지문이나 교과서에 인상주의 같은 미술사가 나오면 미술사 책에서 배운 대로 고대 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유명한 작품을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 인상주의 미술에서 피키소와 마티스 같은 화가가 나왔다고 이야기해주면서 영어 내신준비 할 교과서 지문에 나오는 미술 작픔을 공부하면 한결 공부할 맛이 난다.
나는 명품, 화장품, 옷에 관심이 없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TV 안 본 지 몇십 년 되고 영화관도 거의 안 가고 게임도 안 한다. 넷플릭스로 드라마도 안 보고 애완동물이나 식물도 키우지 않는다. 음식은 주로 초간단으로 해 먹고 집안 꾸미는 일도 안 한다. 쇼핑은 거의 인터넷으로 한다. 여가시간에는 주로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우리 집에는 소파, 화장대, 김치냉장고, TV가 없다. 안방은 과외수업하는 공간이고 남편과 나는 작은 방에서 잔다. 거실과 문간방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어디서든 책을 읽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구조다.
일하고 남은 시간에는 운동하거나 뭔가를 배운다. 집중해서 읽어야 할 책이 있으면 스터디 카페에 가서 읽는다. 주 5회 정도 점심 식사 마치면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달리기를 한다. 주말에는 반드시 5km 정도 달리기를 한다. 수채화나 캘리그라피도 배웠다. 요즘은 상담가 활동을 하고 싶어서 청소년 상담복지 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배워 둔 캘리그라피로는 마을 작은 도서관에서 수업하고 있다.
이런 배움을 지속하면서 계속 읽고 쓴다. 읽고 나서 쓰기까지 하는 것이 배움의 완성이라는 생각에 오전에 글도 쓴다. 오전 시간에 마음껏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저녁과 밤에 가르치는 일을 정년이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과외 선생님으로 일할 때 좋은 점이다. 교사들은 최근에 만 55세가 되면 명예퇴직을 하는데 그런 퇴직 걱정 없이 계속 배우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공부 안 하는 학생들 때문에 복잡해지고 고등학생들 내신 시험 보면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