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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Mar 09. 2022

꼰대 학생

  수진이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1년전에 나에게 과외 수업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학생이 많아서 받아줄 수 없는 상태였다. 어떤 인기가 많아서 학생이 넘쳐나는 선생님들은 어머니가 상담 전화를 하면 마치 음식점에서 대기표 나눠주듯 ‘아 대기 여덟 번째 학생이세요~’하고는 뚝 끊어버린다. 나는 내 학생과 수업을 이어나갈 수 없을 때 나 스스로 과외 선생님을 찾아본다. 이사 간다거나 숙제를 너무 안 해와서 내 쪽에서 수업 중단을 제안하는 경우에 그렇다. 선생님을 찾느라 본의 아니게 유명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면 보통 친절한 목소리도 아니고 전화를 건 어머니의 자녀인 학생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혹시 결원이 생기면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아이의 이름과 학년을 전화번호에 입력해둔다. 딱 1년 후에 다시 수진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아 수진 어머니시군요’라고 응대했다. 어머니 입장에서 1년 전에 통화한 선생님이 이름을 기억해 준다면 좋은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수진이와 같이 공부를 하기가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업을 더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기존에 하고 있는 학생과 같이 해야 하는데 기존 학생과 같이 묶어서 수업하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1학년인 수진이가 1년 동안 4번의 시험 동안 계속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할 때 나도 많이 걱정되었다. 자식 키우면서 고등학교 자녀가 성적이 계속 떨어질 때 부모는 가슴이 타들어 간다. 왜 성적이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알며 좋을 것 같아 수업을 할 수 있을지 확정을 못 하겠지만 상담을 하러 한번 아이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 다음 날 수진이는 우리 집에 찾아왔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은 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수업 때도 마스크를 쓴다. 그래서 2020년 이후에 새로 시작한 학생들의 마스크 아래 얼굴을 잘 모른다. 수진이도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볼 수 있는 상태였는데 그 눈빛이 얼마나 슬픈지 내 가슴이 철렁했다. 왜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것 같냐고 물으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숨을 크게 쉬더니 ‘제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죠’라고 했다. 이 아이의 절망과 슬픔이 나에게 전달이 되었다. 상담을 처음 와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친구는 처음이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며 힘없어 보이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일단 겨울 방학 동안 8주간 같이 수업을 해보고 3월 학기 시작하면 기존에 하는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자고 약속을 해 버렸다. 어머니가 전화 왔을 때 거절했으면 되었는데 또 학생 하나가 늘어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일대일로 수업을 하면 수업보다도 멘토링이 가능해서 좋다.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정을 소통하고 소위 케미를 맞추는 시간이어서 좋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 교육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진이가 두 번째 수업에 왔을 때 그냥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취미가 독서라고 했다!!! 세상에 21세기 청소년 중에 독서가 취미인 학생도 있구나! 나는 거의 ‘심봤다’를 세 번 외치고 싶었다.  

     

나 : 정말이야~~ 와 반갑다 나도 취미가 책 읽기야. 무슨 종류의 책을 읽니?

수진 : 저는 주로 소설을 읽어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요.

나 : 최근 읽은 소설은 뭐지?

수진 : <지구 끝의 온실>이요.

나 : 난 소설을 가끔 읽긴 하는데 너 다 읽으면 책 빌려줄래?

수진 : 정말요??

나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내 학생과 같이 책을 읽어보는 거야. 하하!     


  이렇게 수진이는 나랑 마음이 확 통했다. 예산 여고에 다니는 수진이에게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 언니의 책이 떠올라 빌려주고 싶었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는 임 가인 학생이 고등학교 때 대산 청소년 문학상을 타고 나온 소설집이었다. <제목은 딜라이트 주름치마의 오후>라는 소설집에 소리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었다. 너의 선배 언니가 쓴 거니까 한번 읽어보라 했더니 눈물이 고였던 눈에 웃음이 퍼졌다. 아이의 웃음은 내 마음에 함박꽃을 피게 한다. 그리고 너무 판타지만 읽으면 편식을 하는 거니까 현실에 치열하게 발을 붙인 책도 하나 빌려주었다.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일한 정상훈 의사의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였다. 이 책은 한 의사의 열악한 지역에서의 의료활동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가족과 갖고 있는 분열된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 소설적으로 묘사되어서 수진이가 좋아할 것 같았다. 이렇게 책을 빌려주고 일주일이 지나 책을 돌려주면서 수진이는 수업 시간에 많이 웃었고 숙제도 최선을 다해 해왔다.  그러던 중 수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수진 : 선생님, 근데 친구들이 절 보고 꼰대라고 해요. 정말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정말 꼰대처럼 보이나요?

