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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un 27. 2024

첼로 레슨 10개월

부상과 칭찬

나 :선생님! 어깨 통증이 계속돼서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왔어요.

선생님 : 지금은 안 아프세요?

나 : 네. 근데 또 아파질까 무서워요. 그냥 몇 달 쉬면서 혼자 연습해 볼까요?

 선생님 : 안돼요! 혼자 연습하시면 점점이상한 자세로 연주할 위험이 있어서요...    

 

  왼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콕콕 찌르는 통증이 기분 나쁘게 지속되었다. 파스를 붙이면 괜찮다가 파스를 떼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첼로 시작한 지 아홉 달이 지난 5월의 어느 푸르른 날부터 어깨 통증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20~30분 연습한 것 때문에 아프다니 어이가 없었다. 1주일 정도 참다가 결국 병원에 가서 근육 이완 주사를 맞고 통증은 다행히 없어지고 재발하지는 않았다. 아 이렇게 첼로를 포기하는가 싶어 슬픔이 몰려왔다. 노화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내 몸은 어깨, 팔목, 손가락에 힘을 주는 동작을 감당을 못하는가 싶었다. 동네 오케스트라나 동네 첼로 앙상블에서 연주하는 나의 꿈이 이렇게 사라지는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2주 정도 레슨을 쉬고 3주째 되는 날. 선생님께 이제 쉬어 보겠다고 말씀드리리라 결심하고 연습은 하나도 안 하고 어깨가 축 처진 채 학원 문을 열었다. 레슨 대신 상담을 하자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몸도 아프고 몇 달 쉬어 보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혼자 연습하는 것이 오히려 자세를 악화하는 쪽으로 가져갈 수 있으니 레슨은 계속하되, 2개의 곡을 병행하던 것을 그냥 스즈키 첼로 교본만 진도 나가면서 연습을 줄이자고 하셨다. 60분 레슨 시간을 한 곡으로 다 채울 수 없으니 남은 15분 정도는 피아노 반주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했다. 피아노까지! 아 고마운 선생님!     


  어깨, 손가락 관절이 아파지자 나는 ‘첼로 관절염 어깨 통증’ 등의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연주자들은 어깨, 손가락 관절, 팔목의 통증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도 입시용 연주곡을 연습할 때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입시생이 아니고 극단적 초보생이라 연습으로 인한 통증은 아니고, 자세가 나쁘고 연습 전후 스트레칭을 하지 않은 게으름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연습하기 전에 팔을 앞뒤로 돌려서 어깨 근육과 팔 근육을 풀고 한 10~15분 연습한 후 다시 스트레칭을 하고 연습하라는 말씀.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어깨와 팔의 힘을 빼고, 오른팔로 활을 그을 때 겨드랑이가 팔랑팔랑 움직이게 하세요. 어깨는 아래로 내려뜨리고 엄지손가락은 힘을 빼고 활의 면이 현에 완전히 닿아 밀도 100% 쫀득한 소리가 나게 하세요!’ 라고 선생님은 레슨 때마다 말씀하신다. 힘빼는 게 어렵다. 열 달가량 레슨을 받았으니 40번은 반복한 말인데 선생님 얼굴엔 늘 미소가 가득하다. 내가 궁시렁거리면서 ‘아 진짜 활 긋는 게 진짜 어려워요’라고 하면 하하 웃으신다. 활이 좀 잘 그어진 순간에는 ‘바로 그거에요 잘하셨어요!’라고 칭찬도 아끼지 않으신다.      


  이 짧은 칭찬 한마디로 내 마음은 두둥 하늘로 오른다. 그리고 다시 해보자! 라고 마음을 먹게 했다. 이 순간 학생들에게 문법을 실컷 가르쳐 주고 나면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할 때가 떠올랐다. 문제를 풀게 하면 모조리 틀려버리는 아이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 톤이 약간 올라가는 나에게 ‘진정하자’라고 말하면서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 도련님 아미르와 하인의 아들 하산은 같이 연은 날린다. 하산은 아미르에게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연을 날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설명해주는 것이 선생님이 할 일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내 한계는 한 다섯 번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의 첼로 선생님은 천 번이라도 다시 설명해주실 것 같다.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고 유쾌하게 마치 처음 설명하듯 다시 자세, 손가락의 힘, 팔목과 팔의 움직임을 설명해 주신다.     


