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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May 28. 2022

숙제를 안하는 고딩 1학년

과외선생님의 가장 큰 난제

나 : (단어시험 채점을 마치고) 단어 암기가 왜 이렇게 안됐지? 반타작이네.

예은 : 아 죄송해요. 지난 주에는 수행평가가 많아서 그랬어요.

나 : 그럼 9월 기출모의고사는 풀어왔니?

예은 : 아 풀었는데... 책을 집에 두고 왔네요!

나 : 내가 프린트 해줄게. 집이 멀잖아. 그 다음 숙제... 독해집 문제를 다 풀었니?

예은 : 마지막 두 장은 못 풀고 채점은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나 : 그럼 내가 채점을 하지. (채점 후) 뭘 이렇게 많이 틀렸지?

예은 : 제가 졸려서 정신 집중을 못했어요.     


  90분 수업 시작은 단어시험으로 한다. 매 수업마다 40문제씩 보는데 암기할 단어는 적게는 60개 많게는 300개가 넘을 수도 있다. 단어장 1일 분량은 대개 30개 정도로 되어 있는데 처음 외울 때는 2과씩 하다가 복습을 할 때마다 더 범위를 늘리고, 고등학생 쯤 되어 복습량을 10개과 정도씩 끊어서 하다보면 300개 이상 단어를 복습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단어 숙제를 못하는 것이 누적이 되면 단어를 장기 기억으로 넘길 수 없고 단어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어의 장기 기억이 안되면 영어 공부는 완벽하게 망한다. 이해력이 뛰어나도 단어 암기를 못하면 헛일이다. 영어는 주입식으로 단어를 암기 할 수 밖에 없다. 어원을 설명하려고 해도 어원자체를 암기해야하고, 모든 단어를 어원설명으로 하면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도 하다. 어원에서 어의가 변하는 경우도 허다해서 그렇다. 단어 암기처럼 간단한 일을 굳이 사교육 선생에게 맡기는 이유는 혼자서는 꾸준히 반복을 통해 암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의 공부의 성패를 평가하는 객관적 요인으로 나는 두 가지를 꼽는다. 단어시험 점수와 수업시간에 늦지 않고 오기이다. 일단 예은이는 단어시험을 대단히 못봤다. 수업시간도 못 지켰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월요일에 해야하는 것을 목요일로 미룬 상태다. 공부가 잘 안되는 친구들을 수업시간에 늦게 오는 건 물론이고 갑자기 아프다고 수업시간을 다른 날로 변경해 달라고 한다. 그것도 같이 공부하는 친구의 스케줄을 교란시키면서도 굳이 자기한테 맞춰서 바꾸자고 한다. 예은이가 그렇게 한게 이번이 세 번 째여서 어떤 경우에도 수업 변경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아 말했다. 왠지 아프다는 게 거짓말 같아서이다. 수업시간 준수와 단어시험에서 무너지는 예은이를 나는 보고 있다. 숙제를 못해 오는 만큼 변명을 다양해 진다. 변명은 아주 나쁜 징후다. 예은이는 빈사의 백조다. 배터리 5% 남은 스마트 폰이다. 거의 죽을 것 같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방법은 두가지다. 예은이와 수업을 그만 두든가 예은이가 변화하기를 기다리던가. 나는 후자를 택한다. 공부하는 상태가 엉망인데 선생님을 바꾼다고 해결이 되지 않을게 뻔하다. 이런 상태를 어머니께 일일이 보고해 봤자 아이를 혼낼 것이고 아이는 더욱 나와 거리를 둘 것이라 섣불리 어머니께 연락을 하지 못한다. 예은이 같은 아이들은 열명이면 한 두명은 된다. 과외는 학생이 선택한 수업이고 교육비를 상당히 지불하고 있고 고등학생이 돼서 입시가 코앞이라도 이런 학생은 내 학생의 10~20%는 되고 나를 괴롭힌다. 과외 선생님은 그냥 지식 전달자일 뿐 아니라 동기부여자도 해야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아이가 부모를 잘 따르기 위

두가지 조건 있다.

1. 부모가 우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2. 아이가 이런 부모를 좋아해야 한다.     


2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바람직한 육아가 가능하다. 부모가 본을 보여야 아이가 따라하면서 성장하듯이 과외 선생님도 인격이나 실력 면에서 다 좋은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의 변화를 이끄는 선생님도 좋은 선생님이어야 하고, 학생이 그 선생님을 좋아해야 한다. 그럼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인가? 공부 안한다고 소리지르고 당장 나가라고 하는 선생님은 아닐 것이다.    

  

아이 때문에 고민이 될 때마다 나는 괴테의 말을 늘 떠올린다.     


Treat people as if they were what they ought to be and help them to be what they are capable of being.      


마치 그들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벌써 된 것처럼  그 사람들을 대하라. 그리고 그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어라.     


교육자의 마음을 가장 숭고하게 표현한 글이 있다. 김기훈 선생님이 쓴 영어 구문 분석의 바이블에 해당하는 <천일문>이라는 교재에 나오는 말이다. 가정법은 현재 사실을 반대로 말하는 방법이다. 현재는 절대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지만 미래에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라는 가정법 문장.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늘 희망을 품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가지는 희망과 동일하다. 아이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되새긴다. 아이가 정말 내 말대로 따르지 않고 나를 떠난다면 그걸 말릴 순 없다. 그렇지만 나는 학생이변화하기를 늘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를 쓰신 청소년법정 판사님이신 천종호 판사님을 나는 존경한다. 비행 청소년의 엄하게 벌을 주시면서도 그 비행을 하도록 만든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해 하는 분이다.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사실 부모 선생님의 책임이 많다. 어쩌면 입시제도라는 사악한 제도 때문에 아이들은 공부가 지겨워지고, 서열을 만들어 사람을 평가하는 무한 경쟁 자본주의사회가 아이들을 멍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험악한 세상을 살려면 성적이라는 결과를 떠나 학생에게 주어진 공부를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책임이지 않는가.   

   

예은이를 변화시켜야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예은이가 그만두면 같이하는 친구는 홀로 남아 썰렁해지고, 교육비 10만원 더 내야하고 나도 한 달에 10만원 덜 번다. 내가 돈 덜 버는 건 상관 없다. 그러나 친구 부모님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고, 혼자 남는 친구의 공부 정서까지 망칠 염려가 있다. 그래서 진심으로 숙제를 잘하는 예은이를 보고 싶다, 새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라고는 카톡을 보냈다.    

  

“예은아! 너랑 카톡한 걸 보니 수업에 늦는다거나 못온다는 메시지가 대부분이거든.  영어공부 시간을 하루에 일정한 시간대로 확보하고 매일 단어 잘 외우면 수업에 오지 말라해도 오고 싶을거야. 새마음으로 숙제하기 바란다. 다음시간에는 숙제 못한거 변명하지 않고 당당하게 다 해온걸 보여주는 너를 상상하고 있을게!”    

 

아직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중간고사 처음 본 상태이니 예은이에게는 시간이 많이 있다. 아이가 새 마음을 먹고 태도가 바뀌어서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합격하는 꿈을 꾸면서 단어시험 문제를 낸다. 믿기 어렵지만 믿으려고 애쓴다. 그게 좋은 선생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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