나 : 뭐라고? 꼰대 라고? 꼰대는 나이 많은 어른 아니야? 수진이는 꼰대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니?

수진 : ...

나 : 혹시 너가 너무 착해서 그런 거 아니야? 너무 성실하고 너무 친구에게 친절하고 선생님에게 예의 바르고….

수진 : 그럴까요? 저는 친구를 도와주는 걸 좋아해요. 도와주려고 하면 친구가 “괜찮아” 그러거든요. 저는 ‘괜찮아’라는 말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거절인지 수락인지.

나 : 혹시 수락으로 생각하고 도와주려고 하지 않니?

수진 : 맞아요. 아마 그게 거절인거겠죠?

나 : 슬프게도 그렇지...       


  수진이는 정말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옛날에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면 착한 어린이였을 것이다. 마음씨 착하고 친구에게 물건을 잘 빌려주고 친구의 부탁을 잘 들어주고 숙제를 잘하고 선생님 말씀 경청하고 공부도 잘하는 착한 어린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착한 어린이가 상처를 받는다. 남을 도우려는 마음과 예의 바른 태도가 ‘꼰대’스러운 것이 되었다니 마음이 아팠다. 착하다는 말은 긍정과 부정의 뉘앙스를 다 갖고 있다. ‘착해빠져서’ 라고 표현되는 부정적인 의미. 자기 잇속을 못 차리고 남을 너무 배려하는 사람. 또 부모님과 선생님께 인정받으려고 성숙한 듯 보이는 아이들. 미리 철들었다고 어른들은 좋아하지만, 사실은 인정 투쟁 중이어서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상태로서의 착함. 나는 수진이가 이런 ‘착함’이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에서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존중하려고 애쓰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서로 몸이 달라도 ____하자 라는 문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빈칸 안에 ‘존중’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같이 놀자’ ‘반겨주자’같은 말을 넣었다. 이 동심의 세계에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수진이도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서 그만 꼰대가 되고 만 것 아닐까. 남을 존중해주는 바람에 오해를 받아도 괜찮다. 언젠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진가를 발휘할 날이 올 것이다. 사실 그 마음은 나의 마음을 열게 했고 선생님의 사랑과 마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수진이의 착한 마음은 인사말에서도 나타났다. 수진이는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도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런 인사말은 30년 동안 과외하면서 처음 들어본 인사말이다. 몇 년씩 수업을 한 후 마지막 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인사를 기대하지만 나는 늘 “안녕히 계세요.”라는 평상시 인사말을 들었고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학생들은 더러 있다. 아이들은 감사의 말에 참 인색하다. 간식을 줄 때도, 물을 달라 해서 물잔을 건넬 때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이런 태도를 서양 사람 앞에서 보였다면 매우 이상하고 무례한 사람이 될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꼭 해야한다고 말해주곤 하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 힘든 아이들을 많이 만나다가 수진이의 인사를 들으니 감개무량했다.


  수진이가 나보고 고생했다고 하니 그날의 피로함이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기쁨을 준다. 책을 같이 읽을 때 그렇고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 그렇다. 늘 말이 없던 아이가 스승의 날 감사하다는 카드를 보내 줄 때, 이미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스승의 날 감사하다고 카톡을 보낼 때, 질풍노도의 중2병을 앓던 학생이 제대했다고 문자를 보낼 때 나는 한없이 기쁘다. 과외 선생님을 하면 이렇게 기쁜 일이 매일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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