  첼로를 모를 때는 왼손 지판을 눌러 음계를 오르내리는 것이 어려울 줄 알았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쉬워 보이던 오른손 활 긋기가 이리도 어려울 줄이야. 누구나 다 아는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려면 된장 자체가 맛있어야 하듯, 가장 기본이 잘돼야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첼로의 소리는 천국에서도 들려올 것 같다. 학원 문을 열기 전에 선생님이 연주하고 계시면 나는 문밖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감탄을 하고 서 있다. 내가 들어가면 연습을 멈추시기 때문에 그렇다. 또 선생님이 시범 연주를 들려주시면 나는 잠시 심장이 멎는 듯, 심장이 내려앉는 듯하여 마지막 음의 소리의 여운에 잠겨 잠시 숨을 죽인다. 그리고 ‘아 선생님 너무 좋아요!’하고 찬사를 보낸다. 이런 첼로 소리를 두고 1890년 버나드 쇼는 “나는 비올론첼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돌로 만든 물 주전자 안에서 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는 것 같다”라고 문학적으로 비아냥 거렸다. 같은 해 파블로 카잘스는 당시 웅웅 소리를 내며 주류 악기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정도로 천대받던 첼로를 위해 바흐가 작곡한 6개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중고 서점에서 발견한다. 아버지와 카페에서 연주할 곡을 찾으러 중고 서점을 들렀다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카잘스는 첼로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리고 오늘 내가 선생님의 아름다운 첼로 연주 소리에 마냥 행복해하는 시대를 열었다.   

  

  첼로의 인기는 바야흐로 상승세다. 엊그제 동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내 학생이 나더러 오케스트라에 가입하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에 연습이라 사양은 했는데, 학생 말로는 첼로 파트에 12명이 있다고 한다. 첼로 파트 담당교사가 내 선생님이신데, 작년에 7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연령대는 10대에서 70대까지 있다고 하니 모든 연령층이 좋아하는 악기인 셈이다. 하기야 악기를 배우는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60대에 들어선 내 남편도 드럼에 빠져 버려서 어제는 중고로 전자 드럼을 사서 조립하느라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음악을 사랑하고 악기를 배우려면 연습이라는 지루함과 몸의 각 부위에서 터져 나오는 통증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것은 ‘사랑’!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 선생님과의 이중주에서 느껴지는 황홀감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요즘은 스즈키 첼로 교본 2번의 11번째 곡 연습을 마쳤다. 이제 마지막 12번 마지막 곡을 마치면 교본 2도 끝이다. 첼로 배운지 1년 정도 걸려 1권 2권을 마치게 된다. 2권을 마치면 첼로 앙상블에 들어갈 최소 자격은 된다. 첼로 앙상블 멤버가 되거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꿈은 어깨가 아프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올 여름 연습을 계속하면 교본 2권을 마치는 보상이 올 것이다. 고지가 멀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선생님이 나에게 주시는 배려와 미소 또 내가 첼로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다.


  라오콘 조각상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른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바흐의 <첼로 무반부 모음곡>도 사랑하고 내가 한 달 동안 연주한 고세크의 <가보트>도 너무 좋다. 내가 연주할 수 있어서 애정이 생긴다. 옛날 텔레비전 광고에 배경음악처럼 느껴지는 친숙한 멜로디에 4잇단 음표와 스타카토의 경쾌함이 더해 사랑스럽다. 어쨌거나 어려워도 무언가 사랑하면 극복할 힘이 생긴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Amor vincit omnia 아모르 빈치트 옴니아,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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